1.
여느 때처럼 아이들 웃는 소리도 자동차 빵빵대는 소리도 없는 때에 일어나
여느 때처럼 주전자에 물을 데워 차를 우려 책상에 앉습니다
지난 밤, 더 읽으려는 마음 없진 않지만 졸리움 또한 커서 떠났던 책 곁에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에서 어떻게 전쟁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두들겨 팼는지를 읽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잔혹함을 얘기하면서 독일과 비교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독일에 당했으면서, 이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식을 말하는 게 적당한 얘기일까 싶어서 입니다.
독일이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공격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유대인 학살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인구를 늘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이용 했지요
이러나저러나 아침에 글을 읽으며 그래도 독일의 유대인들에 대한 행동이 떠올랐습니다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가스로 죽이는 거나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인들을 쫓아다니며 화학 무기를 뿌려대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차이라면 독일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악의 화신이 된 거고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이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덮을 수 있는 거겠지요
2.
제가 즐겨하는 것이 아침에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창 밖에 높이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 가만히 바라보면 나무의 흔들림이 사람 사는 것 마냥 느껴집니다
바람이 불어 나무를 흔들기도 하고 나무가 제 몸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세상에 흔들리며 사는 인간이 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흔들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람, 나무, 인간, 세상...
오랜만에 민음사에서 나온 김수영 전집 1권을 펴서 맨 마지막에 있는 시를 읽어 봅니다.
해방, 분단, 전쟁, 4․19, 군사 쿠데타를 겪은 사람이 1968년 5월29일에 썼다는 시
한 때는 이 시를 외며 길을 걷는 것을 좋아 했던 나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3.
무심히 눈빛을 스치면 가만히 있는 것 같은 나무들도
가만히 바라보면 제 몸을 흔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흔들림,
나약함이기도 하고 몸부림이기도 하겠지요
죽은 자는 산자들에게 말하고
산자는 죽은 자들에게 말하는 날들입니다
영원한
혁명 속의 인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 김수영, <기도-4․19순국학도위령제에 붙이는 노래> 가운데, 1960년5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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