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 사회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판단해 볼 수 있는 기준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그 사회의 생각하는 힘이 어느 정도 되느냐일 겁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큰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모두들 골프 치러 다닌다고 해도 생각하는 수준이 떨어지면 그야 말로 그 사회는 졸부들의 질 낮은 사회일 수밖에 없겠지요. 껍데기만 화려한 저질 사회인 거죠.
인간들아, 생각 좀 하고 살자!
그런데 요즘 천안함과 관련해서 이명박 정권과 조선일보 등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모두 함께 저질 사회로 가자고 쌩 난리를 뽀개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앞에 두고 마음 아파할 줄 모르고 아픈 척만 해 대는 그들을 보면 ‘아, 저들은 인간이 가져야할 감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구요.
생각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사실을 놓고 얘기할 줄 아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다음에 자신의 입장을 담아서 의견이나 주장을 펼쳐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한 방송사에서 TV 토론을 하는데 오늘의 주제가 ‘한일합방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하지요. 그런데 오늘 출연한 토론자 가운데 한명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아무리 조선이 힘이 셌다고 해도 일본을 점령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한국은 일본에게 사과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사람의 말에 대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 지를 떠나 이 사람이 과연 토론자로 나올 자격이 있는 걸까요? 토론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부터 완전히 잘못된 경우는 의견을 말할 자격도 없는 겁니다. 그만큼 토론,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에 관한 토론일수록 사실이 무엇인지를 밝혀 놓고 그 다음에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합니다.
천안함과 관련해 이명박 정권과 조선일보, SBS 등이 취한 태도는 이와 반대입니다. 먼저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 곧 ‘북한의 공격이다’를 말합니다. 거기에 대한 근거는 ‘아직은 없지만...’이거나 ‘추측컨대...’, ‘나중에 밝혀지면...’식 입니다. 사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견과 주장만을 먼저 내세운 것이지요.
제가 이 보다 더욱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혹시 의견과 주장에 맞게 사실을 만들어가지는 않았냐는 겁니다. 저는 천안함이 어떤 이유로 폭파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과 조선일보의 주장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논리가 너무 빈약하고 졸렬해서 혹시 저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힘을 이용해서 단지 그들의 주장일 뿐일 것을 사실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거지요.
누군가는 ‘야, 북한이 공격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북한이 1번이라고 쓴 어뢰를 이용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것이 상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식이란 무엇입니까? 상식은 다수의 의견입니다. 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은 이 말이 맞냐 틀리냐, 참이냐 거짓이냐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동성애자가 나옵니다. 어떤 사회나 사람에게는 여전히 ‘동성애는 더러운 거야’라고 하는 주장이 상식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식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니지요. 따라서 이 주장은 한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일 수는 있어도 사실로는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민들레 가족>의 큰 딸 지원. 이혼은 과연 부끄러운 일일까요?
제가 좋아하는 <민들레 가족>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장녀인 지원의 이혼 문제를 놓고 부모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태도가 나옵니다. 어떤 사회나 사람에 따라서는 여전히 ‘이혼은 부끄러운 거야’라는 주장이 상식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의견이나 주장일 수는 있지만 진리나 참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거지요.
우리 사는 세상에는 강자의 의견이나 주장이 마치 사실이고 진리이고 참인 양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이나 진리가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밝히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방앗간에서 가래떡 뽑아내든 제 맘대로 쭈욱 쥐어짜서 만드는 거지요.
잊지 말자 평화의 댐
제 인생에서 억울한 것 가운데 하나는 ‘평화의 댐’ 건설 성금 모으자고 하는데 그게 진짜인 줄 알고 돈을 냈던 겁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KBS에 9시 뉴스에 기자가 그림을 들고 나와서 북한에서 금강산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려고 한다는 겁니다.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거라는 거죠. 그러면서 63 빌딩을 보여 주며 북한이 금강산댐의 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내면 63빌딩이 얼마만큼 물에 잠기는 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평화의 댐' 시설 현황. 평화의 댐 홈페이지 http://pyeonghwa.kwater.or.kr/
물론 나중에 드러난 것은 이 이야기는 한국 정부의 조작극이었다는 거죠. 모두에게 사실이었고 진리라고 여겨졌던 그 사건이 엉터리 거짓말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지금 사실이라고 진리라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알고 보면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이 만들어서 우리 머리 속으로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요? 가진 자들이 그들만의 이익을 마치 모두의 이익인 냥 꾸미듯이 그들만의 생각을 모두의 생각인 양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무튼 ‘천안함 사고의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저는 제대로 말할 만한 능력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명박 정권과 조선일보의 논의 과정은 참 저질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들의 의견과 주장이 사실로 만들어질수록 이 사회는 점점 더 생각하는 힘이 떨어지는 사회가 되어 갈 거라는 겁니다.
관찰 하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찾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만들고, 그 의견과 주장을 바탕으로 토론을 하면 할수록 생각하는 힘은 커지겠지요.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진리를 찾아 실천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는 세상은 삶의 참된 행복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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