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여러 작품들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을 읽고

순돌이 아빠^.^ 2010. 5. 19. 12:28

 

오토 딕스 작품 전시회 다녀와서 이 책에 오토 딕스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볼 마음이었는데 서문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더라구요. 그래서 저녁때쯤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자고 다음날 아침에 책을 마저 덮었습니다.

 

 

 

책의 작은 제목이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입니다. 그림에 관한 책이에요. 근데 그냥 00주의가 어떠니 기법과 재료가 어떠니 하는 식의 그림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인생이 어떠니 세상이 어떠니 하며 얘기를 풀어갑니다. 에밀 놀데, 오토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카라바조, 고흐 같은 이름이 등장하구요.

 

제가 그랬듯이, 많은 분들에게 미술이나 미술관은 ‘그 분들이 즐기시는’ ‘우아한 것’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예술과 인간을 떼어놓고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돈만 벌면 된다고 했던 사회의 책임이 있고, 또 하나는 세상과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세계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나 예술가에요~~~’하며 뽐이나 냈던 예술가들의 책임도 있겠지요. 이건희의 부인이 한국 미술계의 큰 손인 것은 개똥에 분칠하기일테구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각 개인의 본질은 그 ‘외모’에 나타난다. 그리고 ‘외모’는 ‘내적인 것’의 표현이다. 즉 외부와 내부는 동일하다....화가는 ‘판단’하지 않고 ‘직시’한다. 나의 모토는 ‘너의 눈을 믿어라!’라는 것이다. - 157쪽에 실린 오토 딕스의 말 가운데

 

조선의 화가들은 인간에게서 그 정신을 중시했으므로 인물에 내면적인 정신세계가 담기지 않으면 사람의 초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신사조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물체를 그려서 그 이면에 자리한 정신을 드러낸다는 것, 가시적인 것의 묘사로 비가시적인 내면을 드러낸다는... - 김형수, [옷자락의 그림자까지 그림자에 스민 숨결까지 - 김호석의 수묵화를 읽다], 문학동네, 2008, 121쪽

 

 

김호석, <우리 시대의 초상>

 

그렇게 보면 오토 딕스의 ‘배우 하인리히 게오르게의 초상’과 김호석의 ‘분노를 삭이며’는 참 비슷해 보입니다. 겉모습이 마음이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거지요.

 

어떤 분들에게는 오토 딕스의 작품이 불편한 마음을 갖게도 할 겁니다. 먼저 그림 자체가 흔히 말하는 예쁘지도 않고 알쏭달쏭 알 듯 모를 듯 하지도 않고 그냥 드러내놓고 몸뚱아리가 날아간 전쟁터, 전쟁 후유증으로 거리를 떠도는 사람과 화려한 옷을 입은 성매매 여성들을 표현하고 있으니깐요. <여성반신상>과 같은 작품 앞에서는 어쩌면 우리 모두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전쟁>> 가운데 <독가스를 마시며 전진하는 돌격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우아하고 고상하고 예술과 철학이 살아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유럽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를 쏘아대며 1천만 명 가량을 서로 죽이고 싸웠던 거지요.

 

 

예술이 그리고 미술이 현실을 잊게 하고, 눈감게 하고, 우리를 편하게 해 주길 바라는데 이거 웬 걸 ‘정신차려!’하면서 진짜 현실을 보게 하고 더럽다고 생각 들더라도 ‘눈 돌리지 말아’라고 하고 있으니 미술이 이미 우아한 그분들의 세계에서 떠난 셈이지요.

 

마주 서기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알고 싶다고도 하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진실이 자기 앞에 다가오면 ‘이건 아니야’라고 고개를 돌립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더니 그 진실이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거부해 버리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세월 보내다 죽는 거구요.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증명서를 쥔 자화상>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증명서를 쥔 자화상>은 말 그대로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를 보지 못했지요. 독일군에게 끌려가 수용소에서 죽었으니깐요. 펠릭스 누스바움의 작품이 어둡고 마음 무겁다고 고개를 돌린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 사는 우리는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겁니다. 달콤한 설탕과 쪼꼬렛 중독에서 벗어나야 건강한 몸을 갖게 되겠지요.

 

그러면 꼭 사회문제를 그려야 의미 있는 미술이고 아니면 의미 없는 거냐구요? 물론 아니지요. 작가가 고흐에 대해서 말한 것을 옮겨 볼게요.

 

...고흐가 그리면 그 물질을 뚫고 지나가 저 건너편에 가닿는 감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물건이 없지만, 고흐는 그 건너편에 갑니다. 그곳을 꿰뚫고 지나가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 끝 간 데 없는 느낌이 고흐의 그림에는 나타나며, 그런 감각이 고흐 자신의 인간성 속에도 존재합니다. - 289~291쪽

 

 

 

고흐도 남들처럼 나무를 그리고 보리밭을 그리는데 그 속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나 봅니다. 그냥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고흐의 눈으로 보면 다른 게 보이는 거지요.

 

저희 집 창 밖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여럿 서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그런가 보다 하는데 가만히 보면 바람에 살랑거리기도 하고 꿈틀거리기도 하고 휘몰아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움직이기도 하나 보다 하고 바라보면 초록색이 그냥 초록색이 아니라 온갖 초록색이 온갖 깊이를 가지고 빛을 뿜고 있습니다.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무가 그 속에 빛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는 예쁘고 달콤한 것만 찾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고 말하고 싶은 가 봐요. 또 누군가는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니 아예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 버리자고 말하고 싶은 가 봐요. 그래야 그게 히틀러를 그리던, 사람 하나 나오지 않는 농촌 풍경을 그리던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가 봐요.

 

‘에휴 그러게 산다고 바빠서 책이라고는 읽은 지 오래 됐어’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나 ‘친구 생일인데 뭘 선물 하지?’ 싶은 분은 이 책을 손에 잡아 보시면 어떨까요? 후회하지 않는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책일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