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11월4일 광주 강연을 위해 쓴 거
* 한글 파일 첨부
팔레스타인 역사 이야기
안영민( http://blog.daum.net/minibabo miniwata@gmail.com )
얼마 전 KBS 명화극장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다시 봤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그 영화를 보면 마음이 저리기도 하고 이병헌과 송강호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한반도의 역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보면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선 하나, 다리 하나를 두고 같은 말을 사용하는 양쪽의 젊은이들이 왜 저리 총질을 해대는지 이해 못 할 겁니다. 또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왜 5월만 되면 누군가의 심장이 떨리는 지도 이해 못할 수 있겠지요. 다른 이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역사를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거겠지요.
1.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
반유대주의라는 말 들어 보셨죠? 드레퓌스 사건이나 유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반유대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유럽에서의 유대인 학대는 20세기 들어 독일의 유대인 학살로 절정에 이르렀지요.
반유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유대인 운동이 벌어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시오니즘 운동입니다. 하느님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대인의 국가를 만들자는 거지요. 다른 유대인 운동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든 자치권을 얻든 반유대주의가 벌어졌던 유럽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반면에 시오니즘 운동은 유럽 밖 팔레스타인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거지요. 여기서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가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아랍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영국, 프랑스 등등이 한 편을 먹고 독일, 오스만 제국 등등이 다른 편을 먹었지요. 전쟁 가운데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는 만약 아랍인들이 오스만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키면 전쟁이 끝난 뒤에 중동 지역에 아랍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미국과 영국에 있는 돈 많은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영국은 유대인들에게는 만약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영국을 지원하면 전쟁이 끝난 뒤에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면서 영국은 프랑스와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는 비밀 협정을 맺어 전쟁이 끝난 뒤에 두 나라가 어떻게 중동 지역을 나눠 먹을지를 결정합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국제관리지역이 거지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합니다.
팔레스타인 점령 이후, 영국은 아랍인보다는 유대인이 자신의 중동 지배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유대인 운동을 지원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점점 더 몰려들지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오니즘 운동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땅과 인구의 문제였습니다. 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는 돈을 주고 아랍인의 땅을 사들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전부터는 무력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는 것으로 땅 문제를 해결하지요. 1947년에는 유엔이 아랍인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땅을 둘로 쪼개서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를 세우라는 분할안을 채택합니다. 유엔이라는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 나타나서 남의 땅을 함부로 유대인에게 넘기라고 한 거지요.
인구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유대인 인구수를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반유대주의와 독일의 학살을 피해 유대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했고, 독일군에게 쫓기던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으로 가게 되었지요. 시오니즘 운동에 참여하던 시오니스트들에게는 첫 번째 인구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유대인 학살이었습니다. 큰 공포 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팔레스타인으로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구 문제 두 번째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시오니스트들이 원했던 것은 아랍인들 거주 지역 한 켠에 유대인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내쫓고 순수한 유대인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947년 말부터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직접 공격하기 시작했고, 아랍인들은 죽거나 쫓겨났습니다. 아랍인들을 쫓아냄으로써 시오니스트들은 땅 문제와 두 번째 인구 문제를 동시에 해결 할 수 있었지요.
2. 전쟁, 전쟁 또 전쟁
1940년대 들어오면서 시오니스트들은 과거의 은인이었던 영국을 향해 투쟁을 벌입니다. 유대인 국가를 세울 테니 팔레스타인에서 손을 떼라는 겁니다. 유대인도, 아랍인도 모두 영국에 맞서 계속 싸움을 벌이니깐 영국은 골치 아픈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버리지요. 유엔은 미국의 영향으로 시오니스트들을 지원하고 나서구요. 1948년 5월14일에는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합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몰려 와서 조선인들을 내쫓고 ‘여기는 일본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똑같지요.
5월15일부터는 팔레스타인 전쟁, 시오니스트들은 독립 전쟁이라 부르고 역사 책 같은 데서는 1차 중동전쟁이라 부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라크 등등이 이스라엘 군대와 한판 붙는 거지요. 겉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주변 아랍 국가들이 나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속내는 완전히 다릅니다. 당시 아랍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던 요르단은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시오니스트들과 협상을 벌여 유대 국가 건설을 인정하는 대신에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를 자신이 차지하기로 약속을 하지요. 전쟁이 시작되자 약속대로 모든 일을 진행합니다.
이집트 또한 팔레스타인 해방이 아니라 중동 지역 경쟁 상대인 요르단의 팽창을 막아 보려고 팔레스타인에 한 걸음 내디딘 겁니다. 이라크의 왕과 요르단의 왕이 서로 형제였던 상황에서 이라크 정부는 자국 군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가기는 가되 이스라엘 군대와 전투는 벌이지 말라고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전쟁의 결과가 무엇이었을지는 뻔하겠지요. 팔레스타인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78%를 차지합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먹고, 가자지구는 이집트 관리 아래 들어가게 되지요.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가서 원주민들을 내쫓던 과정을 보면 아무리 원주민들이 땅을 내어주고 양보를 해도 침략자들은 모든 것을 차지하기 이전에는 전쟁을 멈추지 않지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땅에 몰려가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78%나 먹었으면 ‘고마 해라. 마이 무긋다 아이가’라고 하겠지만 그 인간들이 어디 그런가요? 호시탐탐 가자지구를 찝적대더니 1956년에는 영국, 프랑스와 손을 잡고 이집트를 공격하며 수에즈 전쟁을 일으킵니다. 가자지구는 물론이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까지 순식간에 꿀꺽하지요.
영국은 새로 들어선 이집트 정부가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것에 열 받았고, 프랑스는 자기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이집트에 열 받았고, 이스라엘은 아랍의 단결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내세우는 이집트가 꼴사나운데다 영토 확장에 욕심도 있었던 거지요. 수에즈 전쟁이 1956년의 일인데, 그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동 지역 패권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가던 때였죠. 이집트를 점령한 3국은 미국과 소련의 요구로 철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7년에 이스라엘은 또 전쟁(3차 중동 전쟁 또는 6일 전쟁)을 일으킵니다. 67년 6월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서안지구에 있던 요르단 군대를 공격해 단숨에 시리아의 골란고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모두 차지합니다. 이 때 팔레스타인의 100%를 모두 잡수시게 되는 거지요. 시나이 반도는 나중에 이집트에게 돌려주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뱃속에 담아 두고 계십니다.
1967년에 일어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고원(위 지도의 붉은 색 부분),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 시나이 반도는 이후 이집트에게 반환하였으나 나머지는 여전히 점령. 오렌지 색은 48년 점령지.
67년 전쟁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67년 이전에도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했던 것은 맞지만 당시만 해도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 지원이 지금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프랑스가 이스라엘의 무장과 핵개발을 지원했지요. 그런데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민족주의․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소련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미국은 두 나라를 조지고 싶어 했지요. 이 때 미국을 대신해 이스라엘이 ‘형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저만 믿으십시오’하면서 탱크와 전투기를 몰고 나선 겁니다. 6일 만에 시리아와 이집트를 제압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 지역의 확실한 똘마니로 인정하고, 이때부터 군사․재정 등 각종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거지요.
1973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빼앗긴 땅을 되찾겠다고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합니다. 천하무적이요 아랍 군대는 허깨비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은 먼저 공격을 받고 당황합니다. 특히 초반 전세에서 밀리면서 이러다 뭐 큰일 나는 거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지요. 하지만 이때 미국이 대량의 무기를 이스라엘에 실어 날랐고, 이스라엘은 미국 덕분에 시리아와 이집트 군대를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3. 기억해야 할 전쟁들
앞의 전쟁까지는 우리가 흔히 듣는 1~4차 중동 전쟁입니다. ‘1~4차 중동전쟁’이라고만 하면 마치 중동에서 4번 전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73년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서 벌이는 전쟁은 끝이 없습니다. 몇 가지 사례만 보겠습니다.
1970년 요르단 군대가 요르단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공격하여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검은 9월’ 사건을 벌입니다. 이 일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주요 세력이 레바논으로 옮겨갑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지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박살내고 레바논에 친이스라엘 정부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은 레바논과의 국경을 넘습니다.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 폭탄을 그야 말로 퍼 부었지요. PLO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순식간에 달려가 박살을 내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약 2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인들이 죽습니다.
휴전의 조건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부분 남성인 PLO 활동가들을 아프리카와 유럽 등지로 떠나라고 합니다. 미국은 PLO에게 ‘걱정 마. 남아 있는 너네 가족과 난민들은 우리가 보호해 줄게’라고 하지요. 하지만 PLO가 레바논을 떠나자 미군도 난민이고 뭐고 나 몰라라 하고 떠납니다. 잠깐 물러나는 듯 했던 이스라엘은 다시 9월에 베이루트에 있던 사브라와 샤틸라 두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기와 돈을 줘서 키운 레바논 우파 조직들을 난민촌 안으로 집어넣어 사흘 동안 3천여 명을 살해 합니다. 그 당시 난민촌에 남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었지요. 이스라엘은 PLO를 쫓아낸 것도 모자라 아예 씨를 말리겠다고 나선 겁니다. 사브라․샤틸라 학살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레바논 침공을 계속했고, 레바논 남부 지역은 아예 지네들 땅인 양 꿰차고 앉았지요. 왜 많은 레바논인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이를 부드득 가는 지 아시겠지요.
1987년 12월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티파다(민중항쟁)를 시작합니다. 한국과 팔레스타인 모두 1987년에 지배자들에 맞서 큰 투쟁을 벌인 거지요.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상가는 문을 닫고, 정부 공무원들은 사퇴를 했습니다. 거리에서 연일 집회와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상인들을 협박해 상점 문을 다시 열게 하고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겠다고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팔을 돌을 내리쳐 부러뜨렸습니다. 하루 23시간 또는 며칠씩 통행금지령을 내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복했고, 활동가들을 체포․구금․국외추방 하였습니다.
해를 넘기며 투쟁을 계속하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무마시킬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미국은 1990년부터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경제봉쇄와 군사공격으로 나빠진 중동 지역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지요. 또 팔레스타인 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을 만들고 투쟁을 벌이며 힘을 키우는 가운데 해외를 떠돌며 힘이 떨어져 가던 PLO 상층부와 PLO를 대표하던 아라파트는 자신들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1993년 미국+이스라엘+PLO가 만든 것이 오슬로 협정입니다. 많은 언론이나 학자들이 평화를 위한 대진전이라고 했고 협상에 참여한 사람은 노벨 평화상도 받았지요.
하지만 거창한 결혼식 뷔페에 막상 입에 딱 맞는 것 없는 것 마냥 겉은 화려한 협정이 실제 현실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점점 그 내막이 드러나면서 알게 된 것은 오슬로 협정이 평화를 위한 협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배를 좀 더 교묘하게 만들고 합법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거지요. 새로 들어선 자치정부는 자치를 위한 정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배를 대신하는 정부의 역할을 맡았던 겁니다. 협상에 대한 기대는 큰 실망으로 바뀌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2000년 9월 알 아크사 인티파다(2차 인티파다)로 폭발했습니다.
한편, 헤즈볼라와 레바논인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결국 2000년 5월에 레바논 남부 지역에서 철수합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중동 지역 민중들의 저항 때문에 점령하고 있던 땅을 내놓은 겁니다. 이스라엘이 왜 헤즈볼라 하면 이를 부드득 가는 지 아시겠지요. 이만 가는 것이 아니라 2006년에는 헤즈볼라를 박살내겠다고 또다시 레바논을 침공합니다. 한 달 정도 전쟁을 벌이면서 이스라엘은 인구 4백만 가량의 레바논에서 1천2백여 명을 살해하고 97만 명가량을 난민으로 만들었습니다.
레바논 침공을 06년 7월12일에 시작했는데, 6월말부터는 이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박살내고 있었습니다. 2개의 전선을 동시에 진행한 거지요. 2006년 1월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이 있었는데 선거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주요 정당 가운데 하나인 하마스(Hamas)를 찍지 말라고 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후보자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하마스와 파타(Fatah) 두 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하마스를 공격함으로써 파타를 지원하고 나선 것입니다. 선거 결과는 전체 132석 가운데 하마스가 74석을 얻어 집권당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는 테러리스트다’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하마스 정부를 비난하였습니다. 여기에 EU(유럽연합)까지 나서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들어가던 모든 자금줄을 끊어버렸습니다.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은 판국에 팔레스타인인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EU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하마스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줄을 끊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압박함으로써 하마스를 포기하라는 거죠. 입으로 돈으로 협박으로 해도 팔레스타인인들이 포기를 하지 않자 6월말부터 가자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해 그 해 말까지 수백 명을 살해합니다.
2008년 12월27일부터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광주시와 비슷한 150만의 인구를 가진 가지지구에서 22일 동안 1천4백여 명을 살해하고 5천5백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도하고 있던 이슬람 사원, 갈 곳 없어진 주민들이 피난을 와 있던 학교, 구급차와 방송국, 정부기관과 대학교 등 어느 것 하나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피부를 태우는 화학무기인 백린탄을 뿌려댔고, 붙잡은 팔레스타인인을 앞세우고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인간 방패 전술까지 사용했습니다. 전쟁 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하늘․땅․바다를 봉쇄하여 사람은 물론 식량․의약품․학용품․석유 등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4. 팔레스타인의 평화, 당신과 나의 꿈이었으며
전쟁을 하는 비용으로 자기 나라를 다스리면 생산은 증대될 것이요, 전쟁비용으로 남의 나라의 피폐를 구해주면 전쟁보다 이익이 더 클 것이다. 그러므로 대국이 불의하다면 다 같이 걱정해주고, 대국이 소국을 침공하면 협동하여 구해주고, 소국의 성곽이 부실하면 수리하게 하고, 곡식이 부족하면 나누어주고, 옷감이 부족하면 공급해주어라. - 묵자
여러분 혹시 유덕화와 안성기가 주연한 영화 [묵공]이라고 보셨나요? 공자, 맹자 하는 여러 ‘자’ 가운데 묵자라고 있지요. [묵공]은 묵자의 사상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A나라가 B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면 먼저 A나라에 가서 공격을 하지 말 것을 설득하고, 설득이 되지 않으면 B나라로 가서 A나라에 맞서 싸웠다고 하지요. 외적의 침입에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는 얘기는 많지만 다른 나라가 공격 받는 것에 함께 맞서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위험을 무릎 쓰는 것은 하기 쉬워도 남을 위해서 노력하고 위험을 무릎 쓰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일까요?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라고 했습니다. 내 가족, 니 가족 따지는 것이 문제라며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널리 사랑하자고 했지요.
세상 사람들을 ‘나’ ‘우리’ ‘그들’로 구별한다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쯤 되지 않을까요? 한국과 별다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팔레스타인 사람이 많이 사는 것도 아니고. 가끔 뉴스에 나오면 안타깝지만 또 눈앞에 안 보이면 쉽게 잊기도 하지요. 제가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이라고 한답시고 꼼지락거릴 때 자주 받았던 질문이 ‘우리나라에도 많은 일들이 있는데 왜 팔레스타인입니까?’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일이 아닌 그들의 일에 왜 관심을 갖느냐는 거겠지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인가요, ‘그들’인가요?
오늘 제가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서 잠깐 말씀 드린 것은 그들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역사로써의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말씀 드린 겁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한국인인데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우리 역사냐구요?
나만의 눈이 아니라 지구의 눈으로 보자구요. 지구의 눈으로 보면 한국인이냐 팔레스타인인이냐의 차이는 봄 볕 아래 무등산에 핀 진달래냐 개나리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국가나 민족의 눈이 아니라 인류의 눈으로 보자구요. 인류의 눈으로 보면 조선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을 지키는 것보다 억압 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역사가 더욱 중요해 지겠지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팔레스타인의 평화도 그들의 평화가 아니라 우리의 평화가 되겠지요. 그들의 꿈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꿈이 될 거구요.
* 팔레스타인 관련 책
1. 팔레스타인평화연대 - [라피끄-팔레스타인과 나] - 메이데이
2. 일란 파페 - [팔레스타인 현대사] - 후마니타스
3. 안영민 -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 책으로 여는 세상
4. 노암 촘스키 - [숙명의 트라이앵글] -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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