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에서 친구를 만나 차를 타고 길을 달렸습니다.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를 내리니 빨간색으로 예쁘게 꾸민 학교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성폭력이나 성매매로 피해를 입은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중등과정 교육을 진행하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간디 학교니 꽃피는 학교니 성미산 학교니 하는 대안학교와는 조금 다른 대안학교이지요.
저는 오늘 이곳에서 2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평화, 당신과 나의 꿈이었으면’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제가 인도와 팔레스타인에서 겪은 이야기를 가지고 빈곤과 폭력에 대해서 수다를 떨어 보려구요.
이상하다구요? 왜요?
맛난 국수로 점심을 먹고 교실로 갔습니다. 아직 수업 시간이 되지 않아 교실에는 1명의 학생이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수업 마치고 외출을 한다네요.
RATM의 “Killing in the Name"을 크게 틀어 놓고 강연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로 왔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아예 만화책을 펴놓고 보는 학생, 엎드린 학생들도 있었지만 많은 학생들이 저와 함께 얘기를 했습니다. 강연을 한창 하고 있는데 어떤 학생은 화장을 하면서 옆 학생의 얼굴도 함께 꾸며 주더라구요.
강연용 PPT에 제가 옛날에 머리를 길게 기른 사진이 나오니 몇몇 학생이 ‘아악’하더라구요. 제가 잘 생겼냐고 물어보니깐 그런 게 아니고 남자가 머리 기른 건 싫다더라구요. 남자가 머리 기른 건 왜 싫은지 좀 더 물어 볼 걸 그랬나 봅니다.
“아저씨, 중국어 해 보세요”
“중국어 못하는데요...”
“그럼 일본어 해 보세요”
“일본어 못하는데요...”
“그럼 영어는요?”
“어 리틀 빗”
“푸하하... 리틀이 뭐에요. 리를이지요”
“하하하”
한창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뜬금없이 중국어를 해 보라고 하네요. 제가 little을 리를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리틀이라고 했다고 웃더라구요.
아니 한창 수업 중인데 왜 화장을 하고 수업 내용과 관계없는 중국어 얘기를 꺼내느냐구요? 그건 잘못된 행동 아니냐구요?
혹시 민방위 훈련 가 보셨어요? 민방위 교육한다고 강당에 모아 놓고 앞에서 강사가 한창 한반도 정세가 어떠니 재난 시 대피 요령이 어떠니 해도 많은 사람은 잠을 자거나 가져온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립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가 아닐 때 자기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싶습니다. 강연을 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앉아 듣는 사람들이 모두 집중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떠드는 사람 입장이고 듣는 사람 입장은 다를 수 있지요.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 수업 시간에 화장을 어떻게 하냐구요? 이 물음을 다시 생각해 보면 왜 학생은 수업 시간에 화장을 하면 안 되나요? 어른은 교육 시간에 화장을 해도 되고 청소년은 하면 안 되나요?
청소년이 화장하는 게 눈에 거슬리시나요? 청소년들에게 그 화장품 팔아먹으려고 난리가 난 건 오히려 어른들 아닌가요?
다른 이를 존중하는 이유
강연 막바지에 다다르니 정말 많은 학생들이 끼리끼리 얘기를 하는 통에 순간 ‘계속 해야 될까, 그만 해야 될까’ 싶더라구요. 학생들에게 강연을 해 보신 분들은 이런 경험 한 번씩 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준비해 온 내용을 모두 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내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구요. 그저 앞에서 떠드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거고, 그걸 듣거나 아니거나 하는 것은 학생들이 판단할 일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무사히(?) 강연을 마쳤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길을 나섰습니다. 학교 입구에서 다시 만난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도 하고, 한 학생은 가지고 있던 귤은 건네주더라구요. 제가 귤을 까서 일부를 다른 학생에게 주니깐 처음 귤을 줬던 학생이 다른 학생 손으로 넘어간 귤을 뺏어서 ‘쟤 주지 말고 선생님 드세요. 그리고 인도 가서 총 맞지 마세요’라며 건네주더라구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얘기하면서 학교에서도 힘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니깐 ‘그래 우리도 그럴 수 있겠네’라고 했던 학생입니다.
또 다른 학생이 저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 대화가 제 기억에 오래 오래 남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근데 왜 존댓말 하세요?”
“네? 어... 당연하잖아요. 왜냐하면...”
왜 존댓말을 하느냐고 묻는 학생에게 그게 왜 당연한지를 말하려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낯선 사람에게 왜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거죠.
그러면서 강연 시간에 학생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나이가 적다고, 여자라고 어른들한테 무시당하거나 그런 적 없냐고 물으니깐 학생들이 자기 경험을 얘기 했습니다.
“있잖아요. 길에서 친구들 하고 놀고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우리보고 야이 씨발년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집에 안 가나라고 했어요. 8시도 안 됐을 때였는데...”
“선생님 있잖아요. 한 번은 제가 버스를 탔는데 의자가 다 비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앞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버스에 타더니 저보고 뒤로 가라고 막 소리 질렀어요. 뒤에도 자리 많았는데...”
두 학생이 이런 얘기를 하니깐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던 학생이 ‘어 나도 있는데’하면서 얘기를 꺼냈습니다.
“있잖아요. 건널목에 서 있는데 친구가 저쪽 편에 온 거에요. 그래서 제가 친구를 막 불렀는데 어떤 아저씨가 저보고 씨발년아 조용히 해라라고 했어요”
학생들이 집에 안가고 있다고 욕을 하던 아저씨는 왜 그 시간에 집에 안가고 있었을까요? 왜 버스에 탄 아저씨는 뒤에 가서 앉으면 될 것을 학생에게 소리를 질렀을까요? 길에서 친구를 만나 반가우면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를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덩치 큰 사람 여럿이 모여 건널목에서 소리를 쳐도 그 아저씨는 ‘야이 씨발놈들아’라고 했을까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착해서이거나 예의가 발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것이 동등하기 때문이겠지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힘이 세거나 약하거나 인간이란 존재는 졸리면 자야하고,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존재입니다.
나이 많다고 안 먹고 사는 사람 없고 힘세다고 열흘 밤낮을 자지 않고 버틸 수는 없습니다. 인간 동등성을 기준으로 보면 나이가 어떠니 힘이 어떠니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다른 것을 먼저 찾기보다 인간의 동등함을 먼저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연대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은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를 나와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오늘 강연이 저에게 아주 특별하다고 말했습니다. 강연에 집중하는 시간은 짧고 어수선하고 산만했지만 왠지 그 학생들이 마음에 많이 남더라구요
아마도... 그들의 선한 눈빛이 제 마음에 닿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 스치는 생각
1.
대안학교, 대안교육, 대안사회, 대안경제... 무엇으로부터의 대안인가?
사랑이 언제나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듯 대안도 어떤 대상에 대한 대안이다.
대상과 대안(1)과의 대립과 투쟁. 이행을 통한 대안(2)의 생성
대안(2)는 다시 대상(2)가 되고, 대안(3)은 대상(2)와 투쟁한다.
2.
이행의 과정은 주체의 실천 과정이기도 하다.
주체는 대상과 대안을 인식하고 이행 과정을 밝힘으로써 실천의 방향을 찾게 된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오직 영원한 운동, 언제나 새로운 인식과 실천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3.
새로움은 낡은 것이 될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밤이 올 줄 알면서도 제 가진 빛을 모두 뿜어대는 해처럼.
지금 내 앞에 달걀 10개가 있는데 이것이 생달걀인지 삶은 달걀인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자. 그것이 생달걀인지 삶은 달걀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가운데 하나를 들어 바닥에 내리 쳐 보는 것이다. 비록 하나의 달걀을 쓰지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9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며, 그냥 까먹던 부쳐 먹든 할 수 있을 것이다. 9개의 달걀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9개가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그 하나의 달걀이 되기를 두려워 말자.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 구조를 밝힘으로써 대상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이다. 신이 인간의 정신 속에서 탄생하듯 두려움은 환상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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