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 권 폅니다. 처음 펼 때는 ‘이 책을 천천히 읽고 많은 것을 배워야지’ 싶습니다. 그러다 책이 600쪽 정도 되면 솔직히 중간에 ‘아이고 이놈의 것 언제 끝나냐!’싶을 때도 있습니다.
힘=언어?
이 책은 1948년 건국 전후부터 1990년대까지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의 여러 집단이나 인물의 입장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책 제목인 ‘철의 장벽’이란 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 활동했던 유명한 시오니스트 제에브 야보틴스키Je'ev Jabotinsky의 글에서 따온 겁니다.
철의 장벽에 대한 제에브 야보틴스키의 전략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몰아내겠다는 전망을 포기하도록 팔레스타인인들을 압박하는 것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이 약자의 입장에서 유대인 국가와 협상에 나서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 606쪽
이런 야보틴스키의 생각을 이어 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을 지낸 모세 다얀입니다.
제에브 야보틴스키처럼, 모세 다얀도 유대인 군대를 강화하여 철의 장벽을 만들려고 했다. 야보틴스키처럼 다얀은 아랍권에게 아랍권의 군사적 열세를 보여주는데 이 장벽을 이용하려 했다. 그리고 야보틴스키처럼, 다얀은 아랍인들이 유대인에 대항한 투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데 철의 장벽을 이용하려 했다. - 103쪽
이스라엘에게 힘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신을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물들이 싸울 때 자기가 힘이 더 세다고 잔뜩 몸을 부풀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47~48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인 학살과 추방 그리고 아랍권과의 전쟁, 56년 수에즈 전쟁, 67년 6일 전쟁, 73년 10월 전쟁, 78년과 82년, 93년 레바논 침공 등 각종 범죄와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이 미워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상대에게 무언가 자기 의견을 전달해야겠다 싶으면 먼저 주먹으로 상대를 휘갈깁니다. 한창 두들겨 팬 다음에 상대가 기운이 빠졌다 싶으면 ‘평화협상’하자고 나옵니다. 상호 인정과 평등의 원칙 아래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눌러 놓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평화를 이루는 겁니다. 평화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그 평화란 것이 누가 말하는 어떤 평화인지를 잘 따져 봐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프랑스니 미국이니 하는 힘센 놈들한테 무기를 지원 받아 덩치를 키운 것은 맞지만 힘세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82년 레바논 침공의 사례만 봐도 2만 명 가까운 사람을 죽이고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레바논에서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친이스라엘 정권의 수립은 실패였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을 점령한 채 친이스라엘 조직인 남부 레바논 군(SLA. South Lebanon Army)에게 이 지역을 책임지라고 했지만 SLA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하는 다른 레바논 조직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지요. 또 두고두고 이스라엘에게 골칫거리가 되는 헤즈볼라(Hizbullah)도 이스라엘 덕분에 태어납니다. 한 놈(PLO)을 두들겨 부수고 나니 다른 놈(헤즈볼라)이 나타나서 덤비기 시작하는 거죠.
힘 모으기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이야기야 오래전부터 들어 왔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내부에도 비둘기파-매파가 있고, 좌파-우파가 있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잘 봐야할 것이 독수리 발톱을 가진 비둘기들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야이 개자식아!’라고 부르는 비둘기파와 ‘야이 개새끼야!’라고 부르는 매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흔히 비둘기파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이츠라크 라빈 전 총리입니다. 라빈은 이스라엘이 67년 6일 전쟁을 통해 주변 지역을 정복할 수 있도록 만든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지요.
1986년 3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 인근에서 이츠하크 라빈은 킹 후세인(요르단 국왕)을 만났다...라빈은 PLO 게릴라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후세인에게 요르단에 있는 PLO 활동가들을 단속하라고 요구했다...후세인 국왕은 요르단으로 돌아오자마자 암만(요르단 수도)에 있는 PLO 사무실을 폐쇄하도록 명령했다...라빈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주데아-사마리아(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 지역에서 요르단의 입지를 강화하고 PLO를 두들겨 부수는 것이다.” - 437~438쪽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 이스라엘 내부 정치를 비둘기-매, 좌파-우파, 노동당-리쿠드당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마치 비둘기가 진짜 비둘기인 것처럼 설명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정치에서 비둘기와 매의 차이는 평화냐 전쟁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눈치도 좀 보면서 전쟁을 하자’와 ‘남의 눈이야 내 알 것 없으니 무조건 싸우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계속 전쟁을 하고 주변 국가들과 대결을 벌이니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제일 큰 힘은 미국에서 나오지요. 요르단과 같은 국가는 이스라엘 건국이전부터 유대인들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땅을 나눠 먹자고 합니다. 건국 이후에는 요르단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이 요르단 왕정에 대항하니 이스라엘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두들겨 부숩니다.
요르단만 그런가요. 터키도 한 몫 합니다. 지도를 잘 보시면 터키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은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의 적이기도 했지요.
1996년 2월, 두 나라는 군사협력에 관한 협정을 맺었지만 공식 선언은 2달 뒤로 미뤘다. 터키는 이스라엘 공군이 자국 영공과 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라엘은 터키에게 군사 설비를 공급하고 터키 공군의 팬텀 전투폭격기 기능 향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이스라엘은 두 방향에서 시리아를 폭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란 코앞에 제트 전투기를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 558쪽
1950년대부터 터키는 이란,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대소련 전진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79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터키와 이스라엘이 남아서 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이스라엘:아랍 또는 유대:이슬람이라는 대결 구도가 언제나 명확하게 이어지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거죠.
과대망상 그리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가장 든든한 동맹이 미국인 것은 맞지만 미국이 100%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친미 정권인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티격태격하기 보다는 오순도순 지내는 것이 미국의 중동 및 아프리카 정책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틈만 나면 싸움질만 하려고 하니 때로는 이스라엘의 팔을 비틀어 ‘고만해라’라고 하는 겁니다.
미국이든 누구든 이스라엘에게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늘 내세우는 것이 ‘홀로코스트를 잊었느냐’입니다. 2011년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는 1996~1999년에도 이스라엘 총리 자리를 맡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글쓴이의 네타냐후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지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아랍 관계를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 사이의 항구적인 분쟁, 끝없는 투쟁으로 봅니다...네타냐후는 “아랍 정치 속에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폭력은 반대 세력(국제든 국내든, 아랍이든 비아랍이든)을 다루는 주요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합니다...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 자결권을 거부합니다...네타냐후는 PLO와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PLO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 566쪽
네타냐후의 생각과 달리 PLO는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보다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의 국가를 건설해서 공존하자는 입장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 종교인들, 학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전쟁을 정당화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포기해야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말하는 테러란 곧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점령 운동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PLO와 아라파트(전 PLO 의장)는 테러를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협상을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테러를 중단했을까요? 물론 답은 ‘아니요’입니다.
야보틴스키가 힘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자리에 앉히려고 한 반면, 그의 후예들은 힘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에게 평화협상은 주변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과의 문제이지 팔레스타인인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권이 일으킨, 아랍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이스라엘이 해결해야 할 팔레스타인 문제란 없다는 거지요. ‘팔레스타인 문제’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지 뜻대로만 되나요. 팔레스타인들이 싸우고 이집트며 시리아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기하고 미국도 ‘야, 형님 체면도 좀 생각해 줘야지!’하니 이스라엘도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팔레스타인인들과 마주 앉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한 거지요. 어떻게든 팔레스타인인이란 말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 했던 겁니다.
답답한 노릇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더라는 겁니다.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인들과 협상 자리에 앉아야 되는 때가 온 거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직접 팔레스타인인과 마주할 수는 없으니 요르단 대표단에 팔레스타인인을 끼워 넣으라는 겁니다. PLO에 소속되지 않은 친요르단 인물로 말입니다.
1987년 팔레스타인 민중항쟁인 인티파다가 시작되고, 점령지 안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던 PLO와 협상을 하게 됩니다. 군사력을 통한 지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깐 이젠 군사+정치+경제 등 다양한 방법을 섞어서 점령을 유지하겠다는 거지요. 좋으나 싫으나 어쨌거나 이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아라파트는 히틀러고 PLO는 나치라고 부르던 과대망상이 현실에서 점점 깨진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과연 변할 수 있겠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역사를 보면 변하기는 변하네요.
글 읽기
글쓴이는 오슬로 협정 이후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리쿠드당 정부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점령촌을 확대한 것이라고 합니다.(587쪽)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분쟁은 이웃한 아랍 국가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이자 핵심은 유대인을 한 편으로 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두 민족해방운동에 있다. 1948년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의 목표인 유대인의 민족자결권을 현실화 했지만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재앙(아랍어로 나크바)이었다. - 598쪽
이렇게만 읽으면 왠지 근사한 말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민족해방운동이라고 하면 한 민족을 지배하는 다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지배 민족에 대항한 해방운동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 민족을 학살했던 것은 독일이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한 것은 민족해방운동이 아니라 점령과 정복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을 힘으로 지배함으로써 유대인이 지배민족이 된 거지요. 따라서 현재 분쟁의 뿌리는 두 민족해방운동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지배하려는 자와 해방을 이루려는 자 사이의 갈등입니다.
국가나 법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그 자유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말할 자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역사를 읽는 다는 건 단순히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를 읽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관계를 읽는다는 것은 그들이 모여서 무얼 하고 놀았는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해방, 억압과 자유를 향한 운동과 변화를 읽는 것이겠지요.
물론 황무지와 같은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다는 것이 그 나름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다 낡아 버렸으면서도 워낙 견고하게 세워진 것이어서 쉴 새 없이 누군가가 자기의 소유물이나 거처로 삼아 왔던 그러한 도시에 새로운 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에 필요한 재료가 아무리 충분할지라도 그보다 한층 더한 또 다른 종류의 장애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흔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래의 많은 소재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되겠다. - 헤겔
힘=언어?
이 책은 1948년 건국 전후부터 1990년대까지 이스라엘이 아랍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의 여러 집단이나 인물의 입장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탱크에 국기를 달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
책 제목인 ‘철의 장벽’이란 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 활동했던 유명한 시오니스트 제에브 야보틴스키Je'ev Jabotinsky의 글에서 따온 겁니다.
철의 장벽에 대한 제에브 야보틴스키의 전략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몰아내겠다는 전망을 포기하도록 팔레스타인인들을 압박하는 것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이 약자의 입장에서 유대인 국가와 협상에 나서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 606쪽
이런 야보틴스키의 생각을 이어 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을 지낸 모세 다얀입니다.
제에브 야보틴스키처럼, 모세 다얀도 유대인 군대를 강화하여 철의 장벽을 만들려고 했다. 야보틴스키처럼 다얀은 아랍권에게 아랍권의 군사적 열세를 보여주는데 이 장벽을 이용하려 했다. 그리고 야보틴스키처럼, 다얀은 아랍인들이 유대인에 대항한 투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데 철의 장벽을 이용하려 했다. - 103쪽
이스라엘에게 힘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자 자신을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물들이 싸울 때 자기가 힘이 더 세다고 잔뜩 몸을 부풀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47~48년에 걸친 팔레스타인인 학살과 추방 그리고 아랍권과의 전쟁, 56년 수에즈 전쟁, 67년 6일 전쟁, 73년 10월 전쟁, 78년과 82년, 93년 레바논 침공 등 각종 범죄와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모세 다얀(왼쪽)과 아리엘 샤론(오른쪽)
제가 이스라엘이 미워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상대에게 무언가 자기 의견을 전달해야겠다 싶으면 먼저 주먹으로 상대를 휘갈깁니다. 한창 두들겨 팬 다음에 상대가 기운이 빠졌다 싶으면 ‘평화협상’하자고 나옵니다. 상호 인정과 평등의 원칙 아래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눌러 놓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평화를 이루는 겁니다. 평화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그 평화란 것이 누가 말하는 어떤 평화인지를 잘 따져 봐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프랑스니 미국이니 하는 힘센 놈들한테 무기를 지원 받아 덩치를 키운 것은 맞지만 힘세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82년 레바논 침공의 사례만 봐도 2만 명 가까운 사람을 죽이고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레바논에서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친이스라엘 정권의 수립은 실패였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을 점령한 채 친이스라엘 조직인 남부 레바논 군(SLA. South Lebanon Army)에게 이 지역을 책임지라고 했지만 SLA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하는 다른 레바논 조직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지요. 또 두고두고 이스라엘에게 골칫거리가 되는 헤즈볼라(Hizbullah)도 이스라엘 덕분에 태어납니다. 한 놈(PLO)을 두들겨 부수고 나니 다른 놈(헤즈볼라)이 나타나서 덤비기 시작하는 거죠.
힘 모으기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이야기야 오래전부터 들어 왔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내부에도 비둘기파-매파가 있고, 좌파-우파가 있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잘 봐야할 것이 독수리 발톱을 가진 비둘기들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야이 개자식아!’라고 부르는 비둘기파와 ‘야이 개새끼야!’라고 부르는 매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군인 시절의 이크하크 라빈
흔히 비둘기파의 대표격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이츠라크 라빈 전 총리입니다. 라빈은 이스라엘이 67년 6일 전쟁을 통해 주변 지역을 정복할 수 있도록 만든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지요.
1986년 3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 인근에서 이츠하크 라빈은 킹 후세인(요르단 국왕)을 만났다...라빈은 PLO 게릴라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후세인에게 요르단에 있는 PLO 활동가들을 단속하라고 요구했다...후세인 국왕은 요르단으로 돌아오자마자 암만(요르단 수도)에 있는 PLO 사무실을 폐쇄하도록 명령했다...라빈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주데아-사마리아(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 지역에서 요르단의 입지를 강화하고 PLO를 두들겨 부수는 것이다.” - 437~438쪽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 이스라엘 내부 정치를 비둘기-매, 좌파-우파, 노동당-리쿠드당 중심으로 설명하다 보니 마치 비둘기가 진짜 비둘기인 것처럼 설명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정치에서 비둘기와 매의 차이는 평화냐 전쟁이냐의 차이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눈치도 좀 보면서 전쟁을 하자’와 ‘남의 눈이야 내 알 것 없으니 무조건 싸우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계속 전쟁을 하고 주변 국가들과 대결을 벌이니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제일 큰 힘은 미국에서 나오지요. 요르단과 같은 국가는 이스라엘 건국이전부터 유대인들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땅을 나눠 먹자고 합니다. 건국 이후에는 요르단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이 요르단 왕정에 대항하니 이스라엘과 손잡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두들겨 부숩니다.
요르단만 그런가요. 터키도 한 몫 합니다. 지도를 잘 보시면 터키는 시리아, 이라크,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은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의 적이기도 했지요.
1996년 2월, 두 나라는 군사협력에 관한 협정을 맺었지만 공식 선언은 2달 뒤로 미뤘다. 터키는 이스라엘 공군이 자국 영공과 기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라엘은 터키에게 군사 설비를 공급하고 터키 공군의 팬텀 전투폭격기 기능 향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이스라엘은 두 방향에서 시리아를 폭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란 코앞에 제트 전투기를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 558쪽
1950년대부터 터키는 이란,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대소련 전진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79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터키와 이스라엘이 남아서 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이스라엘:아랍 또는 유대:이슬람이라는 대결 구도가 언제나 명확하게 이어지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거죠.
과대망상 그리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가장 든든한 동맹이 미국인 것은 맞지만 미국이 100%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친미 정권인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티격태격하기 보다는 오순도순 지내는 것이 미국의 중동 및 아프리카 정책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틈만 나면 싸움질만 하려고 하니 때로는 이스라엘의 팔을 비틀어 ‘고만해라’라고 하는 겁니다.
미국이든 누구든 이스라엘에게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늘 내세우는 것이 ‘홀로코스트를 잊었느냐’입니다. 2011년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는 1996~1999년에도 이스라엘 총리 자리를 맡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글쓴이의 네타냐후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지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아랍 관계를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 사이의 항구적인 분쟁, 끝없는 투쟁으로 봅니다...네타냐후는 “아랍 정치 속에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폭력은 반대 세력(국제든 국내든, 아랍이든 비아랍이든)을 다루는 주요한 방법이다”라고 주장합니다...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 자결권을 거부합니다...네타냐후는 PLO와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PLO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 566쪽
네타냐후
네타냐후의 생각과 달리 PLO는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보다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개의 국가를 건설해서 공존하자는 입장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 종교인들, 학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면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전쟁을 정당화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포기해야 협상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말하는 테러란 곧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점령 운동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어쨌거나 PLO와 아라파트(전 PLO 의장)는 테러를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협상을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테러를 중단했을까요? 물론 답은 ‘아니요’입니다.
야보틴스키가 힘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자리에 앉히려고 한 반면, 그의 후예들은 힘을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에게 평화협상은 주변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과의 문제이지 팔레스타인인과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권이 일으킨, 아랍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이스라엘이 해결해야 할 팔레스타인 문제란 없다는 거지요. ‘팔레스타인 문제’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하지만 세상이 어디 지 뜻대로만 되나요. 팔레스타인들이 싸우고 이집트며 시리아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기하고 미국도 ‘야, 형님 체면도 좀 생각해 줘야지!’하니 이스라엘도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팔레스타인인들과 마주 앉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한 거지요. 어떻게든 팔레스타인인이란 말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 했던 겁니다.
답답한 노릇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더라는 겁니다.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인들과 협상 자리에 앉아야 되는 때가 온 거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직접 팔레스타인인과 마주할 수는 없으니 요르단 대표단에 팔레스타인인을 끼워 넣으라는 겁니다. PLO에 소속되지 않은 친요르단 인물로 말입니다.
1987년 팔레스타인 민중항쟁인 인티파다가 시작되고, 점령지 안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던 PLO와 협상을 하게 됩니다. 군사력을 통한 지배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깐 이젠 군사+정치+경제 등 다양한 방법을 섞어서 점령을 유지하겠다는 거지요. 좋으나 싫으나 어쨌거나 이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아라파트는 히틀러고 PLO는 나치라고 부르던 과대망상이 현실에서 점점 깨진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가 과연 변할 수 있겠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역사를 보면 변하기는 변하네요.
글 읽기
글쓴이는 오슬로 협정 이후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리쿠드당 정부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점령촌을 확대한 것이라고 합니다.(587쪽)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분쟁은 이웃한 아랍 국가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이자 핵심은 유대인을 한 편으로 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두 민족해방운동에 있다. 1948년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의 목표인 유대인의 민족자결권을 현실화 했지만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재앙(아랍어로 나크바)이었다. - 598쪽
이렇게만 읽으면 왠지 근사한 말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민족해방운동이라고 하면 한 민족을 지배하는 다른 민족이 있어야 하고, 지배 민족에 대항한 해방운동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 민족을 학살했던 것은 독일이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한 것은 민족해방운동이 아니라 점령과 정복이었습니다. 아랍인들을 힘으로 지배함으로써 유대인이 지배민족이 된 거지요. 따라서 현재 분쟁의 뿌리는 두 민족해방운동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지배하려는 자와 해방을 이루려는 자 사이의 갈등입니다.
아비 쉬라임, [철의 장벽 -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
국가나 법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도 현실에서는 그 자유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말할 자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역사를 읽는 다는 건 단순히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를 읽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관계를 읽는다는 것은 그들이 모여서 무얼 하고 놀았는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해방, 억압과 자유를 향한 운동과 변화를 읽는 것이겠지요.
물론 황무지와 같은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다는 것이 그 나름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다 낡아 버렸으면서도 워낙 견고하게 세워진 것이어서 쉴 새 없이 누군가가 자기의 소유물이나 거처로 삼아 왔던 그러한 도시에 새로운 시설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에 필요한 재료가 아무리 충분할지라도 그보다 한층 더한 또 다른 종류의 장애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흔히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재래의 많은 소재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되겠다. -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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