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략 2003년에서 2006년까지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작은 ‘로드맵’입니다. ( 로드맵 내용 보기 http://blog.daum.net/minibabo/15677337 )
로드맵
2003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하고 중동 평화를 가져온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주도한 로드맵이라는 것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3단계에 걸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하면 몇 년 뒤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국가가 공존하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마흐무드 압바스(팔레스타인. 왼쪽), 조지 부시(미국. 가운데),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오른쪽)
첫째, 로드맵은 2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2국가를 만든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1국가 방안은 아예 처음부터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2국가 방안을 채택한다고 해도 어디에다 2개의 국가를 만드냐가 문제입니다. 흔히 하는 얘기는 이스라엘이 1948년에 점령한 지역에 이스라엘을, 1967년 점령지에 팔레스타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67년 점령지를 돌려준다는 것은 예루살렘과 점령촌, 수자원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은 폭력을 중단하라고 합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너무 당연한 얘기 갔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당연하지 않습니다.
로드맵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군과 경찰을 강화한 뒤 이들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조직과 싸워야 한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 조직과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테러의 기반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테러의 기반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총을 들고 싸우는 군사 조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치 조직과 관련된 사회복지, 교육 관련 단체들까지 의미합니다. 결국 자치정부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말하는 테러리스트 조직과 싸운다는 것은 내전에 돌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16쪽)
똑같은 얘기를 이스라엘 쪽에 적용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모든 무력 공격을 멈추는 것은 물론이요, 이스라엘 정부나 정당과 관련된 각종 사회단체들까지 해체시켜야 합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평화안이라고 내놓은 겁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파타(FATAH)라는 정당과 마흐무드 압바스라는 인물이 중심이 된 자치정부는 로드맵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조직들과 싸움을 벌이고 활동가들을 감옥에 쳐 넣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이스라엘 군인을 감옥에 넣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셋째,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라는 말은 로드맵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팔레스타인인들이 인정해야할 이스라엘이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 2006년 자치정부 총선의 결과로 구성된 하마스 정부의 총리 이스마일 하니예가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스라엘을 인정해야 합니까? 1917년의 이스라엘? 1936년의 이스라엘? 1948년의 이스라엘? 1956년의 이스라엘? 1967년의 이스라엘? 어떤 국경과 어떤 이스라엘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먼저 팔레스타인 국가와 국경을 인정하고 나서야 우리가 토론해야 하는 것이 무언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 152쪽
가자지구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있던 점령촌을 철수 시킵니다. 알박기 마냥 가자지구 여기저기에 눌러 붙은 점령촌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빼앗고 이동권을 박탈한 것은 물론 점령촌 군인들은 쉼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따라서 점령촌 철수는 그것만으로도 큰 사건이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울며불며 가자지구를 떠나는 이스라엘인들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샤론은 평화를 위해 크게 노력한 사람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이젠 팔레스타인인들이 뭔가 해야 한다’식으로 나왔습니다.
점령촌 철수 이전 가자지구. 분홍색은 이스라엘 점령촌. 빨간색은 팔레스타인 난민촌.
빨간 동그라미 가운데 까만 짝대기는 외부와의 통로가 되는 검문소.
글쓴이의 생각은 당시 샤론은 가자철수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국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보죠. 2000년 알 아크사 인티파다(2차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이스라엘은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합니다. 2002년 제닌 난민촌을 박살낸 것은 유명한 사건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공격을 계속하자 세계 곳곳에서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2001년에는 9.11이 일어나고 같은 해 10월부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합니다. 2003년 3월에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고, 미국은 아랍권과 세계에 자신의 잘못을 가릴 만한 뭔가를 보여 줘야 할 때였습니다. 이라크 침공 직후 로드맵이 태어났습니다.
문제는 로드맵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로드맵이고 뭐고 싫다는 겁니다. 로드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쨌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협상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늘 해 왔던 말이 ‘평화를 위한 파트너가 없다’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테러나 일삼는 무리들만 득실거린다는 말이지요.
또 로드맵대로 하자면 이스라엘이 67년에 점령한 지역에서 일부 철수해야 합니다. 논의 대상으로 조차 삼고 싶지 않은 예루살렘, 수자원, 점령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요.
이스라엘의 선택은 ‘개기기’입니다. 지금은 미국도 압력을 넣고 세상도 시끄럽지만 시간을 좀 끌면서 팔레스타인인의 테러를 열심히 떠들면 미국도 세상도 좀 잠잠해지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흐지부지 뭉개버리면 그만인 겁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둘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100%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로드맵과 가자철수의 사례에서처럼 이스라엘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동생을 죽일라고 그랍니까?’ 하니깐 미국이 ‘아그야. 내도 좀 살자’라고 하는 거지요.
백악관과의 두 번 째 분쟁은 이스라엘이 중국과 무기 거래를 하면서 벌어졌다. 이 문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티격태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미국은 이스라엘이 중국에게 팔콘(Phalcon) 조기경보기를 판매하려 하자 계획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었는데 당시 계약 규모는 10억 달러를 넘었다. 결국 이스라엘이 계약을 포기하는데 동의함으로써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은 끝이 났다. - 120쪽
형님 때문에 사는 건 맞지만 형님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게 이스라엘입니다. 동생이 내 말을 잘 들으니 뒤를 봐 주기는 하지만 내 장사 망치면서까지 동생 뒤를 봐 줄 수 없다는 미국이구요.
아무튼 미국은 어떻게든 개겨보려는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어서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게 만들었습니다.
끝없는 전쟁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면서 가자지구 외부를 완전히 통제하여 이곳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가자지구-이집트 국경인 라파 국경 사무소에도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외부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출입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가자지구를 감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의 이동을 차단했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수출입을 통제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목을 죄면서 외부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가자지구를 가난과 절망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 발전과 저항을 가로막는데도 필요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사회적 붕괴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점령촌 철수 이후 이스라엘이 만든 감옥 같은 미래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 될 거라 생각했다. - 133쪽
로드맵도 그렇고 가자지구 철수도 그렇고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해방된 줄 알았더니 감옥이 된 겁니다.
지난 며칠 동안 가자지구는 하늘을 산산이 부수고, 건물을 흔들고, 유리창을 깨고, 가자지구를 혼란 속에 빠뜨린 끔찍한 폭발 때문에 해방이라는 꿈에서 깨어났다. 9월 23일 금요일 이후 낮과 밤 가리지 않고 폭격을 계속했다. 주로 새벽 2~4시 사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시간인 오전 6:30~8:00 사이, 그리고 오후와 이른 저녁... 가자지구는 혼란에 빠졌다. 아이들은 불안해했고, 울었고, 겁에 질렸고, 이불에 오줌을 쌌다. - 140~141쪽
앞의 이야기는 가자 철수 이후 이스라엘이 쏘아댄 소음 폭탄에 관한 증언입니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굉음을 일부러 만들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눈앞에 보이던 점령촌과 점령민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지만 괴롭힘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2005년 가자에서 철수한 뒤, 2006년 1월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이 있었습니다. 이 선거에서 하마스(HAMAS)가 132석 가운데 74석, 파타가 45석, 진보정당들이 9석을 얻었습니다.
하마스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미국도 EU도 바라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미 치러진 선거를 두고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선거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할 수 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스라엘이 난리를 피우자 미국과 EU의 태도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난리를 피운 이유는 하마스가 오랜 시간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파타 중심의 자치정부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PLO의 아라파트를 꼬드겨서 1993년에 오슬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협정으로 자치정부가 들어섰고, 자치정부의 주된 일은 이스라엘 대항해 민족해방을 얻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마스 정부가 들어선다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협력했던 팔레스타인 내부 조직들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 경제 봉쇄와 군사 공격으로 하마스 정부를 무너뜨렸던 거지요.
장벽 너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곳곳에 고립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주변에 장벽을 쌓아 감옥으로 만드는 거지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장벽 건설에 반대해 팔레스타인인-이스라엘인-국제활동가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어떻게 싸워 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인이라고 하면 고용주나 군인으로 알았던 것처럼, 많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이번이 팔레스타인인을 만나는 첫 경험이었다. 나지 살라비는 “당신이 오기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도 우리와 평화롭게 살려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 186쪽
장벽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을 만들고 이스라엘과 국제 사회에 연대를 호소하자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집과 땅을 부수는 탱크 앞에 서기도 하고 이스라엘 군인의 총구 앞에 몸을 들이대기도 했지요. 팔레스타인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인들, 국제활동가들도 죽거나 다쳤습니다.
이들의 투쟁이 아직 장벽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장벽 건설 경로를 일부 바꾸기도 했고, 빌린(Bil'in) 지역은 몇 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이 억울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게 해서 언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겠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아는 건 유대인들이 한발 한발 돈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고 조직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힘을 키워갔듯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우리도 한발 한발 마음을 모으고 노력을 쌓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2007년에 죽은 이스라엘 학자 타냐 레인하르트Tanya Reinhart의 [갈 곳 없는 로드맵The Road Map to Nowhere - 2003년 이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마지막은 ‘장벽에 반대하는 빌린 인민위원회’ 활동가 무함마드 카티브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장벽 속에서 조용히 목 졸려 죽기를 거부합니다. 팔레스타인 소설가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를 보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트럭 탱크에 갇혀 질식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들을 발견한 운전사는 “왜 탱크를 두드리지 않았어요?”라고 소리칩니다. 여기 빌린에서 우리는 두드리고 있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해 주십시오. -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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