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본래의 사고는 주어진 존재에 휘둘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사색을 해 나간다고 보기 때문이다...철학은 역사를 하나의 재료로 다루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사고에 의해 질서를 세워, 이른바 역사를 선천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 19쪽
헤겔은 이 책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역사를 구성합니다. 역사를 파악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저 나름의 생각대로 ‘구성’하는 겁니다. 두꺼운 이 책이 내내 지루했던 것은 헤겔이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하는 방법 때문일 겁니다.
세계사
우리의 인식은 영원한 지혜가 추구하는 것이 자연의 지반 위에서와 같이 현실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신의 지반 위에도 나타나 있다고 하는 통찰의 획득을 목표로 나아간다. - 25쪽
정신의 발전은 유기생명처럼 평탄하고 투쟁이 없는 단순한 발현과는 달리, 자신과 대결하는 냉혹하고 자학적인 노동이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자기발전이 아니라 일정한 내용을 지닌 목적의 실현이다. 이 목적은 애초부터 확정되어 있는데 그것이 정신이고, 더구나 자유를 본질 내지 개념으로 하는 정신이다. - 64쪽
정신의 최고 사명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 79쪽
세계사란 정신이 스스로를 자유라고 의식하는 자유의식의 발전과정과 이 의식에 의해서 산출되는 자유의 실현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 71쪽
세계사란 이미 말한 것처럼 정신이 시간 속에서 전개해가는 것이다. - 79쪽
정신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각한다’ ‘사고한다’와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정신 자체가 본질과 형태를 가지면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한다는 거지요. 헤겔에게 세계사는 정신이 시공간 속에서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시대구분은 왕조의 변천 과정도, 생산양식의 변화 과정도 아니고 정신의 발전 과정을 나타내는 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발전은 목적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목적이 정해져 있다? 정말 그럴까요? 그리고 세계는 정신이 주체가 되어 주체인 정신이 자신을 전개해가는 걸까요? 정신은 원리가 되어 투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민주정치에서도 당파투쟁이란 형태에서의 분열은 있었지만, 로마에서는 전체가 몇 개의 원리로 분열하고 그것이 서로 적대하고 항쟁을 한다...두 근본원리의 대립은 바로 로마의 가장 뿌리 깊은 본질이다. - 276쪽
유럽 밖의 세계
세계사는 동에서 서로 향한다. 유럽은 세계사의 끝자락을 쥐고 있음에 불만이 없으며, 아시아는 세계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냥 동쪽이라고 하면 상대적이지만 세계사에는 절대의 동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근데 역사는 그 주위를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동을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아시아이다. - 109쪽
헤겔에게 아시아나 동양은 세계사에서 좀 덜떨어진 지역입니다. 역사는 동에서 서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는 거지요.
아시아의 두 나라에는 국가의 본질을 이루는 자유 개념의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중국은 도덕법칙은 자연법칙처럼 외부로부터 강요된 명령이자, 강제법과 강제의무이고, 그도 아니면 인간 상호의 예절이다. 공동체의 이성적인 규율을 심정적인 도덕으로 바꾸는데 필요한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78쪽
국가의 본질을 자유 개념의 의식이라고 합니다. 동양에는 인간 내면으로부터 돋아나는 자유 개념의 의식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거지요.
아메리카 토착민의 나약함이 흑인을 아메리카로 끌고 와서 각종 노동을 시키게 된 주된 이유이다. 왜냐하면 흑인은 인디언보다 유럽의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영국인 여행가에 따르면 흑인 가운데선 뛰어난 선교사나 의사가 나오지만, 원주민 가운데선 공부할 마음을 가진 자가 단 한명 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그 남자도 브랜디를 너무 마셔서 얼마 안 가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 89쪽
아메리카 토착민의 나약함이 흑인을 아메리카로 끌고 와서 노동을 시킨 이유가 아니라 유럽 자본가들의 이윤을 생산하려는 욕망이 흑인 노예를 끌고 온 이유이겠지요. 아무튼 이 책 전반에 헤겔이 유럽 밖의 세계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드러납니다.
유럽 사람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 욕해서 기분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에게 자유가 없었다면 없었던 그것대로 잘못이고, 무지했다면 무지한 것대로 극복해야할 것이겠지요.
중국은 국가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개인이나 단체가 특수한 이해관계에 있어서나, 국가 전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독립된 권리를 갖는 것이 전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독립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행정만이 문제가 된다. - 129쪽
왕의 한마디에 농사짓던 땅을 내놓아야 하고, 목이 잘려 나가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생물로써 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개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왕과 백성만 있는 거지요.
동양에선 내면적인 주체성이 아직 자립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직접의 구별이 나타났을 때, 어떤 것은 선택하는지는 개인의 자발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출신(자연)에 따른 것이다...그리스도교 세계의 계급과 인도 계급의 다른 한 가지 차이는 말할 것도 없이 공동체의 평가에 관계된 것으로서 유럽의 경우, 어느 계급 사람에게나 가치가 인정되고, 또 가치는 그 사람 자신 속에, 그 사람 자신의 힘에 의해 존재한다. - 149쪽
동양은 그렇지 않은데 그리스도교나 유럽은 그렇다는 말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거나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그것에 따라 사회 활동을 하게 되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와 마찬가지로 도시도 봉건제의 폭력행위에 대한 반동을 나타난 것으로 그것은 최초의 자치권력이었다...토지를 경작하면서 서로 접근해 온 개인은 자기들 사이에서 연합이라든가 동맹으로 불리는 일종의 유대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전에는 오로지 영주를 위해서 행했던 것을 일치단결해서 자신들을 위해 행하려고 한다...도시는 차츰 재판 관할권까지도 사들여 모든 조세, 관세, 이자지급에서 해방되었다. - 373쪽
국가
이 책에서 헤겔이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국가’입니다. 자주 쓸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지요.
국가는 정신의 공동생활이고,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신뢰와 습관에 바탕하여 국가와 관련을 맺고, 국가야말로 자기의 본질이자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현실생활이 국가와의 통일을 반성 없는 습관 내지 관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개인이 반성할 능력이 있는 자립한 인격적인 주체로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 109쪽
국가가 정신의 공동생활이라고 하네요. 국가는 정신이나 정신의 공동생활이라고 하기에는 그것 말고도 더 많은 것은 품고 있겠지요. 모든 개인의 정신이 아주 발전하고, 발전한 정신을 가진 개인이 모여 국가를 만든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리스정신과 그리스국가에 걸맞은 체제로는 민주제밖에 없다...그리스에는 개인의 자유가 존재하지만 그 자유는 공동체인 국가 자체에 완전하게 종속하는 데까지는 추상화되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의사가 매우 활기차고 자유롭게 오가며, 저마다 맡은 바 공동체의 일에 종사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 246쪽
시민이 저마다 공개된 광장에서 국가통치에 관한 연설을 스스로 하고, 또 듣고, 김나지움(체조장)에서 몸을 단련하고, 제전에 참가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은 아름다운 민주정치의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임무를 다하려면 시민이 손으로 하는 일에서 해방되어, 근대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시민의 손에 맡겨지는 일상적인 일을 노예에게 시킬 필요가 있다. 시민의 평등도 노예를 제외하고 성립한다. 노예제도가 폐지되려면 의지가 내면을 향하여 철저히 반성하고, 자유인 누구에게나 인권을 인정하며, 또 이성을 지닌 인간은 그 본성상 누구나 자유인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 249~250쪽
유럽의 동쪽에 있는 중국이나 인도, 페르시아에 비해 그리스 정신의 발전을 이룬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지요. 시민들이 민주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면서 노예를 부렸다는 겁니다. 누구는 자유롭고 누구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조직이 잘 정비된 국가라면 반드시 일정한 보호 기관이 있고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분별해 재산의 안정을 위해서는 사회가 안정될 필요성을 인식하고...반드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려면 우선 보호가 안 된 상태로 두어야 한다...각자의 의사는 우선 눈에 보이는 자신의 소유물밖에는 생각할 수 없으나, 국가 보호의 중요성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 남의 일 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로 있을 수 없게 되어 타인과 결합해 사회를 만들어나갈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 360쪽
국가의 주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들이 지 재산 지킬 생각만 하고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선은 보호 안 된 상태로 나눠서 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자는 겁니다. 무지에서 혼란으로, 혼란에서 안정된 국가로?
역사의 전진은 주관적인 독선과 권력의 분산을 추진한다는 부정적인 면을 지님과 동시에 공동체에 뿌리내린 최고권력-국가권력 그 자체-를 낳는다는 긍정적인 면을 지닌다. 국가권력 하에 있는 국민은 서로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자신의 특수한 의사를 공공의 목적에 종속시킨다. - 385쪽
군주제도 최고 권력에 의한 지배를 원리로 하는데 제멋대로 행동하는 독립된 권력 제후에 대한 지배체제는 아니고 여기에서는 더 이상 독선적인 권력끼리 다투는 일은 없다. 그 이유는 군주의 최고 권력은 그 본질로 볼 때 국가권력이고 공동의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386쪽
헤겔이 바랐던 국가란 그런 것이었나 봅니다. 국가가 국민을 서로 동등하게 만들지, 국가가 개인의 동등성을 깨뜨릴 지는 더 살펴봐야 하겠지요.
국가의 법에 대한 복종이 이성에 걸맞은 의사나 행동으로서 가치 있는 것이 된다. 특수한 의사가 국가라는 일반 의사에 따르는 이상 그 복종은 자유이다. 인간은 양심에 의거해 자유롭게 복종해야 한다. - 406쪽
복종은 자유다? 자유롭게 복종? 국가가 천국?
역사와 정신
역사나 사회를 정신과 심리로 이해하는 방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만족’ ‘지긋지긋’ ‘느끼는’ ‘용기’ 이런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귀족과 평민이 일체화되자 로마에는 비로소 진정한 내정의 안정이 생기고, 거기에서 밖을 향해 힘을 신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의 공통성에 만족하고 내전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로마인의 용기와 군기가 승리를 가져온다. - 298쪽
정신은 역사를 만들 때 특정한 인물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목적에 맞는 모범이 되는 인물이고 앞을 내다보는 지성으로 결단을 내리고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 없이 그 결단을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가 세계사적 인물의 자격을 갖는 것은 로마의 모순을 잘 조정하고 로마가 필요로 하는 통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 306쪽
우리가 흔히 보는 역사적 사건 뒤에는 이를 움직이는 주체가 따로 있습니다. 그 역사의 주체가 인간들에게 과제와 시련을 주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거지요.
주체는 그 인격성의 원리로 볼 때 재산소유의 권리만은 인정되는데 가장 강한 인격인 황제가 일체의 소유를 독점하면 개개인의 권리는 유명무실해져서 인권은 소멸하고 만다. 하지만 이 비참한 모순은 세계를 단련해내는 것이기도 하다...우리의 눈에 단련으로 보이는 것이 본인들에게 그것으로서 경험되고 자신의 내면이 비참하고도 공허하다는 자각이 생겨야 한다. - 313쪽
신을 믿어야 하는데 신을 믿지 않으니 신이 인간에게 신을 믿도록 단련의 시간을 주는 걸까요?
주관과 신과의 일체화는 때가 무르익었을 때 이 세상에 나타난다. 이 일체화를 의식하는 것은 신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진리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정신 그 자체, 정신의 생생한 내면운동이다. 순수한 정신(성령)이라는 신의 본성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계시된다. - 316쪽
그리스도 속에 인식되는 영원한 진리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본질이 정신이고,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탈피해 순수한 자의식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 320~321쪽
게르만 민족
세계에 살아 있는 주관으로서 전체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일반적인 목적에 따라서 행동하며 법률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만족을 발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게르만민족의 원리와 그리스도교의 원리가 서로 상대에게 적합한 것이 되고 게르만민족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정신의 고도원리 담당자로서서의 능력을 손에 넣는 것이다. - 344쪽
게르만민족의 사명은 그리스도교 원리의 담당자가 되어 그 이념을 이성적인 절대목적으로서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 이 민족의 의사는 망연한 것이고 무한한 진리는 배후에 가려져 있다. 진리는 과제로서 내걸었을 뿐이고 불순한 정서가 전체를 뒤덮고 있다. 불순함이 제거되어 구체적인 정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오랜 도정이 필요하다. - 346쪽
게르만 민족이 세계사의 사명을 짊어지고 뭔가를 해야 되는데 아직은 부족하니 좀 더 단련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드디어 게르만국가의 제3기이다.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알고 절대 보편적인 영원한 진리를 사유하는 정신의 시대이다. - 397쪽
이 책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습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이 잇따라 교체하는 가운데 세계사가 그와 같은 발전과정을 더듬고 거기에서 정신이 실제로 생성되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틀림없는 변신론(辯神論)이며 역사 가운데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성적인 통찰력만이 성령과 세계사의 현실을 화해시킬 수 있고 일상의 역사적 사실이 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그 본질로 볼 때 신이 손수 이룩한 작품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 434쪽
할렐루야! 그 마음을 깨끗이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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