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문명 속의 불만], 열린책들, 2007
Das Unbehagen in der Kultur(1930[1929])
느낌을 과학적으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단지 느낌의 생리학적 징후를 설명하려고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마저 불가능한 경우에는...그 느낌과 가장 쉽게 결부되는 관념적 내용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 234
자아는 자율성과 통일성을 갖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예외가 있다면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뿐이다. 이 상태는 분명 이례적지만, 병리적이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다.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자아와 대상의 경계가 금방이라도 녹아 버릴 것만 같다. 감각 기관은 자아와 대상이 별개의 존재라는 온갖 증거를 제공하는데도, 사랑에 빠져 있는 남자는 그 증거를 무시한 채 <나>와 <너>는 하나라고 선언하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 236
유아는 그에게 흘러들어오는 감각의 원천인 외부 세계와 자신의 자아를 아직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여 차츰 외부 세계와 자아를 구별하는 법을 배운다...다른 원천-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어머니의 젖가슴-은 이따금 그를 피하고, 칭얼대는 소리로 도움을 청해야만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을 게 분명하다. 이리하여 유아는 처음으로 <대상>을 자아의 맞은편에 놓게 된다. 이 대상은 <밖>에 존재 - 237
인간은 인생에 무엇을 요구하고,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하기를 바라는가?...인간은 행복을 얻으려고 애쓴다...이 노력은 적극적은 목표와 소극적인 목표라는 양면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고통과 불쾌감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한 쾌감을 경험하려고 애쓴다. 좁은 의미의 <행복>은 두 번째 상태만을 가리킨다. - 248
쾌락 원칙이 간절히 바라는 상황도 오래 지속되면 강렬한 쾌감이 아니라 가벼운 만족감을 낳을 뿐이다. 인간은 오직 대조(對照)에서만 강렬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상태에서는 거의 즐거움을 얻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 248, 249
불행을 경험하기는 훨씬 쉽다. 다음의 세 방향에서 오는 고통...첫째는 우리 자신의 육체...둘째는 외부 세계-이것은 압도적이고 무자비한 파괴력으로 우리를 덮칠 수 있다. 셋째는 타인들과의 관계-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마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일 것 - 249
대인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가장 쉽게 막을 수 있는 안전 장치는 타인과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자발적인 고립이다. 이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조용하고 평온한 행복이다. - 249, 250
고통을 막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의 정신 기관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리비도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본능의 승화가 그것을 돕는다. 정신적 지적 작업이 낳는 쾌감의 산출량을 충분히 높일 수 있으면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운명도 인간에게 거의 해를 끼치지 못한다...그러나 이 만족감은 조잡하고 일차적인 본능적인 충동을 충족시켰을 때 얻는 만족감에 비하면 강도가 약해서, 온몸을 진동시킬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 방법의 약점은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게다가 그런 소질과 재능을 가진 소수조차도 이 방법을 통해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이 방법은 운명의 화살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갑옷이 아니며, 고통의 원천이 그 사람 자신의 몸인 경우에는 전혀 고통을 막아 주지 못한다. - 252
삶을 영위하는 방법 가운데, 노동에 중점을 두는 것만큼 개인을 현실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것은 없다. 노동은 적어도 현실의 일부분-인간 공동체-에 안전한 자리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데 불가결한 것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지만, 자기애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관능적인 리비도의 구성 요소 가운데 상당 부분을 전문적인 일이나 그 일과 관련된 인간 관계로 돌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갖는다. - 253
예술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마취 상태는 중대한 욕구의 압력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뿐, 현실의 비참함을 잊게 해줄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 254
현실을 망상에 따라 개조하여 행복을 확실히 손에 넣고, 고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경우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인류의 종교들은 바로 이런 부류의 집단 망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하나의 망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망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 254
내가 말하고 있는 이 방법은 물론 사랑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만드는 삶의 방식,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서 모든 만족을 찾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부류의 심리적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랑의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인 성애는 압도적 쾌감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그리하여 행복 추구의 원형을 제공해 준다. 처음으로 행복을 만난 길에서 또다시 행복을 찾으려고 고집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 255
이 삶의 방식이 지니고 있는 약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행복으로 가는 이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을 때만큼 고통에 무방비 상태가 될 때도 없고, 사랑하는 대상을 잃거나 그 대상의 사랑을 잃었을 때만큼 무력하게 불행할 때도 없다는 것이 이 삶의 방식이 지닌 약점이다. - 255, 256
미에 대한 사랑은 목적 달성이 금지된 충동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예처럼 보인다. <미>와 <매력>은 원래 성적 대상의 속성이다. 그러나 성기를 보는 것은 언제나 자극적이지만, 성기 자체가 아름답다고 평가될 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미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성기가 아니라 어떤 부차적인 성적 특징인 것 같다. - 256
쾌락 원칙은 행복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부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결코 완수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거기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사실상 포기할 수도 없다. 그 방향으로 나가가는 길은 매우 다양하며, 우리는 목표의 적극적인 측면-쾌감의 획득-을 우선할 수도 있고 소극적인 측면-불쾌감의 회피-을 우선할 수도 있다...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황금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특정한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 257
열심히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나중에 그 노력이 헛수고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만성적 중동이 낳는 쾌감 속에서 위안을 찾거나, 정신병에서 볼 수 있는 절망적 형태의 반항을 시도할 수도 있다. - 258
고통의 세 가지 원천-자연의 압도적인 힘, 우리 자신의 신체적 허약함, 가족․국가․사회에서 인간의 상호 관계를 조정하는 제도의 불완전함 - 259
오래전에 인간은 전지전능이라는 이상적 개념을 형성했고, 그 개념을 신으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인간이 아무리 소망해도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거나 인간에게 금지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이 신들의 속성으로 부여했다. 따라서 이 신들은 문화적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266
인간은 원래 경솔하고 불규칙하고 믿을 수 없는 경향을 타고 났으며, 자기 행동에서 이런 경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본보기인 천체를 본받아 질서 있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려면 힘든 훈련이 필요하다. - 269
가족 제도의 창설은, 성욕이 과객처럼-즉 불쑥 찾아왔다가 떠나면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손님처럼-나타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함께 사는 하숙인처럼 인간에게 자리 잡은 순간이 왔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수컷은 암컷-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성적 대상-을 계속 가까이에 놓아두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 275
인간은 성애(성기의 결합)가 가장 강렬한 만족을 주고 사실상 모든 행복의 원형을 제공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 발견은 인간이 성적 관계에서 계속 만족스러운 행복을 추구하고 성애를 자기 생활의 중심점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을게 분명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외부 세계의 극히 일부-즉 그가 선택한 사랑의 대상-에 위험하게 의존하게 되었고, 그 사랑의 대상에게 퇴짜를 맞거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리면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 277
사랑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려면, 우선 사랑의 기능에 광범위한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사랑에서 행복을 얻는 사람들은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사랑하는 대상의 태도에서 자신을 독립시킨다...그들은 성애의 성적 목적을 떠나 성 본능을 <목적 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꿈으로써 성애의 불확실성과 좌절을 피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차분하게 정지되고 안정된 정애적 감정 상태에 도달하는데, 이런 상태는 겉보기에는 그 모태인 성애의 격렬한 흥분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 278
사람들은 성욕 때문에 가족을 이룬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또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감정-<우리>는 이것을 <목적 달성이 금지된 사랑>이나 <정애>라고 부른다-도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른다. 목적 달성이 금지된 사랑은 원래는 관능적인 사랑이었고,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관능적인 사랑이다. 완전히 관능적인 사랑과 목적 달성이 금지된 사랑은 가족 밖으로 확대되어 전에 모르는 사이였던 사람들과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 279
합법성과 일부일처제에 대한 강요...오늘날의 문명은 단둘만의 확고한 유대를 바탕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관계만을 허용하고, 성행위 자체가 쾌락의 원천이 되는 것은 원치 않으며, 지금까지는 인류의 번식 수단으로 성행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행위를 용인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 282
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 요구를 달성할 것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도저히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도저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명령을 그토록 엄숙하게 선언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 286, 287
인간은 강력한 공격 본능을 타고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이다. 따라서 이웃은 그들에게 잠재적인 협력자나 성적 대상일 뿐 아니라, 그들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웃을 상대로 자신의 공격 본능을 만족시키고, 아무 보상도 주지 않은 채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웃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웃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웃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웃의 재물을 강탈하고, 이웃을 경멸하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이웃을 고문하고 죽이고 싶은 유혹은 느낀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 289
공격 본능을 발휘하기에 유리한 상황, 즉 평소에 공격 본능을 억누르는 정신적 억제력이 작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격 본능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인간의 본래 모습은 같은 종족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야수임을 폭로한다. 훈 족의 대이동이나 침입, 칭기즈칸과 티무르가 이끄는 몽골족의 침입, 신앙심 깊은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또는 최근에 일어난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저질러진 잔학 행위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견해의 진실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 289, 290
대립이 반드시 적대 관계일 필요는 없다. 대립은 단지 악용되어 적대 관계의 <계기>가 될 뿐 - 291
공산주의자들은 인류를 악에서 구하는 길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전적으로 선하고 이웃에 호의를 갖고 있지만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켰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 근거로 삼고 있는 심리학적 전제가 변호할 여지가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사유 재산을 폐지하면, 인간의 공격 본능이 이용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를 빼앗을 수 있다. 그 도구는 가장 강력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강력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유 재산을 폐지해도, 공격 본능이 악용하는 힘과 영향력의 차이를 바꿀 수는 없고, 공격 본능의 본질을 바꿀 수도 없다. 공격 본능은 재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 291
문명은 인류를 무대로, 에로스와 죽음, 삶의 본능과 파괴 본능 사이의 투쟁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게 분명하다. - 301, 302
개인은 자신의 공격 본능을 무해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자신의 자아로 돌려지는 것이다...자아는 원래 외부의 다른 개체에게 그 공격성을 발산하여 본능을 충족시키고 싶었겠지만, 이제 거꾸로 공격 대상이 된 셈 - 303
우리는 인간이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본래부터 타고났다는 주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 나쁜 짓이 자아에는 결코 해롭거나 위험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여기에는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외부의 영향력이다. 이 길로 인도한 것이 그 사람의 느낌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 사람은 이 외부의 영향력에 복종해야 할 동기를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동기는 인간의 무력함과 타인에 대한 의존에서 쉽게 발견되는데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상실에 대한 불안 - 304
<내가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나라면, 나는 아버지를 호되게 다룰 거야>...초자아가 처음에 갖는 엄격함은 어린이가 대상한테서 경험한 엄격함이나 어린이가 대상의 속성으로 생각하는 엄격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에 대한 어린이 자신의 공격 욕구를 나타낸다는 점 - 310
본능의 좌절은 공격성을 폭발시키고, 사랑받는 경험은 공격성을 내면으로 돌려 초자아에 그 공격성을 넘겨준다. - 311
죄책감은 양가 감정으로 말미암은 갈등의 표현, 즉 파괴 또는 죽음의 본능과 에로스 사이에 벌어지는 영원한 투쟁의 표현 - 314
오늘날 청소년 교육은 성욕이 그들의 삶에서 맡게 될 역할을 감추고...잘못된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윤리적 요구에 충실히 따를 것으로-즉 다른 사람들도 고결한 인간일 거시라고- 믿고 있다. - 316
개인의 발달은 두 가지 욕구, 즉 행복을 얻으려는 욕구와 공동체 안에서 타인들과 결합하려는 욕구의 상호 작용의 산물처럼 보인다. - 323
초자아의 요구를 의식의 전면에 끌어내 보면, 그것은 현재의 문명적 초자아의 명령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두 개의 과정, 즉 집단의 문화적 발전 과정과 개인의 문화적 발달 과정은 언제나 맞물려 있다. - 325
개인적 초자아는 엄격한 명령과 금지만 제시할 뿐...자아의 행복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는 치료를 위해 자주 초자아와 싸워야 하고, 초자아의 요구 수준을 낮추려고 애쓴다. - 326
문명적 초자아는 명령을 내릴 뿐, 사람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문명적 초자아는 인간의 자아가 심리적으로 초자아의 요구를 무엇이든 수행할 수 있고, 자신의 이드에 대해 무제한의 통제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정상인들도 이드를 어느 한도까지만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면, 그는 반항을 일으켜 신경증에 걸리거나 불행해질 것이다. - 326
정신분석을 문명 공동체까지 확대하려는 이런 시도가 어리석거나 무익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는 신중해야 하고, 우리가 다루는 것은 결국 유사성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만이 아니라 개념도 그것이 생겨나 발달한 영역에서 억지로 떼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327
인류는 꾸준히 자연력을 지배해 왔으며, 이제는 자연력의 도움을 받으면 별 어려움 없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서로를 죽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현대인은 이것을 알고 있고,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초조와 불행과 불안은 대부분 거기에서 유래한다. 이제 우리는 두 개의 <천상의 권력> 가운데 또 하나인 영원한 에로스가 그와 똑같이 불멸적 존재인 적수와의 투쟁에서 열심히 버티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 성공하고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를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 329
'사랑.평화.함께 살기 > 삶.사랑.평화-책과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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