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스치는생각

흑인이라고 무시하면 아니아니 아니 되오!

순돌이 아빠^.^ 2012. 7. 28. 17:32

(생협웹진에 보내려고 쓴 글)



아프리카는 인종, 언어, 종교, 관습이 다른 2,000여 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부족끼리 부락을 이루어 부족 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낮다.

성․사랑․가족에 관해 글을 쓸 일이 있어서 중․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를 몇 권 읽었습니다. 위의 내용은 교학사에서 만든 교과서에 실린 ‘세계의 가족생활 문화’ 가운데 아프리카에 관한 것으로, 아프리카에 관한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케냐(왼쪽)와 영국(오른쪽)을 표현하는 광고 사진.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



지난 6월에는 대한항공이 케냐로 취항을 하면서 홈페이지에 광고를 냈습니다. 이 광고 안에 케냐인들을 ‘원시적 에너지로 가득 찬 원주민들’로 표현한 문구가 있었습니다. 케냐인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대한항공은 해당 문구를 삭제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원시적’이란 표현으로, 케냐인들이 자신들을 비하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북부에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부터 해서 아래로 가면 나이지리아, 케냐, 소말리아가 있고, 더 아래로 가면 앙골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있습니다. 60여개의 국가,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프리카라는 대륙 위에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앞의 교과서가 말하는 부족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을 놓고 아프리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초원이나 밀림에서 아랫도리만 살짝 가린 채 창을 들고 ‘우가우가 우차차’ 춤을 추며 사는 걸까요? 한국 민속촌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인들은 초가집에서 한복을 입고 산다고 하면 한국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것일까요?





국제 뉴스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축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을 기억하실 거구요. 밀림에서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도시 생활을 합니다. 활을 들고 사냥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핸드폰,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뜻밖일지 모르겠지만, 케냐인들이 대한항공 광고에 대해 항의를 한 것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를 통해서입니다. SNS를 이용한다는 것이 요즘 세상에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아프리카라고 하면 유난히 원시․야만․정글과 같은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겁니다.

껌둥이가 아니라 사람

아프리카를 흔히 ‘검은 대륙’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까지 굳이 해야 된다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아프리카에 흑인이 많이 사는 것은 맞지만 흑인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사냐구요? 미국에는 누가 살까요? 백인과 흑인을 비롯해 여러 인종이 살겠지요.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인종, 여러 문화, 여러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검은색 하나로 아프리카를 말할 수 없는 거지요.


아프리카가 그렇듯이 많은 한국인들이 흑인에 대해 가지는 인상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한 흑인 영어 강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자신이 미국 출신임을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자꾸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온 거라며 우겨서 그랬다네요. 영어 학원에 이력서를 넣었더니 흑인이라 거절당했던 사람도 있구요.


누군가 ‘난 흑인이라고 무시하지 않았어’라고 하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흑인과의 첫 만남에서 약간의 거부감이나 불편함마저도 전혀 없이 마주대할 수 있었던 한국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강사가 백인이라고 하면 왠지 잘 가르칠 것 같은 느낌을 갖고, 흑인이라고 하면 뭔가 허술하고 게으를 것 같은 느낌을 갖는 학부모님도 있을 것 같구요.





한국인들에게는 백인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나 열등감 같은 게 있습니다. 반대로 흑인에 대해서는 묘한 우월감을 가지며 무언가 가르치려 드는 경향도 있구요. 흑인이라고는 만나 보신 적도 없이 평생을 시골 마을에서 살다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도 껌둥이라며 무시하셨지요.


오랜 세월 무의식에 쌓여온 것들이 사람과 사람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존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흑인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부터 사람을 보면 피부색부터 판단하는 우리의 마음까지, ‘한국에는 도대체 뭐 하러 온 거야?’라며 흑인을 윽박지르는 출입국 심사대부터 같은 일을 해도 흑인이라고 더 괴롭히며 월급을 떼먹으려는 한국인 사장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