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이 무슨 내용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그것도 참...쩝...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지...이런 제기랄...
고등학생인 원빈이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합니다. 학원에도 가고 싶구요. 하지만 아빠와 이혼하고 혼자서 식당 일하며 원빈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에게 학원비 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네요. 되려 엄마가 속상해 할 까봐 그림 그린 것도 침대 밑에 숨기고 그러지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엄마는 결국 원빈이를 학원에 보냅니다.
자동차를 사려는 것도 아니고 명품 가방을 사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하는 그림 배우자고 그러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네요. 가기 싫다는 학원을 억지로 큰 돈 들여가며 보내는 부모가 있고, 꼭 하고 싶다는 것도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부모도 있구요.
근데 왜 유독 가난한 애들이 만화를 직접 그리겠다고 나서냐 이거지. 요즘은 노는 데도 돈이 드니까 돈 없는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만화를 택하는 빈도가 높겠지. 그러다 보면 점점 친구도 사라지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만화에 빠져들어. - 25쪽
원빈이가 다니게 된 학원의 태섭쌤이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가난하기 때문에 만화에 더 빠져 들게 되는 걸까요? 친구들과 놀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는 맞는 것 같은데...
한겨울에 보일러 기름 넣을 돈이 없는 거야. 끓인 물 페트병에 넣어서 끌어안고 자 봤냐? 아침에 그 물로 샤워도 한다.
한 달 동안 초코파이만 먹어 봤어요? - 50
원빈이가 학원에서 만난 선배 은수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자동차는 뭐냐, 핸드백은 뭐냐, 아파트는 몇 평이냐 뭐 이런 것도 아니고, 둘이서 하는 짓이 누가 더 어렵게 살았는지를 놓고 경쟁하는 겁니다. 에이그 속 터져서 정말...
은수는 지난해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갔지요. 기껏 알바 뛰어 돈 마련하면 엄마가 써 버리는 인생.
그래...자원 고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별 생각 없는데요.
니 생각은 어떤데? 하고 싶어?
......
하기 싫어?
...... - 56, 57
공모전 마감 하루 전날 학원 원장이 중1 한 명을 맡깁니다. 하루 만에 공모전에 낼 작품을 만들라는 거지요. 심지어 하고 싶지도 하기 싫지도 않고 그저 ‘엄마가 꼭 내라고’ 해서 떠밀려 온 학생과 함께. 엄마는 돈으로 학원 원장을 구슬렸을 거고, 학원 선생이 적당히 만들어 준 작품을 가지고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면 대학 보내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겠지요. 속 터지는 태섭. 돈 벌라고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난 너 같은 애들이 무서워 - 64
원빈이보다 더 오래 학원을 다닌 지현이가 원빈이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지현이는 자신은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슬퍼합니다. 지현이는 돈은 있는데 재능이 없고, 원빈이나 은수는 재능은 있는데 돈이 없고.
졸업하고 슬그머니 연락 끊었다가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좋아하는 티 다 내고...지가 먼저 좋아해 놓고 나만 힘들게 만들어...나 싫어? 싫어졌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 95
은수와 함께 학원을 다녔고 지금은 대학생인 미진이가 학원 강사로 옵니다. 은수와 미진이는 서로 좋아하지요. 아직 애인인 것은 아니구요. 미진이가 은수와 잘 지내려고 하는데 은수가 자꾸 피합니다.
은수는 술집에서 일을 하는데 사장이 화장실 바닥에 손님이 토해 놓은 것을 치우라고 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미진이가 은수에게 왜 자꾸 피하냐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피곤해. 그냥 너무...피곤해... - 95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그냥 피곤하다는 말. 꿈도, 대학도, 사랑도, 일도, 돈도...그냥 피곤하다는 말.
책방 사장은 원빈이가 일한 돈을 안 주고 떼먹고 도망가려고 합니다. 학원 선생 태섭의 귀뜸으로 이를 눈치 챈 원빈은 사장을 찾아 겨우 돈을 뺐어(?) 냅니다. 사장이 돈을 안 주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일 수밖에 없었지요. 세상 참 여러모로 원빈이를 피곤하게 합니다.
종화쌤이 지현이 아빠한테 돈 받고 그런 거야!!...그리고 전에 종화쌤이 가져간 네 그림! 그거 어디 있을 거 같애?...그거 전부 지현이 포폴 만드는 데 들어갔대!! 니 그림도, 내 그림도, 다른 애들 꺼...태섭쌤 시범작까지!! - 122
지현 아빠는 돈으로 학원 선생을 구슬려 딸을 대학에 보내고, 이를 알게 된 학원생들은 울분을 토합니다.
학원 선생이란 인간이 다른 학생의 작품까지 가져가서 지현이를 대학에 보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씨방새!!!
그럼 원빈이는...
은수가 그랬듯이 대학에 합격을 하기는 했지만 등록금 마련을 못해 입학을 못합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억울한 마음에 울컥합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청소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서 좋은 작품이겠지요. 작가가 청소년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든 작품 같아서 또 좋은 작품일 거구요.
이런 개 엿 같은 세상과 참으로 속터지게 답답한 인생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좋은 작품이라니...
수채화로 그린 작품이라 더 정겹게 느껴지네요.
아니...이 놈의 인생들을 놓고 정겹다고 해야 하다니...아니...그래도 그림은 정겨운데...에이...
좋은 작품은 혼자 보면 안 되겠지요.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해야겠습니다.
원빈이도 은수도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만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저런 것들 > 스치는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여자와 남자 (0) | 2012.09.12 |
---|---|
행신동 맛집 - [대장군](돼지부속전문) 완전 좋아요 ^.^ (0) | 2012.08.14 |
그런 세월입니다 (0) | 2012.08.08 |
흑인이라고 무시하면 아니아니 아니 되오! (0) | 2012.07.28 |
모든 기쁨과 모든 슬픔이 (0) | 2012.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