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듯Secret Garden - Awakening(깨달음, 각성, 인식...)
2012년 대선이 끝나고 공지영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미친년이 왠 갑자기 나찌 타령이냐'
'박근혜가 히틀러냐'는 식으로 욕을 해 댔다고 하지요.
그냥 가만히 읽어 보면 특별히 욕할 이유가 없는 글인데 괜히 흥분하고 그러는 것 같네요.
'절망은 독재자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게서 온다'라는 말이 눈에 띄네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따져 생각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이에게 큰 고통을 줄 수도 있겠지요.
파시즘 지도자는 국민들을 한층 높은 정치 영역으로 이끌어, 그들로 하여금 정체성과 역사적 운명과 힘을 완전히 자각한 하나의 인종에 속한다는 격앙된 느낌, 거대한 집단적 창조 행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흥분, 서로 공유하는 느낌의 물결 속에 푹 잠겨서 전체의 善을 위해 개인의 사소한 이해관계 따위를 잊어버리게 해주는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지배자가 됐다는 느낌이 일으키는 전율을 그야말로 육감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려고 했다. 파시즘은 이성적인 논쟁을 직접적인 감각의 경험으로 교묘히 바꿔침으로써 정치를 미학으로 변형시켰다. -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가운데
민족사회주의 집회에서의 연설은 집회에 모인 대중들 개개인의 감정을 조작하면서 실제적인 논쟁은 가능한 한 회피하는 매우 능란한 조치들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는다. 히틀러는 자신의 책 [나의 투쟁]의 곳곳에서 올바른 대중심리적 전술은 논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대중들을 ‘위대한 최종목표’로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가운데
공적인 선전에서 유대인은 악으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장기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주장들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가해자의 마음에 저장되었고, 가해자는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마음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유대인은 악이다"라는 공식은 일순간 "나는 유대인이 악해서 죽였다"라는 정당화로 전환될 수 있었다...폴란드 슈체프제신의 어느 의사의 일기에, 시골의 농민들이 유대인 포획작전을 기대하면서 마차를 끌고 나타나 하루 종일 약탈의 순간을 기다렸다고 적었다. -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 유대인의 파괴> 가운데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였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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