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은 사성(賜姓)제도도 사용했다. 사성은 중국에서 공신들에게 내려주어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에서 유래하였다. 주몽은 도망치는 길에 귀화해온 세 사람에게 각기 극, 중실, 소실이라는 성을 내렸으며, 나라를 세운 뒤에도 계속 성을 내렸다. 고구려의 유리왕과 대무신왕도 사성을 남발했다. 사성은 왕이 갖고 있던 특권이었고 또 왕의 친위세력으로 만드는 도구였으며, 귀족으로 키워 협조자로 만드는 방편이었다.
......
김해김씨의 시조는 수로왕으로 열 명의 아들 중에서 여덟 명은 아버지의 성을 따랐고, 두 아들은 김해허씨의 시조인 어머니 허왕후의 성을 따랐다. 이들 허씨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최초의 예가 될 것이다.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2>
족보나 혈통, 성姓을 아주 대단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지만...
성이라는 것이 삼국시대 때부터 왕이나 귀족을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데...
그 전에는 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성이라는 것이 이름과 함께 쓰는 기호 또는 표시로 반드시 써야 할 이유도 없고
쓴다고 해도 반드시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할 이유도 없음.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은 성姓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들과 남성들의 권력 때문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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