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란 항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생각이 있으면 오고 싫으면 가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삼국사기> 권제3 내물왕 18년조)
이 기사는 백제의 독산성주가 300명을 이끌고 신라에 내투(來投)하자 백제 근초고왕이 이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신라 내물왕이 대답한 말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이 표현에 따르면, 백성에게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국가를 떠나지 않겠다는 상심常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가 삶을 편하게 하면 백성들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부러워하여 다른 나라에서 오는 자들이 생겨났지만, 삶이 어려우면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안정이 확보되지 못하면 백성들을 생활고에 지쳐 유식(遊食)하거나 다른 나라로 도망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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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7월에 가물어 곡식이 익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려 신라로 유망해 들어간 자가 많았다. (<삼국사기> 권제25 백제본기 비유왕 21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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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주려 서로 잡아먹고 도적이 많이 일어났다. 신료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기를 청하였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한산 지역 사람으로 고구려로 도망해 들어간 자가 2천이나 되었다. (<삼국사기> 권제26 백제본기 동성왕 21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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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사이에 충돌이 심화되면서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고 각국은 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백성을 과도하게 동원하면서 민의 이탈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아신왕 8년(399)에 고구려에게 빼앗긴 관미성을 되찾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군대를 동원하자 징집을 견디지 못한 많은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갔다. (<삼국사기> 권제24 백제본기 아신왕 8년조)
- 노중국, <백제사회사상사> 가운데
국가라는 것이 개인에게 주어진 무슨 운명도 아니고
국가가 자꾸 못 살게 굴고 그러면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국가는 국가고, 개인은 개인입니다.
국가가 아무리 국가와 개인이 한 몸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정서를 우리 속에 심으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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