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한창 즐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우두머리인 세종이 정말 백성들을 위해서
양반들의 거센 반발을 무릎쓰고 한글을 만들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배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한글을 만든 건 아닌지 싶더라구요.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도 훈민정음 창제는 시급한 일이었다. 조선 초기가 되면 군현제 개편으로 왕명이 전국의 집집마다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한문으로 쓰여 있는 공고문을 읽을 수 없었다. 한문은 특권층의 언어였으며, 대다수 백성들은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자연히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
국왕이 한문 교서를 내리면 대왕대비나 왕비가 언문 교서를 동시에 내렸다.
이렇게 해서 국가의 명령을 백성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추어졌다. 이에 따라 <소학>과 <삼강행실도> 등의 유교 윤리서가 언해되어 간행되기 시작했다. 바로 유교 윤리를 보급시키려는 정책이었다.
- 이성무, <조선왕조사> 가운데
세종14년(1432)에 편찬된 [삼강행실]은 군신․부자․부부 삼륜의 모범이 되는 충신․효자․열녀들의 행실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에 설명을 붙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유교도덕의 기본이 되는 덕목들을 일반 국민에게 장려하여 양반사회의 질서를 옹호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뒤에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더욱 잘 그 목적을 이룰 수가 있게 되었다.
- 이기백, <한국사신론> 가운데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력자의 위선 (0) | 2013.04.04 |
---|---|
조선 귀족들의 권력 투쟁 (0) | 2013.04.04 |
왕과 귀족연합 (0) | 2013.04.04 |
전쟁 장사꾼 (0) | 2013.03.30 |
역사 또는 국사 만들기 (0) | 201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