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동파의 상소에 “시골 노인들이 ‘풍년이 흉년만 못합니다. 천재天災를 만나 흉년이 들었을 때는 입고 먹을 것을 절약하면 오히려 살아날 수 있지만, 풍년이 들면 쌓인 빚을 모두 내라고 독촉하며 서리胥吏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매질을 합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조차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말을 마치고 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臣) 역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떠도는 백성이 감히 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고 했는데, 홍수와 가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호랑이보다 백 배나 더하고, 사람들이 빚독촉을 두려워하는 것은 홍수나 가뭄보다 더 심합니다”라고 하였다.
나 역시 이 글을 읽고, 자신도 모르게 줄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옛날의 순박한 풍속이다. 요즈음 각 고을을 살펴보면, 풍년․흉년을 막론하고, 백성은 세금을 포탈하는 자가 없고, 관청에서는 한 홉의 미곡도 거두지 않는 경우가 없다. 가을․겨울의 세금을 거두는 철이 되면, 고을의 수령은 원근을 가릴 것 없이 각 마을로 군졸을 자주 내보낸다. 본인에게 세금을 거두다 모자라면, 먼 일가나 친척들까지 찾아가 집을 샅샅이 뒤져서 모조리 받아들인다. 오직 포탈하는 백성이 없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 백성이 빚을 지고 싶어도 그럴 수 있겠는가?
...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백성이 세금을 포탈하지 않는데도 모곡(耗穀)으로 10분의 1을 더 받아두었다가 관용으로 쓴다. 이를 미처 쓰기도 전에 작서(雀鼠)가 축을 내면 문득 소두(小斗) 한 말씩 백성에게 더 거둔다. 그러므로 장부의 기록은 날로 증가하고, 오래 묵은 곡식은 썩게 된다.
그리고 나서 또 이 썩은 곡식을 집집마다 강제로 빌려주니, 백성의 생활은 더욱 곤궁하게 된다. 백성이 열 말이라고 받아오면 두 말은 축이 나니, 실제로는 여덟 말에 불과하다. 이것을 갚을 때는 모곡한 말을 보태야 하고, 또 말로 될 때 흘린다는 명목으로 한 말을 더 받아, 모두 열두 말을 내야 한다. 그리고 오가는 길에 먹는 양식, 인부의 품값 등 허다한 비용을 모두 계산하면 두 배의 비용이 든다.
봄에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니, 그 기간은 7~8개월도 채 못 되는데 백성은 반드시 갑절로 갚아야 한다. 마을에서 빌려쓰는 사채도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다.
...
내가 직접 본 바로도, 우리 마을에서 망한 집의 8~9할은 관청에서 빌려다 먹은 환곡(還穀)과 사채 때문에 그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 백성을 보호하려면, 차라리 백성을 구제한다는 명목의 이 조적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낫다.
- 이익, <성호사설> 가운데
옛날 태산의 호랑이와 영주의 뱀에게 삼대가 물려 죽었어도 오히려 그곳을 떠나지 않았으니, 백성이 미워하는 것 중에서 가혹한 정치보다 더 심한 것은 없다. 만약 가혹한 정치가 없다면, 몇 해의 흉년으로 인해 온 고을이 텅 빌 정도로 주민이 다 흩어지겠는가?
- 이익, <성호사설> 가운데
‘태산의 호랑이’는 [공자가어孔子家語]와 [예기禮記]에 나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태산을 지날 때, 길가의 무덤 앞에서 한 여인이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가 제자를 시켜 그 이유를 물어보게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기를 “이 고장에서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남편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제 자식까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다시 묻기를 “그러면 왜 이 고장을 떠나지 않소?”라고 하자, 그 여인은 “이 고장에는 가혹한 세금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라고 하였다.
‘영주의 뱀’은 당나라 때 유종원이 지은 [포사지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유종원이 영주를 다스릴 때, 삼대에 걸쳐 독사를 잡아 바치고 세금을 면제받고 살고 있는 장씨를 만났는데, 그가 “우리 할아버지가 이 뱀에 물려 죽었고, 우리 아버지도 이 뱀에 물려 죽었으며, 내가 이 일을 이어받아 12년 동안 하고 있는 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라고 하였다. 유종원이 그에게 “그러면 당신은 왜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가?”라고 하자, 그는 다른 집은 세금에 견디지 못하여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자기 집은 이 일을 함으로써 파산을 면하고 있다고 하였다.
- 이익, <성호사설>, 한길사, 가운데 옮긴이의 주
'지배.착취.폭력 > 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거 시험과 유생 (0) | 2013.05.19 |
---|---|
임금과 신하, 녹봉과 벼슬 (0) | 2013.05.19 |
관료와 뇌물 (0) | 2013.05.19 |
관료들의 낭비 (0) | 2013.05.19 |
계급과 국가 (0) | 201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