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현종개수실록 23권, 12년(1671 신해 / 청 강희(康熙) 10년) 3월 21일(임신) 3번째기사
충청 감사 이홍연이 자식을 삶아 먹은 사비 순례에 관해 치계하다
충청 감사 이홍연(李弘淵)이 치계하기를,
“연산(連山)에 사는 사비(私婢) 순례(順禮)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살면서 그의 다섯 살된 딸과 세 살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는데, 같은 마을 사람이 소문을 듣고 가서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아들과 딸이 병 때문에 죽었는데 큰 병을 앓고 굶주리던 중에 과연 삶아 먹었으나 죽여서 먹은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합니다. 이른바 순례는 보기에 흉측하고 참혹하여 얼굴 생김새나 살갗·머리털이 조금도 사람 모양이 없고 미친 귀신 같은 꼴이었다니 반드시 실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성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실로 예전에 없었던 일이고 범한 것이 매우 흉악하므로 잠시 엄히 가두어 놓았습니다. 해조를 시켜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정원이 아뢰기를,
“이번에 연산 사람이 아들과 딸을 삶아 먹은 변은 매우 놀랍고 참혹합니다. 자애로운 성품은 천부적으로 다같이 타고나는 것인데 그가 흉측하고 완고하더라도 어찌 지각이 없겠습니까. 심한 굶주림에 부대껴서 이토록 악한 짓을 하였으니, 이것은 교화가 크게 무너진 데에 말미암은 것이기는 하나 실제로는 진휼의 정사가 허술해서 그런 것입니다. 도신(道臣)은 먼저 수령의 죄를 거론해야 할 것인데 면의 책임자들만 다스리고 말았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감사와 수령을 모두 무겁게 추고하소서.
이어서 생각건대, 국가에서 구황 정책에 대한 강구를 여러모로 극진히 하고 있으나 부고(府庫)는 다 비고 관리는 지쳐서, 굶주려 낯빛이 누런 백성들이 붕어처럼 입만 벌리고 갈망하다가 장차 다 죽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제 봄가뭄의 조짐이 이미 나타나 밀보리가 점점 말라가고 있으므로 무너지고 흩어져버릴 화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서울 안 진소를 설치한 곳에 다시 더 주의시키고 각도의 감사에게 글을 지어 하유하여, 진휼의 정사가 미진함이 없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아침에 장계를 보고 놀랍고 슬퍼서 차마 말할 수도 없었으나 말이 명백하지 않아서 상세히 알기 어려웠다. 해조에 계하한 것은 뜻이 있었는데 범연히 추고하기를 청하였으니 착실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계사가 이러하니 우선 추고하라. 마지막에 경계한 뜻은 참으로 절실하므로 매우 감탄하였다. 내가 유념하겠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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