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는 1890년(고종27)에 처음 봉기가 일어난 이래 1891년(고종 28) 7월, 같은 주모자에 의하여 재봉기가 이루어져 그해 10월까지 읍권이 장기간 봉기 주모자에 의하여 장악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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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서와 같이 항쟁의 전개과정에서 봉기세력이 직접 자신들의 힘으로 읍폐邑幣를 개혁하려는 모습은 이 시기 민란의 새로운 양상이며 앞으로 전개될 항쟁의 모형을 보여준다. 나주에서 봉기 주도층은 官長을 위협하여 읍권을 장기간 장악하고, 마음대로 이향吏鄕을 차임하면서 반차班差는 10냥, 민차民差는 5냥씩 예전禮錢을 거두었다. 또한 봉기세력은 회비會費로 국결國結에서 매결 1냥2전5푼씩 본읍의 1만 5,000결에서 합 1만 8,750냥을 거두어 자금으로 사용하고, 나아가 관부官簿를 조사하여 절목을 만들어 읍폐를 직접 교구하였다. 이 점은 농민들은 읍폐민막의 교구를 더 이상 왕이나 봉건관료층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려고 하는 높은 정치의식을 보여준다.
- 배항섭, '19세기 후반 ‘변란’의 추이와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 1-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가운데
사정도 해 보고, 호소도 해 보고, 따져도 봤지만 지배자들은 꿈쩍하지 않고...
이제는 농민들이 직접 힘으로 지배자에 맞서면서,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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