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사람을 낳을 때는
귀천이 따로 없고
위 아래가 따로 없으며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가 따로 없었는데
종교가 사람을 대할 때는
귀천이 따로 있고
위 아래가 따로 있으며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지배하는 자는 일하지 않으면서도
호의호식하며 떠받들어지고
복종하는 자는 일하면서도
돈 받치고 굽신거립니다
이런 일이 한 번 되고 두 번 되다보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조차
사람을 위 아래로 나누고
지배-복종하는 자로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종교의 폐단은 깊고도 크니
우주가 낳은 대로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고
소수의 영광과 안락을 위해
다수를 고통에 빠뜨린다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다시 생각하면
인간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종교 또는 종교적인 것들로부터도
자유롭고 해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영혼들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당신과 나는 안락과 평화를 누리며
길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종교적 종파의 스승과 제자는 엄격한 장유존비 질서와 등급제에 다른 가부장적 지배-복종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제 관계는 재생산되었다. 대주교大主敎, 교주敎主로부터 교도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종적 지배관계의 다층적 위계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각 교문敎門의 지도자들은 자신이나 교조敎祖를 신격화했으며, 제자는 스승에게 일정한 경제적 공여를 납부해야만 했고, 따라서 종파 지도자들은 치부하여 무산자에게 지주로 성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종파의 지도자들이 폐쇄적 관계망 속에서 직계 제자를 배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파 지도자들간에 횡적 유대가 형성될 수 없었다.
- 김성찬, '19세기 중국 농민반란의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5-농민전쟁의 역사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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