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012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 암묵적인 도그마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면, 그 논리적 결말로 수용소가 도출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 6
따스한 집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당신,
집으로 돌아오면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얼굴을 만나는 당신,
생각해보라 이것인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예,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생각해보라 이것이 여자인지.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이름도 없이,
기억할 힘도 없이
두 눈은 텅 비고 한겨울 개구리처럼
자궁이 차디한 이가.
이런 일이 있었음을 생각하라.
당신에게 이 말들을 전하니
가슴에 새겨두라.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땐, 깨어날 때나.
당신의 아이들에게 거듭 들려주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 집이 무너져 내리고
온갖 병이 당신을 괴롭히며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외면하리라. - 9
수용소...신생 파시스트 공화국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수용...대개 부주의나 밀고에 의해 파시스트나 나치스에게 체포된 일가족...몇몇 사람은 자발적으로 체포되기도 했는데...터무니 없게 “법을 따르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었다. - 13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 15
독일인들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깐깐하게 점호를 했다...마지막에 장교가 물었다. “Wieviel Stück?"(몇 개) 그러자 하사는 단정하게 경례를 붙인 뒤 650‘개’이며 모두 준비가 되었다고 대답했다...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 17
객차 안에서는 남녀노소가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無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 이번엔 그 객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점만 달랐다. - 18
여행 중에 그리고 그후에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글너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우리는 평범한 인류의 표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18. 19
잠시 후 다른 독일인이 왔다. 그는 신발을 한쪽 구석에 모아두라고 한다. 우리는 신발을 모아둔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렸고, 우리는 세상의 바깥에 있는 것 같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28
사랑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집, 자신의 습관, 옷, 다시 말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린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는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엄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쉬운 일이니까. - 35
해프틀링Häftling(포로). 나는 내가 해프틀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은 174517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지니고 살게 될 터였다. - 35
우리의 삶은 그와 같을 것이다. 매일, 정해진 리듬에 따라 아우스뤼켄(나가다) 아인뤼켄(들어가다), 나갔다가 돌아올 것이다. 일하고 자고 먹고, 아팠다가 낫거나 죽을 것이다. - 49
물론 나는 특권층이 비특권층을 억압하는 것이 세상사의 일반적인 이치임을 잘 알고 있다. 수용소의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이치였다. - 63
카베는 크랑켄바우, 즉 의무실의 약자다. 두 달이 되기 전에 우리는 죽거나 회복되어야 한다.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사람은 카베에서 치료를 받고, 병이 점점 심해지는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진다.
이 모든 게 우리가 다행히 ‘경제적으로 유용한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 65
그 음악이 울일 때 우리는 밖에, 안개 속에 있는 동료들이 로봇처럼 행진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영혼은 죽어 있다. 음악은 바람이 낙엽을 날리듯 그들을 떠밀며 그들에게서 의지를 몰아낸다. 의지같은 것은 이제 없다. 북소리의 박자가 걸음이 되고, 반사작용으로 지친 근육을 잡아당긴다. 독일인들은 이 점에서 성공했다. 1만 명의 동료들은 단 하나의 회색 기계들이다. 그들은 정확할 정도로 결연하다.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 73, 74
도대체 왜 지금까지도 그 무해한 노랫가락이 기억속에 되살아나면 혈관 속의 피가 얼어붙는지 - 74
카베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수용소다. 그래서 아직 의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의식이 다시 깨어난다. - 80
몇몇 카포들은 단순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우리를 구타하지만, 어떤 카포들은 사나운 말을 다루는 마부들처럼 독려의 의미로, 거의 다정하게 짐을 나르는 우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매질을 한다. - 100
바로 그 이유 때문에 SS가 그것을 그렇게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 이빨의 금은 그들 소유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에게서 뽑아낸 금은 모두 조만간 그들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금이 수용소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그들이 통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126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 132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모두 절망적일 정도로, 잔인할 정도로 혼자이기 때문이다. 눌아흐첸이 비틀거린다 해도 그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한쪽에서 누가 그를 죽여버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 133
역사와 삶 속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잔인한 법칙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매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에서, 이 불공평한 법칙은 공공연히 효력을 발휘하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 134
이런 가혹한 자연도태의 결과는 수용소 인원 통계에서도 볼 수 있다. 1944년 아우슈비츠에 오래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 포로...그중 수백 명만 생조했다. 그들 중 일반 코만도에서 정상적인 배급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살았던 일반 해프틀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 음악가, 요리사,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 수용소 권력자의 친구거나 동향 사람이었다. 혹은 카포나 블록앨테스터나 기타 등등에 임명되었던... 특별히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 사람들이었다. - 135
그들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그들으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진다. - 136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수용소에 들어오면 타고난 우월성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런 임무를 맡는 반면, 유대인들은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힘겹게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
그들은 독일 수용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 137
지배를 당한 사람들끼리의 적대감과 증오심을 느끼는 - 138
자신의 도덕 세계의 한 부분이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생존하는 것은, 강력하고 직접적인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 한, 순교자나 성인의 기질을 타고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게만 허용될 뿐이었다. - 140
우리 주위에도 엘리아스를 닮은 사람들, 그 씨앗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목적도 없이, 모든 형태의 자기절제와 양심을 결여한 채 살아가는 개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엘리아스처럼 그런 결함들 덕분에 살아간다. - 149
군악대와 SS의 검문소 앞을 지나 수용소에서 나올 때는 손에 모자를 들고 두 팔을 옆구리에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세우고 다섯 명씩 줄ㅇ르 지어 행진해야 하며 말을 하면 안 된다. - 155
클라우스너가 자기 반합 바닥을 내게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자기들 번호를 새겨놓았다. 나와 알베르토는 우리의 이름을 새겼고, 클라우스너는 이렇게 써놓았다...(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 157, 158
우리는 어땠는가 하면, 너무나 지쳐 있어서 진짜 두려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아직 올바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폭격을 보며 힘과 희망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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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위험과 새로운 불편을 평소와 다름없는 무관심으로 참아냈다. 의식적으로 체념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구타에 길들여진 짐승들처럼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182
‘조직’해낸 음식을 먹고 있다가 들키면 아주 평판이 나빠진다...“그걸 누가 줬지? 어디서 찾았어? 어떻게 구했어?”라고 물어보는 것 역시 똑같이 어리석고 무례한 질문이다. 수용소 규칙을 전혀 모르는, 바보 같고 쓸모도 없고 무방비 상태인 높은 번호들만이 이런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간단히 말해 ‘꺼져!’와 같은 의미를 지닌 수용소의 수없이 많은 은어들 중 하나를 골라 대답하는 것이다. - 185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 187
알몸인 채로 타게스리움에서 10월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나온 우리들은 두 개의 문 사이를 몇 걸음에 달려가서 SS 대원에게 카드를 넘기고 다시 숙소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SS 대원은 두 행동이 이어지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우리의 얼굴과 등을 한눈에 보고 각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렇게 하여 자기가 받은 카드를 오른쪽 남자에게, 혹은 왼쪽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게 우리들 각자의 죽음과 삶을 가르는 것이다. 3~4분 사이에 200명이 수용된 한 막사의 선발이 ‘완료’되고, 오후에 1만 2,000명이 수용된 전 수용소의 선발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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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렇듯 힘있게 그리고 유연하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쫙 펴고 근육을 모두 긴장시켜 불거지게 하려고 애쓰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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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매우 빠르고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게다가 수용소의 운영상 정해진 일정한 수의 빈자리를 빨리 만들어야 할 때, 가장 불필요한 사람이 제거되느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 196
그때 나는 3층에 있는 내 침대에서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소리를 듣는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고 있다.
쿤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옆 침대의 그리스인, 스무살 먹은 베포가 내일 모레 가스실로 가게 되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베포 자신이 그것을 알고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작은 전등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다음 선발때는 자기 차례가 올 것임을 모른단 말인가?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쿤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쳤을 것이다. - 189, 199
크라우스가 삽질을 잘못했다...일을 너무 많이, 너무 힘차게 한다. 그는 아직 모든 것을, 숨쉬는 것, 움직이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아끼는 우리의 비법을 배우지 못했다.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매를 맞아 죽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고된 노역으로는 죽는 경우도 많고 병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오, 안 돼, 가엾은 크라우스. 그의 행동은 이성적인 생각에 의한 게 아니다. 보잘것없는 피고용인의 어리석은 정직함 때문이다. - 202
세상의 다른 실험실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그렇듯, 이 여자들도 수다를 떠는데, 이게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한다. 배급, 약혼자, 집, 다음에 열릴 파티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요일에 집에 가니? 난 못 가. 여행하기가 너무 불편해서!”
“난 크리스마스에 갈 거야. 2주만 지나면 크리스마스잖아. 거짓말 같아. 올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말이야!”
......올해가 빨리 지나간다. 작년 이맘때 나는 자유인이었다. 법의 울타리 밖에 있었지만 자유인으로서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욕심 많은 정신이 있었고, 건강하고 민첩한 육체를 갖고 있었다. 나는 까마득히 멀어져버린 수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 219
오늘 우리 앞에서 처형될 남자는 모종의 방식으로 그 반란에 가담했다...우리는 죽어야 할 사람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무기력과 복종의 두텁고 낡은 장막을 뚫고 들어와 우리들 내부에 살아남은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
비굴한 무리인 우리들 속에서 어떤 목소리, 어떤 신음 소리가 들렸다고 동의의 신호들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구부정하게, 음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
우리는 죽을 나누었고 배고픔이라는 일상적인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제는 수치심이 우리를 짓눌렀다. - 227~229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263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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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그런 무지가 나치즘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공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276
히틀러는 멋진 약속을 했다. 독일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을 경제적 파탄으로 내몬 계급에게 전쟁 패배의 책임을 묻고 그들에게 적대감을 돌려야 했으나, 히틀러는 그 적대감을 유대인들에게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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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는 지성과 의식을 불신하고 본능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주저 없이 선언했다. - 296, 297
히틀러의 개인적 망상, 증오심, 폭력 교사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던 독일 국민에게 걷잡을 수 없는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이 히틀러에게 두 배로 되돌아와 그 스스로 니체가 예언했던 영웅, 독일의 구원자인 초인이 되었다는 미치광이 같은 확신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 301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공개적으로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그들을 믿었고 박수갈채를 보냈고 감탄했으며 신처럼 경배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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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환영을 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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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성과 다른 도구로,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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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단순성과 눈부심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해도, 무상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되더라도,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에 만족하는 게 훨씬 더 좋다. - 303, 304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이 되었다. - 307
우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두 가지, 즉 도덕적인 것과 정치적인 면에서 베긴에 반대할 수 있다. 먼저 도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해도 베긴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정치적인 주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지금 완전한 고립의 상태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우리는 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현재 이스라엘 지도부의 실수에 판결을 내리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감정적인 연대감을 억눌러야만 한다. - 319, 320
'사랑.평화.함께 살기 > 생명.인간.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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