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강력한 공격 본능을 타고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이다. 따라서 이웃은
그들에게 잠재적인 협력자나 성적 대상일 뿐 아니라, 그들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웃을 상대로 자신의
공격 본능을 만족시키고, 아무 보상도 주지 않은 채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웃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웃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웃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웃의 재물을 강탈하고, 이웃을 경멸하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이웃을 고문하고 죽이고 싶은 유혹은 느낀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
공격 본능을 발휘하기에 유리한 상황, 즉 평소에 공격 본능을 억누르는 정신적 억제력이 작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격 본능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인간의 본래 모습은 같은 종족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야수임을 폭로한다. 훈 족의 대이동이나 침입,
칭기즈칸과 티무르가 이끄는 몽골족의 침입, 신앙심 깊은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또는 최근에 일어난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저질러진 잔학 행위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견해의 진실 앞에 겸손히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가운데
성적 금지 때문에 충족되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충족을 향한 정해진 길을
방해받은 생장적인 열망이 그 원천이다. 그러므로 이 강렬한 열망은 한편으로는 강한 가학성의 방출을 쉽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동시에 존재하는 죄의식에 조응하여) 신비주의적인 종교 경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히스테리적인 질병이 불안으로 인한 무력감에서 나오는 변덕스러운 흥분을 해소시키지 못하거나, 강박신경증이 무의미하고 기괴한 강박적
증상에서 나오는 흥분을 해소시키지 못할 경우, 가부장적-권위주의적인 강제적 질서는 그 흥분이 가학적-신비주의적으로 방출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행동의 사회적 합리화는 그 행동의 병리적 성격을 지워버린다.
- 빌헬름 라이히, [파시즘과 대중심리] 가운데
1. 인간에게 공격 본능이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2.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물질적 이득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것은 맞는 것 같음
3.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이유가 공격 본능에 있을 수도 있고
4. 아니면 한국인들이 가족, 친구, 학교, 회사, 군대, 동호회 등 수많은 곳에서 겪어야 했던 피학, 그리고 피학과 관련된 심리적 에너지가 가학적인 에너지로 전환되어
("두고 봐라. 지금은 내가 이렇게 당하지만 나중에 내가 힘을 갖게 되면 너희들을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당한 것의 백 배, 천 배로 갚아 주마.")
5. 타인이 나의 가학에 저항하지 못한다 싶을 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거리에서 우익들이 그러하듯, 가족 안에서 남성들이 그러하듯...
6. 한국인들이 피학의 경험을 많이 갖는 만큼 가학성도 강화되는 것은 아닐까?
7. 그게 아니라, 그들의 가학성의 원천이 성적 욕망이 실현되지 못한 것에 있다면
8. 한국인들이 성욕 실현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고, 충족되지 못한 성욕 에너지가 가학성을 전환되는 것일까?
9. 배고픔, 곧 식욕이 실현되지 못할 때 인간이 공격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10. 또 아니면, 권력자를 자아이상형으로 설정한 이들이 가학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일까?
11. 내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고 상대가 나에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자아 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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