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인들이 노예로 기술자로 일본에 끌려 갔다고 하네요. 끌려 갔으니 당연히 조선으로 돌아 오고 싶어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민족이니 국가니 같은 것들을 떠나 인간의 삶으로 보면 조선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것보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이삼성이 쓴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정부의 피로인 쇄환 노력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또 한 가지 이유는 포로로 끌려가긴 했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624년 조선통신사의 부사(副使)로 일본에 갔다온 강홍중은 [동사록]을 남겼다. 이 책에서 강홍중은 조선 사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피로인들이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해놓았다. “붙잡혀 온 사람들은 맨손으로 온 후, 수년 동안 재산이 늘고 생활이 편해져 돌아갈 마음이 없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강재언은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당시 일본은 이미 화폐경제가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노역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노임이 지불되고 있었다. 강홍중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라 안의 크고 작은 노역에서는 백성을 동원시키지 않고 모두 고용한다. 그 노임 또한 충분하여 사람들은 흔쾌히 일을 하러 나선다. 다만 축성공사만은 병졸과 농민을 불문하고 모두 징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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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더 큰 문제는 사신들을 따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조선인들의 운명이었다. 그들은 많은 경우 일본에 남겨진 사람들보다 어이없게도 더 큰 불행에 직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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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1605년 조선 사절로 일본에 간 유정과 동행하여 부산에 도착한 피로인들을 조선이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조경남의 증언이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정은 쇄환한 피로인들을 이경준이라는 관원에게 맡기고는 형편대로 나누어 보내라고 당부한다. 그러자 이경준은 부산항의 선박들을 거느린 조선 수군들에게 사후처리를 위임한다. 그런데 각 배의 선장들은 “피로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맡자 유리 앞에서 포박했다. 그 모습은 약탈보다도 심했다. 신원을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는 피로인이 있었는데, 어려서 잡혀가 자신의 출신지가 조선이라는 것만 알 뿐 자기의 계보나 부모의 이름을 모르는 자도 많았다. 선장들은 그들을 모두 노예로 삼았다. 피로인이 미인이면 그 남편을 묶은 채 바다에 던져 넣고 그 여자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이러한 소행은 결코 한두 예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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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은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인들에게 응당 알려졌을 것이다. 강홍중 등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다. 일본 현지에서 이문장이라는 한 조선인이 “조선의 법은 일본의 법보다 못하고, 생활하기 어려우며,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본국으로 돌아가도 조금도 좋은 일이 없다”는 말을 퍼뜨리며 조선 사절들의 피로인 모집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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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타니는 아울러 조선이 피로인 쇄환에 집착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지 포로로 잡혀간 자국의 백성들을 진실로 불쌍하게 여긴 탓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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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조선은 <동국신속삼강행실도>라는 것을 간행한다. 이에 즈음하여 사관(史官)이 이 간행물에 대한 평가를 내렸는데, 그 안에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가 절의(節義)를 상실했는데도 그 부형과 자제들이 그 추행(醜行)을 숨기고자 하여 거짓으로 보고하고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는 비평이 담겨 있다. 국가와 사회가 무능하여 약한 백성들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이 낯선 이국에 노예로 끌려간 데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나 회한은 찾아볼 수 없다. 희생자인 조선 여성의 살아돌아옴을 오히려 ‘절의의 상실’과 ‘추행’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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