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에 따르면, 대원군도 진정한 개혁가는 아니었다. 단지 왕권 강화를 출구한 인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궁극 목적이었던 왕권과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일에서도 근본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팔레는 사회와 국가를 장악하고 있던 토지귀족의 지배력이 너무 강했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팔레는 또한 조선사회에서 토지귀족이 그토록 강력한 집단이었음에도 그들에 의한 국가권력의 분권화, 즉 봉거질서가 왜 발전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귀족계급이 중앙권력과 그 구조를 자신들의 존재근거와 동일시하였다는 것이 팔레가 찾은 답이었다. 조선사회에서는 중앙권력구조 자체가 귀족계급 자신들의 사회경제특권 유지에 이용되고 있었다. 배링턴 무어의 통찰을 빌리면, 토지귀족이 군주와 억압적 동맹을 구성했던 셈이다. 지배적 사회계층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현상이 그만큼 깊이 진행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가운데
경상북도 고령에 가면 [대가야 박물관]이란 것이 있습니다. 가야의 국가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여기에는 왕이 죽으면 주변에 있던 신하는 물론이고 일반 농민까지 함께 죽여 묻었던 순장을 재현한 모형이 있습니다. 실제로 왕의 무덤을 파봤더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네요. 현세에서 누리던 것을 내세에서도 누리라고 그렇게 사람을 죽여 묻었다고 합니다. 국가가 왕을 위해 산 사람을 죽인 거지요.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북한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부자 세습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의 지배자들이야 이것이 모두 인민을 위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그 내막은 김씨 가족과 북한 지배자들을 위한 일이겠지요. 북한 지배자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한 일을 국가가 나서서 인민을 위한 일이라고 선전을 하고 있는 겁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서 10여년간 전쟁을 치릅니다. 이 과정에서 수십, 수백만의 이라크인들이 죽고 다치지요. 미국 군인도 많이 죽었지요. 세계 평화와 이라크의 민주주의를 위해 이라크에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미국은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따져 보면 이라크에 있는 석유가 탐이 났던 것이고, 전쟁을 해서 무기를 쓸 필요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석유를 차지하고 무기를 써버리면 미국의 지배자들한테 이익이 될 거구요. 미국 또한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국가네요.
한국은 어떨까요? 노무현 정권은 왜 한미 FTA를 추진했을까요? 이명박 정권은 왜 4대강 사업을 했을까요? 박근혜 정권은 왜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걸까요?
권력기관을 ‘정권의 시녀’로 부리면서 청와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들여다보던 ‘유신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이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대표적 공안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이 ‘채동욱 사태’를 비롯해 권력기관 장악의 설계자로 거론되는 판이다. 권력기관을 사유화해 견제와 균형으로부터 유리된 절대권력은 종국에 권력 남용과 부패의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 경향신문, ‘박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사유화할 셈인가’ 가운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52130115&code=990101
국가권력을 사유화한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국가권력이 사유화되지 않고 공유화 되는 경우도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국가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보면 국가는 사회 안에서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발생한 국가가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국가권력을 사유화한다기 보다는 국가권력이란 것 자체가 사적 목적을 위한 것 아닐까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가 없어지면 국가가 공유화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것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요?
한국으로 치자면 이건희 일가나 정몽구 일가와 같은 자본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치인,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의 언론인 등이 부르주아 계급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네요. 한국의 국가라는 것은 이들 부르주아들의 사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이구요. 조선에서 토지귀족들이 조선의 국가를 이용해 자신들의 사적인 목적을 추구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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