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라와 당
신라가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는 조공책봉체제로 제도화된다. 당의 군주는 신라의 군주를 ‘신라왕 계림주도독’ 등으로 책봉했다. 요동지방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측면이 있는 발해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신라는 당을 도와 발해의 남경을 공격했다. 당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대동강을 경계로 그 이남을 신라의 영토로 인정한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신라가 당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고 한반도를 지배한 것은 신라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을까요, 신라의 지배자들을 위한 일이었을까요? 고구려․백제와의 전쟁에 동원된 군인의 대다수도 신라의 피지배자들 아니었을까요? 전쟁에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낸 것도 피지배자들이었구요.
2. 조선과 명나라
군왕이 중국 국경지역으로 몸을 피하고 명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명줄을 이어가던 상황에서 명나라 명군의 존재는 훗날 재조지은으로 기억되지만, 그 역시 결국은 조선 민중이 부담해야 할 커다란 짐이었다. 그중 하나가 지공支供으로, 명군에 대해 조선이 부담해야 했던 군량 공급 등 보급책임이었다. 이러한 공식적인 부담만이 아니었다. 명나라 군대 역시 남하하여 일본군과 대치하는 가운데 막심한 민폐를 끼쳤다. “명군은 참빗, 왜군은 얼레빗”이라는 속언이 유행할 정도로 명군의 민폐는 일본군 못지 않았다고 한다. 명군이 주둔하는 지역에서 30~40리 안의 마을은 모두 비어버릴 정도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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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는 국왕을 포함한 조선 지배층이 민중의 이반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선조는 조선민중에 의한 ‘성중지변城中之變’을 우려했다. 그는 명군의 주둔, 그리고 명군 가까이에 거처하는 것이 왕권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일본군의 재침만을 우려한 것이 아니라 내부 변란을 못지않게 우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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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조에게 명군은,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강토(疆土)를 지켜주어 자신의 지배권을 회복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민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내변(內變)이 염려됨에 이로부터 왕권을 지켜 줄 후원자”였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선조를 비롯한 조선의 지배자들이 명나라 군대를 그토록 애타게 찾고, 명나라에 군대에 매달린 것은 조선의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을까요, 아니면 백성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고 오직 자신들의 부와 권력의 유지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3. 조선과 청나라
조선정부가 원세개를 통하여 청국에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하였던 것은 농민군의 전주입성이 있은 지 이틀 뒤인 6월3일이었다. 6월5일, 인천항에는 청국군함 두 척과 미국군함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하였을 때 인천항에는 이미 프랑스 군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프랑스군함은 동학농민군의 소요와 관련하여 5월9일 입항한 아래 조선정세의 추이를 주시하면 계속하여 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5-농민전쟁의 역사적 성격> 가운데
1894년 농민들이 조선 사회 개혁을 요구하며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러자 조선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합니다. 조선 군인만으로는 농민군을 제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겠지요.
청나라가 파병을 하자 일본도 파병을 합니다. 이후 일본군은 조선 곳곳에서 농민들을 살해하고, 농민군을 파괴합니다.
4. 일본과 미국
주일미군 병력은 태평양함대사령부 예하의 7함대(1만1천541명)를 포함해 5만1천810명으로 주한미군(2만8천500명)보다 많다.
- 연합뉴스, ‘주일미군 전력 배치 현황’, 가운데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204134708678
일본이 미군을 일본 땅에 있게 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을 위한 일일까요, 아니면 일본 지배자들을 위한 일일까요? 일본의 지배자들이 미일동맹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베 총리가 지난해 총리가 된 뒤 미일정상회담을 서둘러 추진한 것은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를 둘러싸고 중국과의 영토분쟁 속에서 미일 안보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의 신뢰와 강한 연대감이 완전히 부활했다"고 말했다. 센카쿠 분쟁과 관련해서는 "미일이 협력, 자유로운 바다를 지키고 힘이 아니라 법에 근거해 질서를 구축하자는데 일치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주변 국가의 우려를 무릅쓰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재해석을 추진하는 것도 미국을 위한 전략적 배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 한국일보, '"미일 동맹 완전 부활" 들뜬 아베' 가운데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302/h2013022421084422450.htm
5. 한국과 미국
- 연합뉴스, '한미, 서울서 방위비 '끝장 협상'…최종 담판 시도' 가운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2/10/0200000000AKR20131210076700043.HTML?input=1179m
한국의 국가가 미군을 한국 땅에 있으라고 매달리는 것은 한국의 지배자들을 위한 일일까요, 아니면 한국 국민들을 위한 일일까요?
한해에 수천억원씩 드는 미군 주둔 비용은 누가 내나요? 신라가 그랬고, 조선이 그랬고, 일본이 그렇듯이 보통의 국민들이 세금으로 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한국의 지배자들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국민들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지배자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인가요?
명이 조선을 구원해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뜻을 가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관념은 이후 조선 왕조가 가장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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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주의는 한반도의 지배세력에게는 단순히 하나의 외교전략이나 생존전략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의 세계관이고 우주론이었다. 그만큼 형이상화된 신념체계로 되었다. 한반도 지배층의 정신구조는 '중화세력'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매우 유익하고 자연스런 기초가 되어주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 재조지은 : 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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