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국가.전쟁.만리장성

순돌이 아빠^.^ 2014. 1. 13. 17:46



일련의 장성들이 건설된 것은 기원전 481-221년 기간의 전국시대였다. 이 시기 중국의 국가들인 제와 조가 장성 구축에 선두주자들이었고, 이어 위가 따라했다. 중국의 북부에서는 연, 초, 진 등의 나라들이 기원전 4세기 말과 3세기 전반 사이에 장성을 건설했다. 전국시대는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여섯 개 나라들을 통일해 중국사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종막을 고한다.
진시황은 통일제국 내부에 남아 있는 장성들을 해체하고 북방민족들과의 사이에 있는 장성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구축했다. 그것이 기원전 214년경이었다...총장 27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유목민족들의 기마군단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인 방어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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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코스모는 최근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견들이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본다. 북방의 장성들이 건설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유물들은 중국 쪽 군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동전 등속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중국적인 유목민족의 흔적이다. 중국과 유목지대의 경계선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민족들이 이미 살고 있던 지역에 구축된 것임을 말해준다. 장성이 구축되면서 이민족들의 일부는 중국에 통합되었겠지만 상당수는 장석 밖으로 추방되었을 것이다. 결국 디 코스모의 관점에서는, 장성의 건축은 공격적인 유목민족에 대한 방어라기보다는 중국의 팽창과 그 공고화의 교두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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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제국에게 만리장성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의미는 그 최후의 방어선 안에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한 상태에서 지배영역을 만리장성 너머의 북방으로 확장하는 전진기지라는 점이었다.
-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가운데



이처럼 신라는 국내의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비하여 백제와의 동맹관계를 강화하였고, 효과적인 점령지 확보책으로서 일선지대에 많은 산성을 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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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장차 당의 침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해부터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것은 동북쪽으로는 부여성(농안)에서 서남쪽으로는 발해만 비사성에 이르기까지 1천 리에 걸친 장성으로서, 전후 16년이 걸려 완성

- 이기백․이기동, <한국사강좌1-고대편> 가운데




여러 전쟁으로 중국을 진나라가 지배면서 쌓은 만리장성.

신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위해, 고구려는 당과의 전쟁을 위해 성을 쌓음

성이라는 것이 그냥 보면 돌무더기이지만, 그에 얽힌 국가나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돌무더기 이상의 것.

돌무더기 하나까지 지배자들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