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국가. 권력투쟁. 전쟁

순돌이 아빠^.^ 2014. 3. 26. 08:37

상나라에서 주나라로 교체되는 과도기 때, '천하공주‘의 명분과 권위를 둘러싸고 상나라와 주나라의 왕을 모시는 전쟁이 각 종족 간에 치열하게 벌어졌다. 주나라 무왕과 상나라 주왕의 결전이 목야에서 벌어졌다. 이 목야대전에서 패한 주왕은 스스로 분신하여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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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70년, 주나라 왕실이 동쪽에 있는 낙읍(허난성 뤄양)으로 천도하여 역사에서는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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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먼저 나타난 큰 변화는 제후의 실력이 천자를 압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각 제후들이 공공연하게 왕명(王命)을 거역했고 점차 ‘방백(方伯. 제후)이 정치를 하였다.’ 그러면서 ‘성주成周로 천도하면서 천자는 매우 약해졌고’ 제후들이 점차 강대해지기 시작했으며 제齊, 진(晉), 진(秦) 등의 제후국이 잇달아 패주를 칭했다. 또한 이 제후국들은 “천자의 명령을 듣지 않고 서로 겸병했으며 왕실을 위협하여 제후를 호령했고 토벌하여 회맹의 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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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목공 때의 정세는 춘추시대 초기에 시작된 토지 겸병 전쟁에서 강대국 간의 패권 전쟁으로 넘어가 매우 불안정했다. 패권 전쟁은 대부분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명분을 걸었지만 속내는 제후들이 맹주 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천하공주’가 되기 위함이었다. 패권을 위한 전쟁은 겸병 전쟁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국부적인 겸병 전쟁으로 강성해진 제후국은 기존의 지역 패권을 유지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를 호령하는 패권의 자리르 차지했다. 그 결과 다른 강대국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전쟁이 불가피해져 전국시대에는 전쟁이 매우 빈번해졌다. 더 많은 영토를 겸병한 제후가 패주가 될 수 있었으며 패주가 되어야만 더 많은 땅을 겸병할 수 있었다. 패권 전쟁은 규모가 훨씬 큰 토지 겸병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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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초기에 제 환공은 “35개 나라를 합병했다” 진(晉) 헌공은 “17개 나라를 합병하고 38개 나라를 수하에 두었다.” 진 목공은 “12개 나라를 합병하고 1000리의 영토를 개척하였다” 초나라의 토지 겸병 규모는 훨씬 컸다. 장왕은 “26개 나라를 합병하고 토지 3000리를 개척했다” 제후 맹주국들은 모두 주변의 나라를 끊임없이 겸병하여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고 천하에 위세를 떨친 강대국으로 급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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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들판이 죽은 사람들로 넘쳐나는데도 전쟁은 지속되었다. 전쟁은 실력과 전략의 대결이 아니므로 정복전과 외교전이 쉼 없이 이어졌다. 제후국의 군주는 패주가 되기 위해, 제왕이 되기 위해, 나라를 보호하고 집안과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연합하고 분열하는 합종연횡을 경쟁적으로 펼쳤다.

- 장펀톈, <진시황 평전> 가운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시저우시대에 1천8백여 개의 나라(제후국)가 있었는데 춘치우시대에 이르러서는 1백여 개의 나라로 겸병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10여 개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전꿔시대에 이르러서는 7개의 대국과 몇 개의 소국밖에 남지 않았으며 최종적으로 친秦나라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 윤내현, <중국사 1> 가운데





힘센 놈이 우두머리가 되면

약한 놈은 굽신거리고


우두머리가 약해지고

굽신거리던 놈들이 힘을 키우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고.



명분을 존왕양이라고 하든

백성을 위한 일이라고 하든


하늘의 뜻을 따른다고 하든

천하통일이라고 하든


결국 경쟁자를 무너뜨리고

부와 권력을 차지 하기 위한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