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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순돌이 아빠^.^ 2014. 5. 16. 12:45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양철북, 2006




우리가 느끼며 알고 있는 것과,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마음으로 받아들인 도덕적인 규범에 따르기 위해 느끼고 싶어하는 것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 15

진실한 감정은 억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존재를 모르고 지낼 때가 아주 많긴 하지만 진실한 감정은 제자리에 있고, 또 늘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다. - 16

몸이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이유를 앞세워 거절하는데도 내가 억지로 부모를 사랑하거나 존경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네 번째 계명’을 따르려고 하면 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게는 역부족인 일을 요구받을 때마다 늘 스트레스를 받듯이 말이다. 거의 일생 동안 나는 이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었다. - 16

나는 내가 받아들였던 도덕, 곧 가치체계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 좋은 감정을 가지려 했고, 나쁜 감정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처음부터 사랑받는 딸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사랑이 없는데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의 감정이란 자연적으로 생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강요당하지 않거나 도덕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지 않을 때, 나는 내 아이들이나 친구들에게 저절로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을 때에만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 16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아이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일지라도, 혹 사랑받지 못한 과거를 낱낱이 밝히려고 할 때는,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덕의 요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인정해야만, 자기 자신과 자녀에게 진실로 도움이 될 수 있고, 자기기만의 사슬을 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17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게 애정, 관심, 보호, 친절,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부모가 늘 자기와 의사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런 선물을 받은 몸에는 좋은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 사랑받고 자란 어른은 훗날 자녀에게 그와 똑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물을 전혀 받지 못한다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그 최초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갈망이 ‘과거의’ 그 아이를 평생 떠나지 않는다. 이 갈망은, 훗날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전가된다. 또한 사랑을 덜 받고, 또 교육이라는 핑계 아래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아이일수록, 어른이 된 이후에 자기 부모나, 부모와 같은 존재에게 더 강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옛날 그 중요했던 시기에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갈구한다. 그것이 몸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몸은 자기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결핍을 잊지 못한다. 텅 빈 구석에 있으면 그것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18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훨씬 그 이전부터 충족시키고자 했던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자신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부모가 베풀어주지 않았던 관심과 존중, 감정에 대한 이해, 필요한 보호, 조건 없는 사랑을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과거에 바로 우리 자신이었던 그 아이를 사랑했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을 심리요법에서 배우려면, 우리를 지금 모습 그대로 받아줄 수 있고, 보호하고, 존중하고, 가엽게 여기고, 또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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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비난을 퍼붓는 교육자는 이런 경험을 전수해줄 수 없다.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고,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환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배운 정신분석의 또한 이런 경험을 전달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이와 정반대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 즉 우리 편을 들어주는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영혼과 몸이 생명, 곧 수년 동안 계속 위험에 처해 있는 생명을 위해 투쟁할 때, 어린 아이는 혼자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괴롭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 감정이 그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조금씩 밝혀줄 때, 우리와 함께 그 공포와 분노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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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이지 않은’ 훌륭한 동반자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질병을 극복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 18~20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어른의 몸속에는, 부모에게 반항하면 처벌받을 것이라는 어린 아이의 불안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그 불안은 계속 몸속에 잠재해 있다. 그러나 일단 의식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나면 불안은 점점 해소된다. - 21

‘네 번째 계명’은 말한다. ‘오래 살고 싶거든, 가격이 없더라도 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너는 분명히 제 명에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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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와 그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이제 우리 스스로 ‘네 번째 계명’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나를 가혹하게 대했다고 나이 든 부모에게 앙갚음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이러한 삶의 전형에서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부모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부모가 어린 아이인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서 파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내면화된 부모와 헤어져야 한다. 그래야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존중할 수 있다. - 23

‘부정의 교육’은 순응하는 인간을 길러낸다. 이런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면밖에 없다. 그가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처벌을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널 위해서 교육하는 거다. 다 너 잘되라는 뜻에서 때리거나 꾸짖는 것이고” 이것이 최고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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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밀러는 ‘부정의 교육’을 어린이의 의지를 꺾고, 노고럭이고 은밀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조종하고 협박하여 어린이를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하인으로 만드는 데 목표를 두는 교육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사랑의 매는 없다> 참고) -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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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작가로 노벨상을 수상한 임레 케르테스는 자신의 소설 <운명>에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겪을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소년은 이해할 수 없고 잔혹하기 그지없는 온갖 사건을 긍정적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심한 공포 때문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같이 그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는 자기가 보고 느낀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해석한다. 곧 제3자가 보았으면 명백히 범죄라고 규정할 행동을 선행으로 해석하려고 애쓴다. ‘간접 보호자’도 없이 가해자 앞에 통째로 내던져진 상황에서, 아이에게는 감정을 억압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 24, 25

이 아이들이 훗날 성인이 되어 다행히 ‘전문가 증인’을 만나게 되면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가해자를 동정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또 가해자를 위해, 가해자가 느끼지 못하는 분열된 감정을 느끼려 하는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부연하자면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비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치로 몸은 큰 짐을 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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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인이 자신의 모든 진실을 알고 싶어할 때, 몸은 당장 그가 자기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보호해준다고 느끼게 된다. - 25

나는 폭력적인 방식의 ‘교육’을 학대로 간주한다.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존중받아야 할 아이의 권리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일종의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가 모욕과 품위 상실, 학대를 알아차리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에 맞서 저항한다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성인이 된 아이는, 그런 교육을 본보기로 삼아 대물림하고 배우자와 자기 자녀를 대하며, 직장과 정치판에서 이를 실천에 옮긴다. 요컨대 과거에 두려움에 떨던 그 아이의 불안을 외적인 권력의 도움을 받아 떨어낼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런 교육을 행한다. 그로 인해 인간을 경멸하는 자들과 독재자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한 번도 존중받아본 적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성인이 되어서는 거대한 권력의 힘에 기대어 사람들에게 그 존경을 강제로 얻어내려고 한다.

권력에 대한 굶주림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절대로 사라지지도 충족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바로 정치에서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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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어린 시절의 현실을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온몸으로 진실을 느끼기보다는 차라리 국민 전체를 몰살하고 수백만의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 26~27

진실만이 몸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진실이 인정받지 못하면, 곧 부모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무시당하면 몸은 계속 증세를 드러낸다. - 36

어린 아이를 희생시키는 전통은 대부분의 문화와 종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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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녀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의 제단 위에 바치듯이, 제물로 바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이후의 전 교육 과정 동안 과제를 준다. 곧 우리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존중하고, 우리를 위해 출세하여 명예욕을 채워달라는, 요컨대 우리 부모가 우리에게 베풀지 않았던 모든 것을 바치라는 과제를 안긴다.
우리는 이것을 예의범절과 도덕이라고 일컫는다. 아이에게는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 아이는 자기 능력 밖에 있고, 부모에게 받아본 적이 없어 알지도 못하는 그 어떤 것을 부모에게 바치기 위해 평생동안 억지로 노력할 것이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서만 그치지 않는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 36, 37

우리 두뇌가 감정을 저장하면, 우리는 그것을 불러내어 느낄 수가 있다. 또 다행히 ‘전문가 증인’을 만날 경우, 그 느낌들을 안전하게 의식적인 감정으로 변화시켜, 그 의미와 원인을 파악할 수도 있다. - 38


제1부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

마침내 내가 부모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부모의 학대가 내 삶에 남긴 영향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을 때, 과거에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실들 속에서 의미를 간파해내는 눈이 뜨였다. - 41

국가적으로 조직된 사디즘이 사관학교에서보다 강제수용소에서 훨씬 더 악의적으로 잔혹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뿌리는 몇 세기에 걸쳐 진행된 과거의 교육 시스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계획된 잔혹행위를 명령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 모두, 어린 시절에 사람을 모욕하는 수많은 방법과 구타의 피해를 직접 몸으로 겪고, 이를 정확하게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법 없이, 어린 아이나 수감자들처럼 자신의 권력 아래 놓인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잔혹 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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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의 남자들이 어린 시절에 그와 같은 학교를 거치면서, 중벌을 받거나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권위에 묵묵히 복종하는 법을 몸에 익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그들은 ‘네 번째 계명’을 지극히 공손하게 받들었고, 강압적인 권위에 대해 절대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놀라운 것은 그 아이들이 자라 낳은 아이들의 아이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질이 자기들을 이롭게 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 50, 51

버지니아 울프...그녀와 그녀의 언니 바네사는 어린 시절에 두 이복형제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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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에 그녀는 자기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부모에게 털어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문학작품에 몰두할 힘이 있었다. 문학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궁극적으로는 어린 시절에 입은 끔찍한 정신적 외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1941년, 우울증이 그녀를 무너뜨렸고, 버지니아 울프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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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겪은 끔찍한 일에 대해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전문가 증인’이 버지니아 울프 곁에 있었다면, 자살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무도 없었다. - 53, 55

랭보의 전기 작가 이브 본느푸아는 랭보의 어머니가 엄격하고 폭력이었으며, 그 점에 대해서는 모든 자료가 일치한다고 기록했다.

랭보의 어머니는 명예욕에 사로잡혔고, 거만하고 고집불통이었으며, 음험한 증오를 품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무미건조한 기질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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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다정다감한 아이가 그런 어머니 곁에서 성장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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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녀의 행동에 빠짐없이 간섭하면서, 그것을 모성애로 간주했다. 그런데 총명한 아들은 그 허위를 간파했다. 또한 외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해주는 것과 진정한 사랑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니는 자기가 목격한 사실을 모두 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랑받는다고 착각이라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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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기가 허위와 냉대를 받을 짓을 했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확신 아래, 분노의 화살을 자신을 향해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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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코올와 압생트, 대마초와 아편의 힘을 빌려, 또 계속되는 여행에 의지하여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평생 동안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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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랭보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감춰져 있는 진실을 찾아 헤매느라 평생을 허비했다. 어머니가 자행했던 행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미워하도록 이른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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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랭보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옥 속에 자기를 가두려는 여인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랭보의 일생은 마약 복용, 여행, 환상에 기대어,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시의 힘을 빌려 이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이어졌다. - 57, 61

프루스트의 어머니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아들을 염려했다. 하지만 모든 면에 걸쳐 세세한 것까지 간섭했고 인간관계까지도 지시하려고 했다. 아들이 열여덟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느니 하며 결정권을 휘둘렀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들을 소유하려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매달리는 고분고분한 아들로 만들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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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동안 진정한 사랑을 추구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그를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결국 마르셀은 그런 어머니를 피해 내면으로 움츠러드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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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동안 그는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자기 행동에 간섭하고 강요하는 어머니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의식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곧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는 내면화된 어머니를 공공연하게 보호할 수밖에 없었고,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자기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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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지녔고 고분고분했으며 전형적인 시민계층 가정의 딸이었던 자네트 프루스트가 아들의 범상치 않은 독창력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었다. 그녀는 널리 인정받는 한 의사의 아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사교계에서 존경받기 위해 무척 신경을 썼다. 사교계의 평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마르셀의 창의력과 활력을 위협으로 받아들인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제거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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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초에 프루스트가 쓴 편지

제가 건강하게 지내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모든 것을 파괴해요. 그러면 결국 저는 다시 힘들어지고요. 이건 진실이에요. 제가 더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어머니를 자극하기 때문일 거에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애정도 받고, 동시에 건강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저에겐 슬픈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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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이후로 그의 몸속에 잠재해 있던 이 공포는 과연 자기가 부모가 바라던 아이였는가에 대한 불안과 관계가 있다. 부모의 작은 꾸지람과 비난은 그에게 잠복해 있던 불안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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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해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 어머니의 간섭과 억압에 대해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가 육체적으로 중병을 앓게 된 원인이었다. 그것이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도덕으로 내면화되어 어머니에 대한 반항을 억눌렀다.

만약 그가 작품의 주인공인 ‘장 상퇴유’를 시켜 말하게 했던 것처럼 일찍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천식을 앓지도, 숨통이 막히는 발작에 시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한 평생을 침대에 누워 보내지 않았을지도, 그토록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분명하게 썼다. ‘그녀의 눈 밖에 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몸이 아픈 쪽을 택하겠다고.’ - 68~77


과거에 생존을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속박에 매달려 일생을 살아왔고, 이제 와서는 속박 없는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사람에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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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새로이 끄집어내어 진실을 찾아냈고, 그 덕분에 자폐증과 같은 은신처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지난날 그들은 그 은신처에 숨어서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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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를 찾아가는 도주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들은 무엇 앞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했고, 무엇이 자기에게 불안을 안겨주었으며, 이러한 불안과 이른 어린 시절에 겪은 무서운 상처가 자신의 전 생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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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다가올 의식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인식하고 강요된 도덕의 허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사회의 기둥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88, 89

생애 초기에 진실하고 자연스런 감정을 대단히 강하게 억압하는 법을 배운 탓에 삶 전체에 걸쳐 그에 대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보이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자비의 감정을 일깨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겐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호기심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92

사담 후세인...의붓아버지는 양치기였는데, 끊임없이 소년 후세인을 경멸하며 ‘후레자식’이나 ‘개자식’이라 불렀다. 또한 무지막지하게 매질을 가하거나 인정사정없이 괴롭혔다. 노예 신세나 다름없는 아이를 한껏 부려먹기 위해 열 살이 될 때까지 학교도 보내지 않았고, 한밤중에 아이를 깨워 양떼를 돌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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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아버지의 포로였던 사담 후세인의 경우에 이 소망은 오직 하나뿐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무한한 권력’이었다. 추측건대 그의 머릿속에는, 의붓아버지가 자기에게 가진 것과 같은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발휘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도둑맞은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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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재자들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부정하려 하며, 과대망상증의 도움을 빌려 이를 망각하려고 노력한다. - 93, 94

파렴치한 독재자는 과거에 매를 맞으면서 자란 아이의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는 불안을 동원한다. 이 아이들이 아버지를 고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을 받았으면서도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한다. 모든 독재자는 사람들이 갖가지 실마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이러한 아버지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매달리면, 언젠가는 그 아버지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 95

매 맞고 고통을 당하고 모욕을 겪으면서 ‘간접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린이들은, 일반적으로 부모와 같은 존재들이 저지르는 잔인함을 대단히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발전시킨다. 또한 학대받는 아이의 고통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낸다. 자기 자신이 한때 그렇게 학대받는 아이였다는 사실에 대해 절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그런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그들은 진실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인간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고 굳게 확신하면서도, 악의 변호인이 되어 간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진정한 감정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오로지 부모, 교사 그리고 교회의 권위자들의 지시에 자신을 맡기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96

그들은 본래 자기는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거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며...자기도 가끔 매를 맞고 굴욕을 당하거나 모욕을 겪기는 했겠지만, 포럼에 참여하여 글을 기고한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고통을 겪은 적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한다...포럼 참여자들의 공감 덕분에, 그들은 서서히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고작해야 그들은 아동학대를, 더없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다가 힘에 부친 나머지 저지른 고의 아닌 실수쯤으로 여긴다. 이것은 아버지가 일자를 잃거나 일에 지치다 보니 주먹을 뻗게 되었다고 말하거나, 어머니가 옷걸이가 부서지도록 아이들을 때린 이유가 결혼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와 같이 얼토당토않은 설명이 통하는 이유는, 우리의 도덕이 옛날부터 어른의 편에 서서 아이를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 99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거둔 모든 경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다. 자기가 겪은 과거를 캐내 부모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분노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해준 동반자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학대받던 아이의 파괴적인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더 자유롭게 꾸려나갈 수 있었고, 부모를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 101

그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어린 시절에 베풀어주지 않았던 것을 언젠가는 베풀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다. - 106

안드레아스라는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과체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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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황, 다시 말해 자기를 내쫓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탈출구도 찾지 못한 채, 독점적인 부모의 권위와 의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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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로는 자율권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없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대신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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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어린 그에게도 주지 않았던 것을 다 자란 그에게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를 자기들의 소유물로 취급했고, 그가 아무리 소원을 이야기해도 절대 귀담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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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문가 증인’으로 나서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그제야 그는 자기가 어린 시절처럼 이용당하고 있고, 아직도 이를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언젠가는 자기 부모가 변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릴 수가 있게 되었다. - 113~115

루트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의외로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네 번째 계명’이 틀리다는 것을 내 삶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어요. 부모님의 요구에서 벗어난 뒤로, 다시 말해서 부모님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기대에 더 이상 부응하려 하지 않게 된 뒤로, 내 몸이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을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병의 증상들이 사라졌고, 우리 아이들을 신경질적으로 대하지 않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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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려고 했고, 자기 자신과 부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척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직전까지는 그녀도 심한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을 받아들이자, 그녀에게서 불안이 사라졌다. - 118

내면화된 부모에 대한 예속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길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정의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과 죄책감을 내려놓는 것이다. 또한 꼭 거쳐야 할 다른 과정들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부모에게 바랐던 것, 요컨대 솔직하게 감정을 주고받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날이 언젠가는 꼭 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 121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대’라는 것이 너무나 집요하기 때문에, 끝까지 부모가 바라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사랑이라는 환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 - 122

자기 아이의 겉모습만을 사랑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이가 가면을 벗어버리기가 무섭게 그들은 으레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이전의 너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야.” - 123

2003년 6월8일, <르몽드>지는 한 기사에서 파트리스 알레그레라는 범죄자의 어린 시절에 대해 놀랄 만큼 상세히 다루었다. 몇 가지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이 여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 졸라 죽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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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정진술에서 성폭행을 할 때, 한 번도 성적인 욕구를 느껴 본 적이 없었고, 다만 절대적인 힘에 대한 욕구만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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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가 여성과 어린이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는 순간에는, 과거에 무력했고 존중받지 못했던 아이가 꿈꾸었던 그 절대적인 힘에 대한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그 무력함이 근친상간 경험으로 인한 성적 체험과 결부된 것이 아니라면, 그런 범죄는 성적인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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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어린 자신을 고통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어머니를 발견했고, 그때마다 목 졸라 죽이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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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희생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다시 말해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는 그의 욕구를 인정하고, 이를 의식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전문가 증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서는 살인욕구가 무한히 증식되었고, 어머니 대신 다른 여성들을 살해하도록 그를 충동했던 것이다. - 145~148

어린 시절에 나는 분노, 노여움, 고통, 불안과 같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을 억압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반응을 보이면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150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법 그 자체를 기피한다. 자기가 겪은 비극적인 경험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거나, 털어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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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에게 접근하는 통로를 완전히 상실하고 가면 속에서 허구의 인격으로만 살아야 하는 위험에 빠졌을 때에도, 그들은 항상 풍부하게 널려 있는 마약과 술, 약물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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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은 유쾌한 기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알코올보다 더 강한 마약으로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진실하지 못하고 몸의 진정한 과거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에 남긴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갈수록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게 된다. - 151

2003년 7월7일자 <슈피겔>지의 한 기사에서 기자로서, 그것도 <슈피겔>에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던 한 젊은이는 자기가 수년 동안 헤로인중독에 빠져 지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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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약이 그의 불안과 고통을 억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약효가 떨어지면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이 감정들이 그만큼 더 거세게 그에게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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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동안에는 자주 욕실에 들어가 몇 시간씩 안장서 아직 완전히 파손되지 않은 혈관을 찾기 위해 씨름을 하곤 했다. 정백이 부식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코카인 때문이었다. 나머지 혈관들이 망가진 것은 멸균처리가 안 된 주사기로 수없이 약을 투입한 탓이다. 욕실에 있으면, 욕조와 바닥에는 핏자국이 엉겨 있고 벽과 천장에는 피가 튀어 있는 것이, 마치 푸줏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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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진정시켜주는 헤로인의 효과에 대해서도 기억이 났다. 그것은 일종의 영혼의 유연제 같은 것으로, 태포胎胞가 태아를 감싸주듯 따뜻하게 감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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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는 마약을 투여하지 못할 때, 진정한 욕구와 감정들이 얼마나 거세게 솟구치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핍, 고독, 분노와 같은 진정한 감정들은 극심한 공포감을 조장한다. 그때마다 그는 헤로인의 힘을 빌려 이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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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의 강제력에 종속될 경우,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감정과 느낌에 이르는 길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 151~158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성장한 자녀의 긍정적인 변화가 과거에 자녀를 학대하던 부모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와 반대로 그런 부모는 시기심과 금단현상을 드러내며 아들이나 딸이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자녀가 복종하고 충성스럽고 무시를 받아도 괘념치 않기를, 근본적으로 말하면 우울증에 걸리고 불행해지기를 바란다. 성장한 자녀의 각성된 의식은 많은 부모를 불안하게 하며, 관계 개선은 얘깃거리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164, 165

객관적인 평가를 강요하여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대비하려 하지 말고, 모든 감정이 다 주관적이듯이 늘 자기 자신의 느낌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어렸을 대 날 고통스럽게 한 것이 무엇이었지?’, ‘절대 느껴서는 안 된다고 금지당했던 감정은 무엇이 있었지?’하고 말이다.

부모에 대한 총체적인 비난은 중요하지 않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관점을 찾아내고, 애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 170

몇 년 전부터 현대의 두뇌 연구자들은 생후 첫 몇 달부터 3년까지 어머니와 행복하고 믿음직한 애정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뇌에 결정적인 흔적이 남고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185

그녀가 그리워했던 것은 거짓 없고, 가식적으로 ‘염려해주지 ’않으며, 죄책감을 씌우지 않고, 질책하지 않고, 불안하게 하지 않고, 투사하지 않는, 감정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었다. - 192

그것을 극복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뒤담아들어 주고, 자기를 이해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더 이상 숨어 지낼 필요가 없는 경험을 반드시 해봐야 한다. - 193

아니타 핑크도 오랫동안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녀는 부모와 이성 친구들과 진정한 관게를 맺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이런 소망은 한 번도 충족된 적이 없었다. 음식을 거부한 것은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리고 자기를 이해하려고 하고, 또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침내 아니타는 완쾌될 수 있었다. 당시에 열여섯 살이던 아니타는 1997년 9월부터 병원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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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쁜 당신들의 명령에 복종하고 당신들 곁에서 마치 기계부품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건강해질 수가 있겠어?...난 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살기는 싫다. 그러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 난 내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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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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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병세가 회복된 것은 당신이 아니라 포르투갈 출신 청소부인 니나 덕분이다. 니나는 저녁에 자주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정말로 귀담아들어 주었고, 우리 가족에 대해 분노를 표현했다. 나 자신은 감히 그럴 마음도 먹기 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는 나도 분노를 터뜨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니나는 거기에 대해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얼마나 춥고 외롭게, 그야말로 철저한 외톨이로 성장했는지를 스스로 감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신뢰를 얻어야겠는가?

내가 처음으로 식욕을 느끼게 된 것은 니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였다. 그때부터 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 삶이 내게 무엇이 베풀어주었어야 했는가를. 그건 바로 진정한 의사소통이었다. 내가 늘 갈망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니의 싸늘함, 아둔함, 불안은 내가 원했던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음식을 억지로 받아 먹어야 했다. 이렇게 이름뿐인, 독이 들어 있는 음식을 피한 결과가 거식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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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아이였다. 하지만 니나에게 나는 전혀 우스꽝스런 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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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저절로 대답이 찾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부모님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를 진지하게 대해주며, 끊임없이 날 가르치려 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는 것뿐이다. 난 니나와 함께 있을 때처럼 부모님과 있을 때에도 자유로운 느낌이고 싶다. 니나는 한 번도 나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부모님이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 방식에 주눅이 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도 싹 잊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부모님이 나를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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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가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기쁨에 겨워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부모들을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전율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그들이 20년 동안 사랑했던 아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침내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아이가 되는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연습에 온 힘을 쏟은 아이였을까? 아이를 정말로 사랑했으면서도, 그 부모는 이렇게 무의미한 명예욕을 가지고 있었을까? 부모의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는데도, 굳이 금메달을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부모는 도대체 누구를 사랑했던 것일까? 금메달을 딴 아이였을까? 아니면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여 고통받았을 아이였을까?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런 금메달 수상자를 본 적이 있다.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를 사로잡은 것은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건 환희의 눈물이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그를 사로잡았을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자신만은 그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테지만 말이다. - 201, 202


모든 아이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버둥거린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아이는 희망을 잃게 된다. 어쩌면 이와 같은 어머니의 거절에 모든 절망의 뿌리가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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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위해주고, 이해하려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순간, 마침내 병에서 회복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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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는 갈수록 현실 속에서 방향을 더 잘 짚어낼 수 있었고, 현재와 과거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먹는 것에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얻는 기쁨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솔직했고, 그녀는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타는 그 사람들과의 교류를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거의 모든 이웃들에게서 떼어놓았던 그 불신과 불안감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자주 묻곤 했다. 현재와 과거가 그렇게 불투명하게 얽히지 않게 된 이후로, 그것들은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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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심이 무척 많은 사람들도 누가 실제로 자기를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준다고 느끼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것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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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건 속일 수가 없다. - 194~221

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학대로서, 평생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어린이가 겪은 폭력은 몸에 저장되어 있다가, 훗날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민족에게 전가된다. 또 매를 맞은 아이가 그 폭력을 자기 자신을 향해 겨냥할 경우, 그것은 우울증, 마약중독, 중병, 자살이나 때 이른 죽음을 초래한다. - 223

죽을 때까지 경외심을 가지고 부모를 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두 가지 원리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첫 번째 원리는, 심각한 도착증으로 이어지기까지 하는 피학대음란증을 통해 적지 않게 드러나듯이, 과거에 학대받던 아이와 그 아이를 괴롭히던 사람의 (파괴적인) 애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