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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기쁨과 슬픔

순돌이 아빠^.^ 2014. 6. 17. 07:06

자아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자아의 욕망에서 도출된다. 자아의 욕망이 성취되면 기쁨이고, 좌절되면 슬픔이다. 그 기쁨은 자아에게 좋은 것이고, 그 슬픔은 자아에게 나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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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언제나 다른 자아들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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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의 자아에게 좋은 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겐 나쁜 것일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그 자신에게도 나쁜 것일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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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기쁨은 오히려 자아의 슬픔보다 더 우리를 족쇄에 채운다. 기쁨의 중독적인 단맛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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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사랑의 사회적 분배구조 속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며, 또 그러한 상승을 통해, 사랑의 국지적 정세의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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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기쁨은, 그 기쁨이 ‘자아’의 기쁨인 한에서, 반드시 잔인한 기쁨일 수밖에 없다. 그 기쁨은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아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기쁨을 느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함’을 믿으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아의 기쁨은 불안으로 시작해서 불안으로 귀착된다. 자아에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사랑의 사회적 분배구조 속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불안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제압하려는 욕망이 성립하고 그런 욕망의 성취는 자아를 더 강한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다. 결국 두려움 또는 불안의 이 악순환은 다른 사람을 짓밟는 잔인한 기쁨을 강화한다. 자신에게 가해온 불안에 대해 잔인함으로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슬픔도 마찬가지로 자아가 느끼는 슬픔이다. 즉 그 슬픔은 ‘나’와 관련된 슬픔, ‘내’가 어떻게 되었다는 슬픔이다. 그런 점에서 자아의 슬픔은 기본적으로 정체성 훼손에 따른 슬픔이다. 자아란 기본적으로 여러겹의 아이덴티티들, 즉 정체성들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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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추락은 사랑의 사회적 분배구조 내에서 추락하는 것이다. 이 추락에 대한 자아의 즉각적 반응은 슬픔이 아니다. 정체성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강해서 그 추락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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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정체성 추락에 대해 전율하고 분노하고 부인한다. 자아에게 그 추락은 자신의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참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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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정체성 추락을 슬퍼하는 것은, 그동안 누렸던 정체성의 향유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의 향유는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의 향유를 수반한다. 그래서 정체성의 추락은 오히려 차별의 향유로부터의 해방의 계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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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사랑은 애착이다...자아의 애착은, 그것이 ‘자아’가 애착하는 것인 한에서, 자아의 욕망을 통해 애착하는 것이다. 자아는 바로 ‘자아의 욕망’으로 인해 자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의 애착’은 ‘자아의 욕망의 애착’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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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누군가에게 애착한다는 것은, 자아가 그에게서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려 한다는 것, 그를 자신의 욕망에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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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사랑=애착은, 그 강도가 강렬한 한에서는, 애착의 상대를 옆에 놓고 지배하려는 성격을 갖는다. 집요한 감시와 통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아가 그러한 것들로 기뻐한다는 것, 자아가 그러한 것들로 슬퍼한다는 것 자체가 영혼에겐 슬픔이다. 기뻐할 수 없는 것을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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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행위에 대한 영혼의 슬픔은 자아의 행위 자체의 ‘실질적 잔인함’에 대한 것이다. 물론 자아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그 잔인함의 실질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영혼은 자아의 행위에서 상처를 받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께 겪으면서 슬픔을 느낀다.


- 글 출처 : 이종영, <영혼의 슬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