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비와 데이먼은 현재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도덕적 리더십을 고려하면서, ‘도덕적 모범들’이라고 생각되는 스물세 명(남자 열한 명과 여자 열두 명)을 선별했다. 그들은 도덕적 열의를 통해 시민권과 시민자유, 빈곤과 기아의 축소, 종교의 자유, 환경보호, 평화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현저히 기여한 사람들인데, 비록 인종과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구체적인 목표는 다양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별나게 강력한 양심의 감각, 즉 인류의 복지가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지나치게 발달된’ 감각이다.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소시오패스들의 감정적·정신적 대척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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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명명한 그 공통된 특징이란 바로 ‘확실성’과 ‘긍정성’ 그리고 ‘자기 자신과 도덕적 목표의 일치’다. ‘확실성’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에 관한 특별한 명료함,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분명한 개인적 의무감을 가리킨다. ‘긍정성’은 삶을 대하는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 놀라우리만큼 일을 즐기는 모습, 그리고 종종 찾아드는 어려움이나 심지어 위험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두드러진 낙천성을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과 도덕적 목표의 일치’는 자기 정체성과 도덕적 입장의 통합, 그리고 도덕적 목표와 개인적 목표의 확연한 동일성을 기술한다.
여기서 ‘일치’란,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 양심은 단지 길잡이 불빛이 아니라는 뜻이다. 양심은 곧 그들 자신이다. 그 모범들 가운데 한 명인 커벨 브랜드는 자신의 개인정체성 관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항상(매일, 매순간)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내가 누구인가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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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충분히 강해지면 인간정신을 독특하고 유익한 방식으로 아우르고, 극단적인 양심은 ‘삶의 붕괴’를 야기하기보다 삶의 만족을 상당히 높여준다는 것이다. 콜비와 데이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모범들은 강력한 양심으로 인해 자신들이 설령 가난해지더라도 그것이 삶의 만족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필요로 한 것은 자신들의 도덕적 사명을 생산적으로 추구하는 일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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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의무감은 그들을 고생시키거나 속이기는커녕 행복하게 만들었다.
양심, 즉 서로를 향한 우리의 의무감은 우리가 가정과 전 세계에서 서로 더불어 살게끔 해준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며, 우리가 허울뿐인 무의미한 경쟁으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아주 커다란 양심의 감각은 도덕적 의무와 개인적 욕구, 그리고 머릿속의 정체성을 통합할 수 있으며(즉 옳은 행동이 곧 우리 자신과 합치되고), 그런 까닭에 극단적인 양심은 드물게 딱 들어맞는 인간행복의 열쇠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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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한 형태의 양심은 사랑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많은 사안에서 서로 이견을 보이는 신비주의자들과 진화심리학자들 모두 사람들의 정상적은 본성은 서로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 글 출처 : 마사 스타우트,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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