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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핀리 편, <고대노예제>

순돌이 아빠^.^ 2014. 10. 15. 07:49


M.I. 핀리 편, <고대노예제>, 탐구당, 1977

 



고전고대세계의 노예제

죤스

 

고대 전반을 통해서 가내 봉사에 흡수되어 있던 노예의 비율은 상당히 높았을 것인데 그것은 몸종이란 언제나 노예이었고 그들의 수효는 현대의 표준으로 헤아리면 엄청날 저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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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황제 치하의 로마시장관 페다니우스세쿤두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는 시내에 있는 자기의 저택에만 400명의 하인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 15

 

()마르티누스의 전기작자는 몸종 한 명으로 제한한 그의 금욕주의를 예찬하고 있다. - 16

 

노예들은 또한 고대 전반을 통하여 비서직이나 관리직에 사역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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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스트라투스라는 부호는 자기의 금융업을 노예인 파시온에게 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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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나 해방노예가 이런 종류의 직위에 기용된 것은, 자존심이 강한 자유인이 고용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지위에 종사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점은 크세노폰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와 에우테로스라는 자 사이에 교환된 대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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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그의 체력이 나이와 더불어 점차 쇠약해질 것이므로 아무도 고용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고 부자의 사업 지배인이나 토지 관리인과 같은 일자리를 구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에우테로스는 놀라면서 [나는 노예와 같은 신세로 배겨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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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테로스는 사무직보다는 육체노동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을 임대하는 데는 적극적이나, 주인에 대한 개인적 봉사를 포함하는 직책에 종사함으로써 자기의 독립성을 상실할 것에는 반대했던 것이다. - 16~18

 

미숙련 노예노동이 그 소유자에게 그토록 이익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노예의 가격이 엄청나게 싼 데에 있었다. 미숙련자의 가격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125내지 150드라크마이었다...노예의 가격은 처음 약 1년간의 양육비 정도였다.

 

노예 상인은 노예를 공짜이거나 공짜나 다름없는 값으로 입수해 곧장 팔지 않으면 거의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사실인즉 이 시대에는 해적이나 납치범이 횡행(橫行)했으며 또한 주변에는 치안이 불온한 광대한 후진 지역이 있어서 거기엔 끊임없는 부족간의 싸움으로 다수의 포로를 낳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만이 노예노동은 그것이 아테네 경제에서와 가튼 중요한 역할을 행할 만큼 염가(廉價)일 수 있었다. - 31

 

 

이 시기의 노예제에 처음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대규모의 노예노동의 사용이 농업에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로마의 귀족은 원로원 신분이나 기사 신분이나 다같이 제국지배에 의해 막대한 금전 재산을 획득하여 그것을 토지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소토지 소유 농민들은 장기간의 병역으로 큰 타격을 받아 그 토지를 매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소규모의 토지소유를 희생으로하여 대영지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대토지 소유자는 노예의 가격이 매우 저렴했기 때문에 자유인 노동보다 노예사역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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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농민은 토지 없는 농촌인구도 상당한 수효에 달한 듯하며 그들은 주로 포도따기와 같은 수확기에 날품팔이로서 생계를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34, 35

 

로마법은 노예의 자녀에 대한 관심을 점차로 높여갔다. 기원후 52년의 클라디우스황제의 원로원결의에 의해 자유인 여자가 노예와 동거하면 그 노예의 소유주에겐 그 여자( 및 그녀의 자손)를 자기의 노예라 주장할 권리가 부여되었었다. - 36

 

사료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농업과 국영공업에 있어서 노예제가 세습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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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또한 양육에 의해 노예제 공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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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으로 노동자를 그 아이와 함께 중요 직업에 [동결]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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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공업에 있어서는 법률적으로 군인이었던 무기제조공과 법률적으로 노예이었던 화폐주조소나 직물공장 염색공장의 노동자 사이의 기술 이외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양쪽 다 아이와 함께 그 직업에 결박되었으며 무기제조공의 경우 도망했을 때 쉽게 발견되도록 낙인(烙印)이 찍혔던 것이다. - 49~51

 

 

. 고대 희랍에 있어서의 노에제와 자유의 제요소

웨스터맨

 

희랍의 도시국가의 노예제를 내가 아는 다른 노예제도와 구별하는 것은...아테네의 관행(慣行)속에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관청업무에 종사할 노예를 도시국가가 구입하는 관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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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은 공공노예를 제국용과 도시용 양쪽으로 대규모로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구입된 일군의 공공노예가 경찰력으로 사용되어 무장하여 자유인을 체포할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희랍 외에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 66, 67

 

우리가 [노예]란 말을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노예란 노예화된 인간에게 허용된 선택권에 일련의 제한이 과해진 신분을 뜻합니다.

 

콜리쓰 바우나크 편 [희랍방언비문집] 2권에 보이는 노예해방을 기재한 델피의 비문 가운데에는 해방노예가 해방되기 이전에는 누릴 수 없던 자유의 본질적인 것으로서 다음 네 가지 인신의 자유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읍니다마는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1. (해방노예)는 모든 법적 사건에 있어 자기 자신의 대표이자 주인이며 대리인의 개재(介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유의 법적 표현이다.

 

2. 그는 재산으로서 신체가 차압되지 않는다. 환언하면 아무도 그의 신체에 손을 대지 못한다.

 

3. 그는 그가 원하는 무슨 일이든지 행할 수 있다.

 

4. 그는 그가 원하는 어느 곳에든지 갈 수 있다. 즉 여러 가지 형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상이 희랍인의 생각으로 노예가 아닌 자와 노예를 구별하는 개인의 자유의 4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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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노예신분을 규정하는 주요한 인격적 속박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됩니다.

 

1. 모든 법적 소송에 있어서 그 주인이나 주인에 의해 법적으로 위임된 다른 인물에 의해 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2. 누가 노예에게 손을 대어도 그는 따라야 한다. 즉 압수(押守)와 체포에 복종해야 한다...이것은 특히 도망 노예의 경우에 적용될 것입니다.

 

3. 노예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없고 그 주인이 명하는 바를 행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부정된 것을 의미합니다.

 

4. 노예는 자기가 원하는 장소나 사람에게 갈 수 없으며 또한 원하는 주소에서 생활할 수 없다. 즉 자기의 폴리스 거주 및 가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 71~73

 

행위와 이동의 자유를 표현할 때 사용된 희랍어의 동사는...(ethelein)이지...(bulesthai)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새로운 자유란 감정적인 욕구 즉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것이 ethelein이란 낱말의 본질적인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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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ethelein)은 어떤 일을 성취시킬 권리 혹은 의지력을 갖지 않은 채 일을 하려는 열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노예가 행하는 것은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며 자유인이 행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것인 것입니다. - 74

 

델피의 170개 정도의 노예 해방문서...그 문서에는 해방된 노예가 법률적으로 여전히 혹종의 예속적 속박하에 있을 것을 규정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속박은 일정한 연한 혹은 때때로 해방주의 수명을 계산에 넣은 융통성이 있는 기간 동안 해방노예의 자유에 대해 과해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문제없이 법적으로 인정된 자유도 어느 정도 환영화幻影化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것이 희랍인이 paramone라고 부른 예속계약부 해방인 것입니다. - 75~76

 

자유인이 가졌던 인신상의 네 가지 자유 가운데 이동의 선택권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이제까지 너무나 간과되어 왔습니다. 전에 노예이었던 자가 자기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는 게르만 민족의 일파인 랑고바르드의 노예해방의 상징으로서 랑고바르드시대까지 존속했습니다. 그 법에 의하면 해방되기로 된 노예는 십자로에 데려가서 네 개의 방향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출발하도록 허용된 것입니다. - 79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귀로스의 교육]에서 제3의 자유 즉 행동의 자유인 관념을 다음과 같이 명백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예들이 자발적인 의지없이 주인에게 봉사하는 한 우리는 우리를 노예와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이고자 원한다면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일을 자발적인 의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 80

 

 

 

. 희랍문명은 노예노동을 기초로 하고 있었던가?

핀리

 

희랍인의 가치 척도로서는 여부與否를 결정하는 기준은 노동의 성격이 아니라(물론 한도는 있으나) 노동이 영위되는 조건이나 지위에 있는 것이다(독립이냐 피고용이냐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의 조건은 타인의 속박하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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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희랍인이 모든 종류의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 즉 타인을 위해 정기적으로 일하는, 따라서 타인의 속박하에 생활하는자유인은 원자료에는 희귀한 현상인 동시 그 존재는 전체상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임이 틀림없다. - 91

 

대체로 역사의 전 시기에 있어서 대다수의 인간은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제제도諸制度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부일처 결혼이나 경찰력이나 기계제 생산이 자기들의 생활양식에 과연 필요한 것인가를 자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외부에서 혹은 기근 질병과 같은 천재지변에 의한- 도전이 있을 때만이 이러한 사실을 문제로 삼는 것이다. - 105

 

토론이 행동으로 전환했을 때 심지어는 위기가 내란이나 혁명으로 전환했을 때에 있어서도 노예제의 정당성은 의문시되는 일이 없었다. - 107

 

희랍세계의 인구의 상당한 부분이 노예나 그 밖의 종류의 종속노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다수가 바르바로이(異國人)였다는 것, 대체로 각 도시국가의 엘리트는 여한餘閑가진 층이며 그들은 경제적인 사항의 실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매매가 자유로운 노동력에 의거하고 있었으며 그 노동력에 대해 광범위한 소유권과 동등하게 중요한(신체에 대한) 물리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 119

 

 

. 호메로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희랍인의 노예제이론

로버트 슐레이휘

 

영웅시대 이후의 노예제에 관한 이론은 두 가지 요인, 즉 범희랍적 내셔날리즘의 흥융興隆과 천업경시경향의 증대를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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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셔날리즘의 기초는 민족적인 대제전이 성행됨에 따라 비희랍계가 배제되는 때인 기원전 8세기에 이루어졌다. 정치적 종교적 동맹의 형성, 대신탁에 희랍 전역에서 모여드는 순례자의 집회나 그밖에 이와 유사한 집회, 이러한 것이 피와 정신과 조상으로부터의 유산에 있어 하나란 것을 희랍인에게 인식시키게 한 것이다.

 

전 희랍인에 공통된 호칭으로서 [헬레네스 Hellenes]를 그 밖의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범주(範疇)로서 [바르바로이 Barbaroi]를 사용하게 되는 것도 8세기이었다. - 130

 

바르바로스라는 말은 당시 형용사로 사용될 경우 서투른이라는 매우 넓은 의미를 띠고 있으며 헬레니즘이란 말은 혈연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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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문화를 갖는 것은 사실상 희랍인이며 비희랍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기원전 5~4세기의 일반적인 견해이었다.

 

문화가 우월하다는 인식 외에 또하나의 요인이 희랍인의 바르바로이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바르바로이가 절대적 전제 - 희랍인이 예속상태라 불렀던 상태 -에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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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신념, 즉 우월한 문화에 대한 신념과 바르바로이의 정치상태를 사실상 노예제라 간주한 신념에서 당연히 두 가지 결론이 나오게 된다. 첫째는 바로바로이는 노예신분에 적합하도록 타고났으며 따라서 그곳을 노예화하는 것은 희랍인의 특권일뿐더러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희랍인은 자유신분에 적합하도록 타고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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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신념이 적에 대한 민족적 대성전에 실현되어야 한다고 빈번히 주장되며 또한 전문적인 철학적 용어로서 희랍인과 바르바로이의 본성의 차이를 강조하려 시도된 것이다. 그 설명은, 바로바로이에는 영혼 속의 어떤 필수부분이 없거나 모자란다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동방인은 용기가 모자라고 물욕이 과하며 더욱이 다른 모든 바르바로이와 같이 희랍인만이 갖는 애학심愛學心이 없다고 생각했다. - 132~134

 

계몽啓蒙 사상의 확대와 더불어 인류를 희랍인과 바르바로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분류하는 것을 부정하려는 학파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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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그 사람이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다 해도 훌륭한 인물이라면 친구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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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데모크리토스는 이미 현인에게는 모든 땅이 열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 전체는 선한 영혼의 조국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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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이나 관습에 관해서는 그 보편성여부가 양부良否의 판정의 유일한 지정한 기준이라고 히피아스는 주장했는데 이 말은 어떤 민족이 특별히 우수하다는 가능성을 단연코 부정하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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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의 소피스트 안티폰은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희랍인이건 바르바로이이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 있다. 따라서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희랍인이건 바로바로이이건 구별되는 일 없는 것이다’ - 135~137

 

솔론의 법에 따르면 딸이 불법적으로 남자와 관계를 맺은 것이 발각되었을 겨우 아버지는 그 딸을 팔 수 있다는 것 - 150~ 151

 

사인私人이 자기가 소유하는 노예를 마음대로 고문할 수 있다는 것은 노예가 아무런 법적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에 의한 소유자의 완전한 지배권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희랍에서 노예에 대해서 고문이 행해진 것은 그들에게 도덕적인 자각이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정치적 권리로서 보호되는 자 이외의 모든 인간에 대해서 고문이 행해져 왔다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었다. 고문이란 진실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되었던 것 - 155

 

노예는 법적 권리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은 다른 어떤 특별한 요인에 의해 방해되지 않는한 뜻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 156

 

귀족제가 일어날 시기에는 후세의 거의 모든 사상에 특징적이 된 새로운 요소가 들어왔다.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노동 멸시의 태도나 혹종惑種의 노동을 노예의 것으로 구별하는 것이 이 시기에 발달했다. 그리고 이때 노예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신분에 적합하며 그 이외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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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천성奴隸天性]론의 시작은 노예의 신체적 외관이 일찍부터 경멸된 데에서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노예에 의해서 행해지는 일이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본질적으로 비천(卑賤)하다는 신념과 결부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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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노예계급 전체에 관한 일반적 개념...‘노예란 그렇게도 천한 것, 배를 채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노예의 특징은 명예도 수치도 혹은 어떠한 건전한 요소도 전연 갖추지 않은 것이었다. - 162, 163

 

플라톤...[국가론]에 나타나는 통치자와 전사를 포함하는 제1계급은 정신적으로 매우 탁월하며 사사(私事)에 있어 자기를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현명하고 선량한 인간에 의해 지배되기 마련...직인은 자기통제 능력은 있으나 정치나 관직과 같은 고도의 활동을 행할 능력이 없으며 한편 노예는 그 어느 쪽도 아니다. - 168~169

 

현존하는 기록상에서 노예제를 규탄한 사상가 가운데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변론가 알키다마스이다. 그는 [멧세니아 연설]에서 370년 테에베인이 해한 멧세니아인의 해방을 신이 자유인을 해방한 것이다.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든 일이 없다라고 옹호하고 있다. 그의 주장의 근거가 된 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에 위배되는 것이며, 어떤 자는 노예이고 어떤 자는 자유인인 것은 법에 의한 것이지 자연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제적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분명히 중요한 학파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 185, 186

 

 

로오마의 노예제이론

레븨 브릴

 

법적 견지로는 노예는 물건 혹은 동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195

 

노예 신분은 세습이다. 노예의 아이는 노예이다. 혼외의 모든 관계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핏줄기는 모계의 것이다...남자 노예가 자유인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며 그 반대의 경우는 당연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한 명 혹은 수명의 여자 노예를 거느리는 기혼 남자에는 두 종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하나는 본처에서 태어난 아이들로서 자유인이라 칭해지며 여자노예에서 태어난 노예인 아이들과 구별되었었다. 노예인 양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물론 노예이었다. - 202, 203

 

오늘날 우리와 같은 문화형태를 갖는 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 사이에는 어떤 정신적인 이유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단지 인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에 의해 특정의 제권리를 갖게 되고 그 인격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이 관념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며 아직도 이것이 침투되어 있지 않은 사회가 허다하다. 이 관념이 없는 곳에서는 외국인은 필연적으로 권리를 갖지 않으며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는 물건인 것이다. -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