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성인 A는 명절만 다가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마음이 더 힘들지요. 명절이 꼭 웬수 같습니다.
그렇다고 명절을 안 지낼 수도 없고...명절을 안 지내려면 시댁·부모님·친척 등과 관계를 끊던가, 남편과 크게 한 판 벌여야 하는데 그럴 기운도 없고...
오랜 세월 참고 참아 왔지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 화가 났다가도,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싶어’ 체념도 했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 우울해지기도 했지요.
‘저 남편이란 놈은 도대체 나를 지 종으로 여기는 거야’ 싶어 울화통이 터지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 명절 귀성 기차표 예매를 한다는 소리만 나와도 벌써부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져서 날 괴롭힐까’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구요.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배속에 있던 첫째 아이가 어느새 커서 이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쭈~욱 그렇게 살았지요.
이번 설에도 변함없이 괴로운 마음인 것 같아 카톡으로 저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명절이란 게 여성들을 괴롭히는 거고, 모여 앉아 있어 봐야 껍데기 같은 관계만 넘쳐나고, 그런 형식적인 가족보다는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뭐 그런 얘기였지요.
그러니까 A가 함께 마음 나누는 벗이 있어 힘이 나고 기쁘다네요.
A가 그런 말을 하니 제 마음이 울컥하네요. 첫째는 얼마나 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까 싶어서 울컥하고, 둘째는 함께 마음 나누는 것으로 힘이 나고 기뻤다니 울컥 하더라구요.
물론 힘을 주고 싶었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A에게 한 말은 힘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이겨내라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A의 마음을 생각하며 명절에 관한 제 마음을 전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봤어요.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앞으로 명절 때 마다 돈을 천만 원씩 줄 테니 덜 힘들게 보내 봐요”
“이번 명절 지나고 나면 대통령을 시켜 줄 테니 그럭저럭 지내 봐요”
“좋거나 싫거나 자식 된 도리니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해 봐요.”
이렇게 하면 A에게 용기와 기쁨이 생겼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요?
“명절이란 말만 들어도 힘들죠...아이고 그 망할 놈의 명절, 누구를 위한 명절인지...사람을 잡네 잡아. 힘들어서 어떻게 해요? 내가 다리를 주물러 줄 수도 없고...”
제가 A에게 해 드린 거는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음식을 같이 만든 것도 아니었어요. 시댁이나 친척들을 만나지 않게 해 준 것도 아니었구요. 그런데 왜 A에게는 용기와 기쁨이 생겼을까요?
어쩌면...
우리 인간이, 우리 속에 있는 마음이란 것이 그런 존재인 것은 아닐까요? 내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을 누군가와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우리가 더 기뻐지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닐까요?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아픔을 누군가와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우리가 덜 외롭고 덜 아픈 건 아닐까요?
누군가의 재산이 100억 원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요. 그 돈을 함께 쓸 사람도 없고, 자신이 가진 돈을 부러워해 줄 사람도 없어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재산이 100억이든 1조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이가 학교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하지요. 상장을 들고 신나게 집으로 뛰어 와 보니 아무도 없네요.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요? 상은 이미 받았지만 그 기쁨을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김이 팍 새지 않을까요?
아무리 신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을 함께 해 줄 사람 없을 때는 모든 것들이 시시해지고 우리 마음도 시무룩해지지 않던가요?
제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 문제에 마음을 쓰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당장에 자유롭게 해 줄 수도 없고, 부서진 집을 지어드릴 수도 없더라구요. 그 분들도 저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구요.
그런데도 서로 행복하고 기쁠 때가 많았어요. 제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그분들이 느꼈을 때이지요. 저의 이런 마음을 그분들이 느낀다는 것을 제가 느꼈을 때이구요. 서로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얼마나 큰일이던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마음을 느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우리 삶의 큰 축복이고 행운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고, 깊이 빠져드는 늪에서 희망의 밧줄을 붙잡는 것일 수도 있구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면서
우리에게는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함께 기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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