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에릭에게 연어 카르파초가 맛있다, 레스토랑이 근사하다고 감탄했기 때문에, 그녀의 쾌감은 음식과 분위기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첫 코스를 먹는 그녀를 지켜보면 명백히 그녀는 그 주에만 영화·패션·음악계의 유명 인사들 수십 명이 다녀갔으며 장안이 떠들썩하게 인구에 회자되는 레스토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그 사실보다는]에 열광한 것이었다.
여기서 욕망의 두 가지 형식을 끄집어낼 수 있다. 하나는 ‘음식이 내 입맛에 꼭 맞으니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네’라는 자율 판단. 다른 하나는 ‘다들 그렇다니까 여긴 훌륭한 레스토랑일 거야’라는 모방 심리.
전자인 경우 욕마잉 그 대상과 직결된다. 후자인 경우 먼저 중간 경로, 곧 신문의 평이나 유명인의 입을 거쳐 욕망이 걸러진다.
앨리스는 두 가지 형식 중 언제나 후자 쪽을 따르는 편이었다. 자율적인 욕망보다는 모방을 선호했다. 갖고 싶은 옷, 구두, 레스토랑, 애인에 대한 취향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인상에 맞춰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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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템에서 첫 코스가 끝날 즈음, 앨리스는 지금 행복한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가봐야 할 곳’에서 식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가봐야 할 그곳’에 있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일까?
다른 사람들이 바로 거기라고 정한 곳에 가고 싶다는 것.
그것은 중심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그래서 의심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의 중심에 있고 싶다는 갈망.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가운데
음식, 옷, 신발, 가방, 직업, 애인, 말투, 몸짓, 생각, 감정 등등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남을 따라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남은 내가 보기에 근사한,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일만한 것이지요.
그렇게 해야 내가 속하고 싶은 무리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는다거나 나도 그들과 함께라는 느낌을 갖게 되겠지요. 외면 당하거나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따라하는 겁니다.
A가 해서 멋있는 것을 나도 하면 A처럼 될 것 같습니다. 내가 A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A를 좋아했듯이 남들도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열리는 거겠지요.
그 옷, 그 말투, 그 머리모양이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특정한 누구일 수도 있고, 불특정한 다수일 수도 있는 그들과의 관계가 문제겠지요. 날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나를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따라하는 거겠지요.
'모방심리'하면 청소년이나 여성들만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 남성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뭘 잘 안다고 하는 것이나 목소리 높여 얘기하는 것이나 힘 있어 보이려는 몸짓 등이 온통 따라하기인 경우가 많지요. 그렇게 따라 해서 나도 A처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겁니다. 남들에게 멋져 보이면 남들이 날 사랑해 줄까 싶은 거겠지요.
A처럼 한다고 해서 실제로 남들이 그 사람을 사랑해 줄지 아닐지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러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남성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슨 지식이나 힘이 아니라, 그 지식과 힘을 통해 혹시나 얻게 될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겠지요. 초딩들이 개콘에 나오는 말을 남들 앞에서 열심히 따라하는 이유나 남성들이 테레비에 나오는 남자 연예인처럼 되고 싶어서 몸 만들기에 열심인 이유나 그게 그게 아닌가 싶어요.
딱히 예쁜 줄 모르겠는데 남들이 예쁘다고 하니 예쁜 옷을 입으려 하고, 딱히 힘센 척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남들이 멋있다고 하니 애써 힘세 보이려는 행동 뒤에는 사랑을 찾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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