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공간이 그나마 숨쉬기 편했다. 그러나 여전히 외로웠다. 외롭다는 말은 그때의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좀 싱겁다. 전 지구에 내 문제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 문제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돼서 사는 외로움. 그런 와중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학교 생활을 즐기고, 우정을 나눴다. ‘그래, 아빠라는 사람이 나를 아무리 감시해도 내게[는 나만의 탈출구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의 싹이 내 속에서 자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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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그때 나를 자기 손아귀에 완전히 가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무시하기’라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그 사람이 내게 저지르는 짓거리와 상관없이 내가 그 나이에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들, 누려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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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반항하지 않고 당한다고 해서 그게 꺾인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놈한테 동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때 내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저지른 더러운 짓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때도 학교에서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좋은 것이 있을 때는 좋아했고,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가운데
지배하는 자는 마음 속까지 온전히 제 뜻대로 하고 싶어하지만
그 어떤 지배자도 온전히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
아무리 힘센 지배자도 상대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웃어도 웃는 건지 울어도 우는 건지를 알 수 없어 불안해 하기도
몸이 묶여 있는데 마음마저 묶여 있으면 벗어나기 어려우나
몸이 묶여도 마음이 묵여 있지 않으면 언젠가는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 속까지 지배하고 싶어하는 자에게 맞서는 저항의 시작은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을 지켜나가는 게 아닐까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배자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고 저항이지 않을까
지배하려는 자가 있어도
끝내 지배할 수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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