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일어난 일들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힘주어 생각했다. 힘주어 생각하지 않으면 스멀스멀 나를 잡아먹는 수치심에 내가 먹히고 말 것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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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흔히 갖게 되는 수치심은 가해자들에게나 던져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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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회의 시선도 피해자들을 수치심 아래 묶어두지 않았으면 한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고 폭력의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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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만 봐도 혼자서 저절로 수치심을 벗게 된 게 아니다. 집을 나와 지내면서 교회 친구들과 집을 얻어 같이 살았다. 힘들 때면 술을 양껏 마시고 완전 뻗은 상태에서 집에 업혀 오기도 했고, 그렇게 들어온 날은 울며불며 밤새 신세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오랜 시간 사랑으로 참아줬다.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울부짖다 잠이 든 적도 부지기수다. 다음 날이면 친구들은 따끈한 북엇국이나 콩나물국을 끓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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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집을 나와 만난 한국성폭력상담소, 교회, 일터의 친구들 모두 내 상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조금씩 내 상처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게 됐다. 친구들은 상처를 통해 나를 본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상처를 봐줬다. 친구들의 빛나는 눈들이 내 수치심을 씻어줬다.
-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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