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강아지가 미안한지 딴짓을 한다. - 175
며칠 전에 아빠라는 새끼한테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뒤 화가 나면 종종 전화를 걸어 따지는 습관이 생겼다.
“아가, 왜?”
“지랄한다, 그렇게 부르고 싶냐?”
...
“병신, 아주 지랄을 한다. (비웃음을 적절히 날려준 뒤) 나 잘 살고 있어, 개새끼야. 너는 나를 사랑할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개새끼야, 진자 괜찮은 애 만났거든. 근데 내가 부모가 제대로 없다고 걔네 부모가 결혼 반대한다. 개새끼 너 때문이야”
...
이상했다. 몇 년 만에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난 뒤 몇 번 전화해서 욕을 했는데, 속이 참 후련하다. 내 속에 쌓인 쓰레기 같은 감정을 버려야 할 곳에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도 잘 내고 신경질적이라는 평을 자주 들었는데, 그 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갈 것들이 아니었다. 그 사람 때문에 쌓인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을 이제는 멈추고 싶었다.
...
몇 번 번화를 해서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겁낼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할 욕을 종이에 글로 쓰거나 입속이나 머릿속에서 하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하기 시작하니 또 다른 경지가 펼쳐졌다.
그 사람의 귀에 직접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에게 품은 두려움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이제 내 어린 시절 막강한 힘으로 나를 마구 대할 수 있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개새끼를 개새끼라 부르고(나는 이 욕을 할 때마다 개한테 미안하지만 달리 무슨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 때문에 진짜 화가 났거든’ 하고 그 사람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는 지금이 참 좋다.
-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가운데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더 큰 힘을 가진 존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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