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고 해서 영화나 한 프로 땡기자 싶었습니다. 뭘 볼까 하다 문득 홍상수라는 이름이 떠올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밋밋한 느낌의 영화였는데...점점 영화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별 일 없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점점 재밌어서 웃게도 하고 어이없어 웃게도 만들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하정우가 ‘너무 더럽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라면서 울분을 토할 때는 정말 빵 터졌습니다. 그 장면만 몇 번 돌려 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여성과 섹스를 하려는 수컷들의 경쟁과 질투 같은 것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겉은 그렇지 않은 척 고상한 척 포장을 잘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캬~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지?’ 싶은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지나고 나니...약간은 서글프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저렇게 성욕에 이끌리고, 남들에게 사랑 받고 싶어 하면서도 겉은 안 그런 척 하며 살아가는 수컷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래 너도 참 안 됐다’ 싶습니다. '그래 너도 참 안 됐다' 싶으니 '그래 나도 참 안 됐다' 싶구요.
술을 남들 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느니, 내가 몇 살이라느니, 군대를 어디 갔다 왔다느니, 자동차가 뭐라느니 같은 것들로 자랑을 늘어놓는...참 별 볼 일 없고 찌질한 모습인데도 그걸 어떻게든 열심히 드러내고 싶어 하는 수컷들이 떠올랐습니다.
곧 총선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인간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면...남들 앞에서 내가 더 잘 났다는 것을 뽐내기 위해 술집에서 팔씨름을 해 대던 영화 속 남자들과, 남들 앞에서 내가 더 잘 났다고 뽐내기 위해 정치판에서 옥신각신하는 김무성이니 김종인이니 안철수니 하는 남자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혹시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에 대한 갈망과 수컷 사이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암컷과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본능적인 욕망이 그들을 정치판에서 싸움박질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자신을 의식하든 아니든 말입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싸움박질에 몰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져봅니다.
심심한 듯 밋밋한 듯도 싶지만 깊이가 깊고 여운이 오래가는 참 멋진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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