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으로 가는데 설레고 기대되더라구요. 과연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어떻게 발레로 표현했을까 싶었어요.
이번 공연에서 먼저 마음에 남는 건 렌스키와 올가에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래 맞아. 사람이 기쁘고 행복하면 저럴 거야.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통통 튀고 뛰어 오르고 몸을 흔들고 마주 잡고...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무리 지어서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 좋더라구요. 저까지 마악 들뜨더라니까요.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손을 잡고 무대의 이쪽으로 들어갔다 저쪽으로 나오고, 저쪽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통통통 뛰어나올 때는 어찌나 예쁘고 귀엽던지 ^^
검은 옷을 입고 거만하게 걷기도 하고, 렌스키의 애인 올가에게 접근하기도 하고, 타티아나를 뿌리치기도 하는 오네긴의 모습을 볼 때는 저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특히 제 안에 있는 오만함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오네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인간 그 자체가 완전 쓰레기라서가 아니라...아무튼 그 오만함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지 싶어요.
무용수의 걸음걸이와 몸짓에서 오만함이 묻어나더니 저를 부끄럽게 하더라구요.
타티아나가 하늘을 나는 듯한 장면이 있어요. 남자 무용수가 밑에서 받치고 여자 무용수가 공중에서 몸을 쭉 펴서 나는 거지요.
근데...정말 타티아나가 하늘을 나는 것 같더라구요. 마음에서 절로 아~~~ 하는 소리가 나더라니까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멋졌어요
!!!
하늘을 날 수 없어서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내는데
하늘을 나는 흉내를 내는 것이
하늘을 직접 나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해야 될까 어떨까 싶어요.
지난 번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도 그랬지만 문학작품을 발레로 표현한 것을 본 것이 참 좋았어요. 음...뭐랄까...문학작품이 더 잘 느껴지는 것도 같고,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2차원의 문학이 3차원의 발레로 표현되는 것도 같고 그래요. 제가 막연하게 느꼈던 부분이 또렷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상대를 유혹하려는 '몸짓' 같은 것들이요.
글을 통해서는 아예 알 수 없던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해요. 안나가 왈츠를 추든 마주르카를 추든 저는 그게 어떤 춤인지 전혀 몰라요. 올가나 타티아나가 옷을 어떻게 저떻게 입었다고 해 봐야...그런 옷을 본 적이 없으니... ^^
공연이 있기 며칠 전, 피아노 샘과 얘기하다 발레 얘기가 나왔어요. <오네긴>을 예매해뒀다고 하니까 엄재용, 황혜민 두 사람의 은퇴 무대라고 하더라구요. 공연 날짜에 따라 다른 주연들도 있는데, 마침 제가 운이 좋아서 두 사람의 은퇴 무대를 보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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