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바이올린 레슨이 있었어요. 핸델의 Largo를 연습했지요. 선생님이 한 번 해 보라고 해서 하고 나니 샘이 말했어요
이 곡 해 보시고 나니 어때요?
음...무엇보다 이곡을 하니까 마음이 편해져요
마음이 편해져요...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 안 해요. 그냥 어렵다고만 하지...
아..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할 때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너무 매달려 있는 건 아닌가 싶더라구요. 심지어 우리 마음을 풍성하게 하고, 감성을 키워줄 음악을 하면서도 그런 것 같구요
피아노샘이 쇼팽의 녹턴 2번을 쳐 보라고 해서 쳤어요.
이번 곡을 해 보니까 어때요?
(가슴에 손을 대면서) 음...다른 잡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옛 추억이 떠오르고 그래서 좋았어요
그렇죠...
피아노샘이 저의 모자라는 부분을 알려 주시려고 이렇게 해 보시면 어떻겠냐며 한 번 쳐 주셨어요.
(목이 살짝 매면서) 아...선생님...그렇게 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해요
(살짝 웃으시며) 아...네...
피아노샘도 처음에는 제가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약간 의외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렇게 몇 년 서로 지내고 나니까 이제 서로 그런 느낌을 자연스레 말하고 듣고 그래요.
음악이든 뭐든 어느 정도의 기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배드민턴을 치려면 스매시나 헤어핀을 연습해야 하고, 바이올린을 하려면 활 긋기 연습을 해야 하고, 피아노를 하려면 스케일이나 아르페지오 연습을 해야 해요. 아무리 풍성한 마음이 있어도 어느 정도 기량이 없으면 이런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렵거든요.
고흐가 연습하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했던 것도 어느 정도 기량이 되어야 푸른 하늘의 별빛도, 까마귀가 나는 밀밫도 표현할 수 있을 거니까요.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고흐도 박수근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살리기 위해 붓질을 얼마나 하고 하고 하고 하고 또 했을까 싶어요. 생각하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시도해 보고 또 생각했겠지요.
그렇다고 저에게 음악이든 예술이든 뭐든 기량이 목표는 아니에요. 배드민턴을 즐겨 치는 이유가 A조가 되어 어깨 펴고 세상에 나서기 위한 것은 아니에요. 배드민턴을 치면 활력이 생기고 즐거워서 치는 거에요. 사람들과 어울려 화이팅 화이팅 소리치며 노는 것도 좋구요.
영화 <엽문> 같은데서 보여 주듯이 무림의 고수는 고수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수련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성장시키는 게 목표잖아요. 수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게 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싶어요.
우리 삶에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바람에 떠도는 나뭇잎과 갈 길 몰라 헤매는 청춘이 있어요. 우리의 그런 삶들을 표현하고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음악이나 예술이 저는 좋아요.
음악이든 뭐든 잘하면 그런 삶과 그런 마음들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겠지요.
그곳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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