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배가 고파서 빵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방에다 상을 펴고 빵과 크림과 우유와 물컵을 올렸지요. 그리고 노트북을 켜서 <알쓸신잡>을 틀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밥 먹으며 드라마나 <알쓸신잡>이나 <아는형님>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거요 ㅋㅋㅋ
알쓸신잡이 시작되고 유시민도 나오고 유희열도 나오고 제주도도 나오고 분위기 좋습니다. 마트에서 산 우유를 들어 물컵에 따랐지요. 우유를 따르고 나서 우유통을 밥상 저 편에 놓으려고 옮기는데 어디선가 추릅 추릅 하는 소리가 납니다. 고개는 우유통 쪽을 향하고 눈알만 굴려서 소리나는 쪽으로 돌려보니 어느새 순돌이가 밥상위에 올라와서 우유를 먹고 있습니다. 헐~~~
소리만 추릅 추릅 나는 게 아니라 붉고 긴 혀가 우유속을 부지런히 오가는 게 보입니다. 일단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제 소리를 듣고 순돌이가 어떻게 했을까요? 눈알만 제 쪽으로 쳐다보면서 여전히 혀는 우유속을 오가더라구요.
야! 내 꺼야 내꺼! 이 나쁜 놈아!!!
말로는 안 될 것 같은,
오랜 시간 순돌이와 함께 지내온 저의 날카롭고 정확한 예지력으로
이제 힘을 써야만이 순돌이가 물러날 것 같더라구요.
제 몸무게가 순돌이의 30배는 나가니 이 놈 하나 밀어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예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다른 부위도 아닌 목에 손을 대고 뒤로 밀었습니다.
하하하~~~ 처음에는 기습을 당했지만, 이제는 저의 뛰어난 완력으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순간이 오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우유를 지켜내고 마음 편히 빵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가슴에는 성취감과 뭉클한 감동이 일어나더라구요.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순돌이가 뒷다리에 힘을 팍! 주더니 온몸을 버팅기면서 저의 완력에 맞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 이 나쁜 놈아! 니 꺼 다 먹고 와서 내 우유한테 왜 그래!!!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에도 순돌이의 혀는 열심히 우유 속을 오갑니다. 그러면서 순돌이의 눈빛이 말을 합니다.
아빠, 도대체 왜 그래? 치사하게! 우유 좀 나눠 먹으면 안 돼? 그까짓 거 얼마한다고 나한테 이렇게 짜게 구는거야. 우리 사이가 그것 밖에 안 돼?
하도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기운이 빠지더라구요. 그나마 다행인 건 순돌이가 저의 힘에 못 이겨서인지 아니면 먹을만큼 먹어서인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밥상에서 물러나더라구요. 고마워 순돌아~ ㅠㅠ
그렇게 순돌님께서 우유를 드셨고, 저는 순돌님께서 먹다 남기신 우유와 빵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가수가 아닌 제주도 농민 루시드 폴도 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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