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것들/순돌이

순돌이를 닮은 나, 개를 닮은 인간

순돌이 아빠^.^ 2017. 12. 6. 09:37

순돌이와 말이 통하지는 않아요. 가끔은 사람과 개 사이의 통역기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뭘 원하는지,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 보고 싶어요.


그나마 어떤 몇몇 행동을 보면 순돌이가 뭘 원하는지를 살짝 알 수 있기는 해요.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앞다리를 들어올려 제 다리를 쳐요. 제가 손을 뻗어서 순돌이의 몸에 닿을 때까지 가만 있으면  그건 피아노 위에 올려달라는 거에요.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주로 피아노를 통해 식탁 위에 올라가려고 그러는 거에요.





저를 툭 건드리고 제가 손을 뻗었는데 몸에 손이 닿으려고 하자 몸을 뒤로 빼기도 해요. 그러면 일단 의자에서 일어서서 내려오라는 거에요. 그래서 바닥에 앉으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훑어 봐요. 아니면 방으로 달려가요. 장난감을 찾거나 가져오는 거에요. 장난감을 제 손에 쥐어주면서 끌고 당기기를 하자는 거에요. 


제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몇 발자국 저만치 가면서 저를 쳐다봐요. 그러면 제가 한 걸음 옮겨요. 그러면 순돌이가 또 몇 걸을 저만치 가면서 저를 쳐다봐요. 그러면 또 제가 한 걸음 가요. 이렇게 해서 어제 오후에 도착한 곳은 현관 앞이었어요. 주로 오후에 산책을 해서 그런지, 어쨌꺼나 심심하니까 나가자는 거지요. 오늘 아침에는 그렇게 해서 자기 밥그릇 앞으로 저를 데려갔어요. 먹을 거를 더 달라는 거지요. 적지 않게 먹고도 모자랐나 봐요. 욕심쟁이 순돌이 ^.^



아침에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순돌이가 베란다로 뛰어나가는 게 보였어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들어와서 킁킁 소리를 내고 몸을 흔들고 뒷다리를 차는 행동을 해요. 베란다쪽에 커텐이 쳐져 있어서 순돌이가 무얼하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얘가 똥을 싸고 왔구나 싶더라구요. 그래서 나가보니 정말 똥을 싸 놨더라구요. 


순돌이가 제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으면 '아, 뽀뽀하고 싶어하는구나'를 알 수 있어요. 그럴 때 제가 조금만 다가가거나 자세를 낮추면 어김없이 뽀뽀를 해요. 조금 더 다가가면 으르릉 대겠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더 가가가면 정말 어김없이 으르릉대요.


순돌이가 웃으면 기분이 좋구나 싶어요. 어떤 목소리로 크게 짖으면 누군가를 경계하는구나 싶어요. 제 앞에서 앞발을 요래요래 하면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구나 싶어요. 하품을 하면 졸리구나 싶어요. 문을 긁으면 열어달라는 말이구나 싶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주로 행동이나 몸짓, 표정을 통해 순돌이를 이해하려고 해요. 그리고 적지만 어느만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오늘 아침에는 그게 신기하더라구요. 적지만 어느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거.


말도 안 통하고 종도 다른데 어떻게 순돌이의 마음을 어느만큼 이해할 수 있는 걸까요? 순돌이도 마찬가지여서 저와 말이 통하지 않고 종도 다른데 저의 행동이나 몸짓, 표정을 보면서 저의 마음을 어느만큼 이해하지 싶어요. 


무엇이 우리를 서로 이해하게 만드는 걸까요? 어쩌면 순돌이와 제가 닮은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순돌이처럼 저도 기분이 좋으면 웃어요. 졸리면 하품을 하구요.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헤헤 거리며 몸이 들썩들썩 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론가 가 버리면 슬퍼요. 무언가 무서운 것이 나타나면 도망가요.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해서 아프면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피해요. 제 마음이 그럴 때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표정을 지으니까, 순돌이가 그렇게 행동을 하고 그렇게 표정을 짓는 것을 통해 순돌이의 마음이 나와 비슷하겠구나 하는 거지요.


눈 코 입이 있는 위치와 기능도 비슷해요. 눈으로는 보고 코로는 냄새를 맡아요. 눈으로 먹지 않고 입으로 먹어요. 더 잘 듣고 싶으면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향해요. 귀로 냄새를 맡지는 않나봐요. 귀로 사물의 형태나 움직임을 파악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어요.


상대에게 나를 쳐다보라고 할 때는 앞 발(손)을 사용하거나 소리를 내요. 열심히 달릴 때는 뒷 발(다리)를 사용해요. 저의 팔과 다리가 그렇듯이 순돌이의 앞 발과 뒷 발을 만져 보면 뒷발 허벅지의 근육이 탱탱해요. 


돌을 씹어 먹지는 않아요. 음식을 먹을 때 이빨을 이용해요. 입에서 목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입에서 귀로 음식이 넘어가진 않아요. 때가 되면 물을 먹구요. 쉬를 하는 신체 부위와 응아를 하는 신체 부위로 나뉘어져 있고, 몸에서 어떤 것은 액체 상태로 어떤 것은 말랑말랑한 덩어리로 나와요. 






한국에서 개와 닮았다는 것은 경멸의 느낌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이 개새끼야' '이 개 같은 놈아'와 같은 말이 욕으로 쓰고 들리는 거겠지요. '개'라는 말에 그런 느낌을 담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니에요. 저는 개의 새끼가 아니라 인간의 새끼에요.

개 같은 놈이라...혹시 제 얼굴이 개와 비슷하게 생겼나요? 아니면 제가 강아지들처럼 잘 뛰어논다는 말씀인지...



마음이나 감정, 신체의 구조나 기능 등을 보면 저는 순돌이를 참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많이 닮았기 때문에 적더라도 어느만큼 순돌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거겠지요. 


개인 순돌이와 인간인 제가 그만큼 많이 닮았으니 인간인 여자와 인간인 남자, 인간인 흑인과 인간인 백인은 또 얼마나 많이 닮았을까 싶어요.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별 위에는 서로를 닮은 존재들이 참 많이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구를 닮은 별들이 

저 하늘 위에 저토록 

무수히 빛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