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을 구워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순돌이가 대문 밖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귀 기울여 보니 사람 소리가 살포시 나는 것이 이웃 사는 윤성이가 어린이집에 가나 봅니다.
크게 한판 소리를 지른 순돌이가 돌아와서는 생선을 달라고 저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저는 순돌이게 말했습니다.
순돌아, 조금만 조용히 하면 안될까? 물론 니가 소리를 지르는 거는 무언가 위협이 된다고 느끼거나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건 알아. 그래서 소리를 지른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지금은 아침이라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걱정이야.
순돌이는 생선이나 빨리 좀 주지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냐는 듯 저를 쳐다봅니다.
순돌아, 아침에는 왈츠풍으로 p정도가 어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니 왈츠 좋잖아. 왈츠풍으로 세박자 왈왈왈~ 왈왈왈~ 멋지지? 다만 소리는 p나 mp정도로 하면 어떨까?
왈츠? 그거 먹는 거야?
야...왜 그래...너도 쇼스타코비치의 거시기 알잖아
아...그거...
아빠 지금 나한테 생선 주기 싫어서 딴 소리하는 거지?
그건 아니야. 니가 생선을 먹은 들 얼마나 먹겠냐. 생선이 아까워서 그러는 거는 아니고...순돌아, 낮에는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될 것 같아. 어차피 니가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짖지는 않고 잠깐 짖고 마는 거니까. 그리고 대문을 닫아 놓으면 소리가 밖으로 많이 나가지는 않으니까.
정말 내 마음대로 소리 질러도 돼?
그래...낮에는 알레그로에 f로 해도 좋을 것 같아. 왈왈왈왈~ 왈왈왈왈~ 신나게 말이야. 4분음표가 성에 안 차면 8분음표, 그것도 답답하면 16분음표로 짖어도 좋아. 기분 내키면 cresc.와 decresc.를 살려봐도 좋겠지. 잠깐이라면 ff도 좋을거구. 드로르작의 신세계로부터 4악장처럼 멋지게 한 번 해봐도 좋아. 왈~왈왈 왈~왈왈~ 캬~ 분위기 좋잖아~~~
아빠의 말은 알겠는데....지금 생선이 식어가고 있어. 귀한 음식을 앞에 놓고 지금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부탁할게. 밤에 크게 짖는 건 정말 곤란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거든. 그렇다고 소리를 전혀 안 내고 살 수는 없고...그러니까 밤에는 아다지오나 라르고로 해서 pp가 어떨까? 얼마나 멋지냐! 달빛이 으스름 창을 비추는 밤에 아다지오로 가벼이 소리 내는 멍멍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냐? 그렇게만 한다면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로맨틱하고 멋진 멍멍이가 되는 거야.
정말 내가 그렇게 우아하고 로맨틱하고 멋진 멍멍이가 될 수 있을까?
그럼, 넌 할 수 있어. 순돌이잖아! 너 베토벤 좋아하지?
음...뭐...다른 작곡가에 비하면 자주 듣는 편이긴 해.
어떻게 짖어야 할지 잘 안 떠오르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 달빛의 1악장을 떠올려 봐. 처음에 당~당~당~ 당~당~당~ 하잖아. 바로 그 느낌이야.
왈~왈~왈~ 왈~왈~왈~ 이렇게?
그래 바로 그 느낌이야. 좀 더 느낌을 살리고 싶으면 바흐의 아다지오 같은 것도 좋잖아.
왈~ 왈~ 왈~ 왈~ 왈~ 왈~ 이렇게?
그래 그래 아주 좋아. 역시 넌 천재야. 지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지구의 역사가 낳은 가장 완벽하고 뛰어난 멍멍이야.
하하하 뭐 이 정도 가지고...그래도 아빠가 칭찬해 주니까 기분은 좋네.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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