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역사 서사는 우리가 자신의 과거에 관해 서로 나누는 거짓말이다. 통상적인 목표는 자화자찬과 자기정당화다. 우리는 특별할 뿐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우리 조상들의 행동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전혀 빚이 없다. 거짓 역사 서사는 집단 수준에서의 자기기만처럼 행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거짓말을 믿는 한 그렇다. 집단의 대다수가 똑같은 거짓 서사를 들으며 자랄 수 있다면 집단의 통일성을 이룩하는 데 쓸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물론 지도자들은 행군 명령을 적절한 환각과 결부시킴으로써 이 자원을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독일인들은 생활 공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이웃들이여 조심하라. 유대인은 약 3000년 전에 쓰인 책에 조상들이 살았다고 적혀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지닌다. 그러니 비유대인 점유자들과 이웃들은 조심하는 편이 낫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서사가 구축될 때 기만이 개입되었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런 서사가 정서적 힘을 지닌다는 것도 장기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대개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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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행동, 자신의 관계, 자신이 속한 집단에 관한 거짓 서사를 줄곧 꾸며낸다. 자신이 속한 종교나 국가를 위한 거짓 서사의 창작은 그 범위를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대개 모든 사회에는 과거에 관한 진실을 말하고자 애쓰는 극소수의 용감한 역사가들이 있다.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압적인 대규모 성 노예제를 운영했다거나, 미국이 한국전쟁 때 한국인을 대량 학살했고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인과 캄보디아인과 라오스인을 대규모 살육했다거나, 터키 정부가 잘 살던 하위 집단인 아르마니아인들을 대학살했다거나,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시오니스트들이 인종 청소를 통해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상했다거나, 미국이 건국 때부터 아메리칸 인디언을 살육하고 대학살하는 기나긴 군사 행동을 벌였고 1980년대만 해도 대리인을 내세워 50만명이 넘는 아메리칸 인디언을 살육했으며 한 세기 넘게 군사적 수단을 써서 신대륙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노력해왔다는 것 등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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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터키인들은 내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말함으로써 자국을 비방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그저 진실을 말했다고 믿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자국이 성 노예제를 운영했다는 이야기에도 일부 일본인들은 똑같이 느낄 수도 있다(덜 감정적이긴 해도). 대다수의 미국인들도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가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몰살시켰다. 그래서 어떻다고? - 343~345
요지는 우리가 ‘아메리카의 창설’을 소급해 재창조함으로써 초기에 만연했던 살인, 노예제, 성적 착취 같은 지저분한 타락 행위들의 기억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단순한 탐험과 발견을 찬미하는 형태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토 정복이라는 현실과 동기를 부정한다. 그러면 자신을 미화하고 같은 행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 349
그렇다면 이런 대학살의 이론적 근거는 무엇일까? 명백한 운명이었다.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종교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개념이다. 당신이 한 바로 그 행동은 신이 당신에게 하라고 운명지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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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렇게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게 해준다. - 351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 신의 계획이라는 주장, 인구 전체를 ‘박멸’하라는 요구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의식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모두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352
- 로버트 트리버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살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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