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 책들, 2019
제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하면, 어떤 사람들은 회 많이 먹어 봤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대답합니다. 부산이 바닷가라도 회는 돈이 있어야 먹는 거라고... ^^
횟집 앞을 지날 때면 이런 글자들을 봅니다. 자연산, 활어, 싱싱, 오늘 들어온...제 눈에는 그런 말들이 한 마디로 모아집니다.
"어차피 수족관"
바다에서 왔건, 양식장에서 왔건 어차피 약 먹여서 수명을 겨우 겨우 연장하고 있는 애들로 보입니다. 큰 파도 치는 바다에 살던 애들을 좁은 수족관에 가둬 놨으니...
한강은 넓고 큽니다. 그리고 태종대 높은 바위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보다 훨씬 넓고 훨신 큽니다. 강물이 얕다는 게 아니라 바다가 더 깊다는 거에요.
조르바, 바다에서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살아 있는 물고기 같은 사람입니다. 잘 살았다거나 못 살았다기보다 펄떡펄떡 뛴다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22
사고도 많이 치고 나쁜 짓도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 있는 부모를 죽이기도 했고,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욕을 먹어도 한참 먹을만큼 여성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르바는 힘 없고 외로운 사람의 '편'을 들기도 잘했습니다.
제가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동백꽃 필 무렵>입니다. 외롭고 아프게 살아온 동백에게 용식이 다가옵니다. 용식은 동백의 편을 듭니다. 세상에 아들 필구와 단 둘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동백에게도 자기 편이 생긴 겁니다.
옳고 그름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그냥 내 편인 겁니다. 내 마음 아플까 걱정해 주고, 남들이 욕하면 막아서 함께 싸워주는 내 편인 겁니다.
동백이 살고 있는 옹산 시장 사람들 가운데는 동백이를 미워하고 흉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남편들이 동백의 술집에 가서 술을 먹고 그러는데, 괜히 동백을 욕합니다. 술만 팔았겠냐고 다른 것도 팔지 않았겠냐고, 도덕적으로 살자느니 자식들한테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느니...보고 있으면 열불이 터져서 이런 정신나간 것들이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고 소리라고 지르고 싶은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과부'가 동백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녀는 누구를 해치지도 않았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을 남자들의 자지가 불끈거렸을 뿐이지요. 마을 여자들은 그런 그녀를 미워했을 거구요.
<마놀라카스! 그리스도와 동정녀의 이름으로 찔러라!> - 360쪽
그리고 어느날, 그것도 기독교인들의 명절날 마을 사람들이 과부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이때 <그리스인 조르바> 속 '나'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에 반해, 조르바는 곧바로 달려 들어 싸움을 벌입니다.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의 편이 되어 싸우는 겁니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온 오르탕스가 죽어갑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르탕스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그녀가 가진 것들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입니다. 아직 죽지 않은, 그러나 죽어가고 있는 그녀의 닭을 잡아서 먹을 준비를 먼저 하지요.
그런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게 조르바입니다. 조르바가 오르탕스에게 나쁜 짓을 하고, 나쁜 말을 한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떠나는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린 것도 맞습니다. 게다가 어찌할지 몰라 떨고 있는 그녀의 앵무새를 거둬서 보살피는 것도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는 시신의 머리맡에서 앵무새 새장을 들어 내었다. 고아가 되어 버린 새는 공포에 질린 채 구석에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방 안의 사정은 알 리 없었다. 앵무새는 머리를 날갯죽지에 파묻은 채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
조르바가 새장을 들자 앵무새도 고개를 들었다. 입을 열 참이었으나 조르바가 손을 들어 새의 말을 막았다.
<조용해 해. 아무 소리 내지 말고 나랑 가자>. 그가 부드러운 소리로 새에게 속삭였다. - 388쪽
위대한 조국이나 민족이나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억울하게 고통 받는 사람을 보자 저절로 제 몸을 던져 막으려고 했고, 외롭게 떠나는 사람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혼자 남겨진 앵무새조차 나몰라라 하지 못하고 품어 안는 거지요.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가 동백을 두고 말합니다. 너나 나나 보잘 것 없는 인생이긴 마찬가진데, 너는 왜 모두 품느냐고....왜 나 같은 애 편을 들어주느냐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나'가 내뱉는 알쏭달쏭한 말들도, 수도원의 주교가 되뇌이는 멋진 표현들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 그들을 품을 수 있을 때 더 멋진 말과 더 멋진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 멋지다고 하기보다는 더 살아 있고, 더 생동감 넘친다고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안에는 조르바 같은 모습도 있고, '나' 같은 모습도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요즘 제가 사는 게 '나'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제 안에 조르바 같은 모습도 많이 있다는 걸 되짚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죽음이 다가오면 저 또한 조르바처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할지 모르겠네요. 시원하고 홀가분해서 웃고, 미안하고 아쉬워서 울고...
그는 우리 모두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문가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창틀을 거머뒤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 452쪽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보자 처녀들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낯선 남자의 출현에 그들의 표정은 불신으로 굳어졌다. 머리 끝에서 발치까지 그들의 태도는 돌연 방어적으로 변해, 단단히 여민 블라우스 섶을 손으로 불안스럽게 움켜잡았다. 공포가 그들의 핏속에서 출렁거렸다. 수 세기 동안 사라센인들로 이루어진 코르세르 해적은 이슬람 국가 정부의 묵인 아래 이 아프리카에 면한 크레타 해안을 기습하여 기독교인들의 양과 여자와 아이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던가.
...
나는 겁에 질린 소녀들이 마치 넘볼 수 없는 방벽을 이루려는 듯 서로 몸을 꼭 붙인 채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옛날엔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지금은 이유 없이 반복하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과거의 필요가 여전히 그들의 행동 리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 49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자네는 나의 이 변신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네 - 135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숱 많은 머리채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검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채 빗속을 달려가는 여자가 보였다. 탄탄하고 둥그스름한 몸매가 비에 젖어 달라붙은 옷 위로 드러나 고혹적이었다.
...
<아이고 성모님...> 창문가에 앉아 있던 솜털 수염이 보송보송한 젊은이 하나가 중얼거렸다.
<저 요부 같은 년에게 저주가 내릴지어다!> 마을의 임시 순경인 마놀라카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암, 저주가 내려야 하고 말고, 사내 가슴에 불을 질러 그 불길에 타 죽게 하니까!> - 145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었는가? 이 주저의 미로를, 이 추측의 사원을, 이 죄악의 물주머니를, 천 가지 기만이 파종된 이 밭을, 이 지옥의 문을, 잔꾀로 넘쳐 나는 이 바구니를, 꿀맛이 나는 이 독을, 중생을 땅에 묶어 놓는 이 사슬을-바로 여자를!>
나는 화덕 앞 바닥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이 붓다의 노래를 옮겨 적고 있었다. 마魔를 몰아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내 마음속에 들어앉은 비에 젖은 여인의 몸, 그 영상을 떨쳐 내려 기를 썼다. 여인의 육체는 그 겨울 내내 밤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내 눈앞을 지나갔다.
...
나는 과부가, 탄력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한 여자 형상의 악령, 마라魔羅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라와 싸웠다. 나는 붓다의 집필에 전념했다. - 169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앙상하게 마른 노인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나 팔을 벌려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끝이 뾰족한 침실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
...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주교올시다...> 그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고 있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따. 주교라니? 황금빛 상제복과 주교관과 십자가, 찬란한 모조 보석의 장신구는 어디로 갓단 말인가...잠옷 차림의 주교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
<흥, 속옷 바람인데 주교가 어디 있어! 들어오쇼, 노형!> - 298
그는 말을 끝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은 모양이었다....이 작은 노인이, 거의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평생 작업의 결실이라는 것을 그렇게나 선뜻 내주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 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마치 내 대답에 그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보람 있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달려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또 다른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 이론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제할 것입니다>내가 대답했다.
주교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그의 전 생애를 정당화시켜 준 셈이었다.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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