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느 술 취한 병사가 흐트러진 차림새로 나무 보도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어. 그는 나에게 오더니 느닷없이 '귀족 양반, 은 십자가를 사세요. 단돈 20꼬뻬이까예요! 순은이라고요!' 하는 거야.
...
첫눈에 은이 아니라 주석으로 만들어진 걸 알 수 있었지. 나는 20꼬뻬이까짜리 은화를 꺼내 그에게 주고 십자가를 당장 목에 걸었네. 그의 얼굴을 보니 아주 흡족해 보였어. 멍청한 귀족 한 명을 잘도 속여넘겼구나 하는 표정이었지. 그러고 나선 분명 그 돈으로 술을 마시러 가버렸을 거야.
...
길을 걸으면서 생각했지. 그리스도를 판 저 병사를 비난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술에 취해 있는 연약한 그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 - 278
- 도스또옙스끼, <백치>, 동서문화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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