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는 별 이유 없이 기분이 울적해질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별 이유 없이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구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이유를 모르는 거지 싶더라구요. 내 마음, 나도 잘 모르는 거죠. 하물며 다른 이들의 마음이야...^^
그래서 예술이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음악이든 미술이든 소설이든 그런 작품들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으니까요.
<타인의 삶>이란 영화가 있어요. 다른 사람을 몰래 감시하던 비밀 경찰이 나중에는 그 감시 대상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감시 대상일뿐이었던 한 인간이, 하나의 삶으로 다가온 건지도 모르구요.
제겐 <콩나물>이 그래요. 7살 소녀의 삶,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애들이야 다 그렇지 뭐 별 거 있겠어?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7살의 세계가 있고, 70살의 세계가 있을 뿐이겠지요. 그저 다른 세계에요. 어느 것이 더 귀하고 천할 것도 없고,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를 것도 없는 서로의 세계가 있는 거겠지요.
인간이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의 삶이 더 중요하고 더 올바르다고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지구의 인간에게는 태양이 우주에서 제일 밝은 별일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주를 좀 더 넓게 관찰하면 태양보다 훠~얼씬 밝은 별들도 많지 않을까요? 물론 어느 별이 더 밝다는 것이 좋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할 것은 없을 거구요.
7,000,0000,000명 가운데 1명으로 사는 저의 세계는 좁아요. 컴퓨터 하드 디스크 용량 늘리듯이 억지로 늘릴 수도 없구요. 그나마 조금 더 넓은 세계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삶을 통해서겠지요. 혼자 콩나물을 사러 집을 나선 7살 보리의 삶의 통해서요.
보리가 만나는 이웃사람, 보리가 듣는 윽박지르는 소리, 보리가 느끼는 신남과 두려움, 보리의 웃음과 울음 등등. 그것들을 통해 잠깐이나마 저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세계를 만난 거지요.
이제는 길에서 보리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 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 <타인의 삶>에서 비밀 경찰이 감시 대상이었던 사람을 다르게 느끼듯이 말이에요.
바라보고 들어보고 이해하면 늘 똑같던 것들도 새로움으로 더 깊이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것 같아요. ^^
가끔 우리는 바라보지도 않고 들어보지도 않고 다른 이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으레 그러겠거니 하거나 다 그런 거 아니야 하는 거지요. 또 어떤 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깨우치고 알게 된 느낌이 들어서 바라볼 필요도 들어볼 필요도 없이 다 안다는 기분을 가질 때도 있구요.
하지만 우리는 그냥 각자 하나의 사람이잖아요. 태양이 우주에서 가장 밝은 별이건 아니건 그냥 하나의 별이듯이 말이에요.
다행인 것은 혼자만의 삶에 갇히지 말고 다른 이들의 삶도 느껴보라고 인간에게는 눈도 있고 귀도 있고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이들의 삶을 느끼는만큼 내가 사는 세계도 더 넓어지고 더 풍성해지는 거니까요.
내가 나 하나 뿐이기에
나를 향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내가 나 하나뿐이기에
다른 이들을 향해 조금 더 마음을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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