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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고

순돌이 아빠^.^ 2020. 7. 11. 09:09

자기 전에 재미나게 보고, 자고 일어나서는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게 한 좋은 영화였어요. ^^

영화속 노랫말처럼 나이 마흔의 찬실이에게는 집도 없고 돈도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어요. 그나마 하던 일마저 못하게 되고... ㅠㅠ

그나마 있던 꿈마저도 흔들려요. 가지고 있던 책들을 버리려고 내놓는 장면에 얼핏 영화 잡지 KINO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만큼 오랫동안 영화로 꿈꾸며 살아왔다는 거 아닐까 싶더라구요.

 

얼마전에 영화음악 작곡가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죽었어요. 참 아쉽더라구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음악은 듣고 다시 또 들어도 마음이 뭉클하고 그래요. 찬실이도 어쩌면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영화를 통해 삶을 느껴왔는지도 모르겠네요. 

 

꿈마저 흔들리던 그 때, 주인집 할머니와 만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지요. 할머니가 그래요.

난 이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편해.

아...하고 싶은 게 없어서 편하다는 말...어떤 말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크게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래서 그것을 하고 있으면 크게 기쁘기도 하지만, 또 그게 잘 안 되면 크게 속상하기도 하잖아요. 영화속 소피가 네티즌들이 자기보고 발연기라고 했다고 크게 실망하듯이 말이에요. 

그렇다고 할머니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느냐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 높은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워요. 눈은 침침하고, 받침은 왜 그리 어려운지 숙제를 하려면 찬실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리고 할머니는 시를 써요.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할머니의 시가 찬실의 마음을 울리고 제 마음도 울컥하게 만들더라구요.

 

영화가 세상의 전부였고, 영화만 하면서 살 거라 생각했던 찬실에게 영화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생각은 큰 슬픔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찬실에게 영화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요. 영화만이 삶의 전부였던 것에서 삶 속에 영화도 있는 것으로요. 

찬실의 마음도 어느만큼 알 것 같아요. 꿈을 쫓아 정신없이 살고, 용달차도 들어가지 않는 산동네로 이삿짐을 옮기고, 어느 한 순간 이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그리고 나이 마흔이 넘어 꿈 속의 삶에서 삶 속의 꿈을 느끼기 시작하는...어렴풋 저의 모습이 겹치기도 하는...뭐 그런...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할머니가 아끼던 꽃들이 죽어요. 남은 하나를 찬실에게 부탁해서 집안으로 옮겨요. 하루 이틀 지나니 꽃이 다시피네요. 때론 잃는 것도 있고, 때론 다시 얻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아비정전> 속 장국영. youtu.be/qaRBLT9MDXE

아래 위로 하얀 옷을 입은, 자신을 장국영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빵 터졌어요. 그리고 나서는...뭔가 아련하고 소중한 느낌...그 때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장국영. 새처럼 바람처럼 떠나버린 ㅠㅠ

영화도 좋고 장국영도 좋지만...꿈만 꾸고 살기에는 어려운 게 많아요. 흔히 말하는 현실이라는 거지요. 꿈만 꾸고 살 때는 그게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꿈만 꾸고 살기 어려워지는 순간을 만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암담하기도 하고 고민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혼합 비율을 만드는 것 같아요. 꿈 땡땡%+현실 땡땡%.  

꿈을 현실에 타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꿈꾸는 사람도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자야하니까...게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도 생기면 타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방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꿈이 없는 삶은 메마른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에요. 반대로 삶이 없는 꿈은 혼자만의 공허로 남을 수도 있을 거에요. 삶이 살아 있는 꿈에 다가가면서 찬실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찬실이는 복도 많은 것 같구요.

 

한국 사회에서 나이 마흔의 여성으로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는 찬실이에게는
어릴 때부터 품어온 꿈도 있고
삶을 새롭게 느끼는 살아있는 마음도 있고
높은 산길을 함께 올라가는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 

 

youtu.be/ZOYPs8dkH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