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어요. 어떤 색깔, 어떤 음식, 어떤 음악, 어떤 옷, 어떤 풍경...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들뜨기도 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확 풀리기도 하고 무언가 설레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면서 살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런 게 없다 싶은 삶은 지루하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하고 무의미하기도 하고 헤매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 한 가운데 혼자 둥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뭔가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미드나잇인파리> 속 길은 뭔가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성을 찾고 싶어해요. 헐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작가가 아니라 순수문학 작품을 쓰고 싶고, 비 내리는 날이면 비를 맞으며 도시를 걷고 싶어도 하지요. 누군가에게는 비가 온다는 것은 몸이 젖고 추워진다는 것이지만 길에게는 신선하고 낭만적인 순간이 되는 거지요.
남들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 있어요. 누군가 보면 저 인간 대체 왜 저러나 싶기도 할 거구요. 결혼을 앞둔 길의 약혼자 이네즈가 박학다식하고 잘나가는 남자에게 끌리는 걸 보면서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할지 몰라요. 하지만 이네즈에게는 그 남자가 가슴을 떨리게 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글을 쓰는 길이 1920년대로 가서 헤밍웨이를 만난다? 캬~~~ 얼마나 멋진 일이겠어요. 헤밍웨이가 전쟁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두고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그 작품을 읽은 건 순전히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때문이었어요. 거기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너무 멋지더라구요. 나만의 이유 때문에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게 되었던 거지요. ^^
아무튼 제가 만약 글을 쓴다고 하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를 꿈 속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설레고 신기하고 그럴까 싶어요. 어느날 베토벤이 제 앞에 나타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며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썼는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썰을 푼다고 해보세요 ㅋㅋㅋ
글이거나 음악이거나 무어거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들뜨게 하고 새로운 감성과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만남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느낌을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이 있고, 그 느낌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는 사람도 있구요.
자신은 갖지 못했지만 누군가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 싶으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다보니 삶의 여러 측면을 챙기는 게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구요.
영화 포스터에 빈센트 반 고흐의 느낌이 묻어나네요. 고흐가 그렇게 예술적 영감을 쫓아가면서 돈도 벌고 일상생활도 잘 챙기며 가족 관계도 원만하게 맺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암튼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어느 것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것도 없을 거구요. 그냥 그런 감성이나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과 닮았다 싶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려하는 사람을 만나면 금세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되지 싶어요. 그런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참으로 즐거운 일이 되는 거지요.
길이면 어떻고, 이네즈면 어떻고, 이네즈의 아버지면 어떻겠어요. 각자의 삶이 있는 거지요.
다만 길은 헤밍웨이를 만나서야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던 자신의 소설을 보여 주고 싶어해요.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가브리엘을 항해 웃을 수 있는 거구요.
영화 <원스>를 보면 악기 가게에서 한 사람은 피아노를 치고 한 사람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나와요. 망가진 기타만큼이나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은 두 사람,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해 서로에게 천천히 빠져드는 것 같아요.
얼마나 반갑고
얼마나 설레는 순간인지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만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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