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릴라는 결혼식 이후 이스키아 섬에 오기 전까지 자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당시의 느낌을 세세히 묘사했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면서 졸음이 쏟아졌고 뇌와 두개골 사이에 공기방울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머리가 무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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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는 언제나 감각이 둔한 상태였다고 했다...곧 죽게 될 거라는 상상은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아무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다고 했다. 아무것도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모든 것이 망가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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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나처럼 미쳐버리기 전에, 대로변을 가로지르다 트럭에 치쳐 끌려가기 전에, 그런 릴라를 변화시킨 것이 바로 니노였던 것이다.
그는 릴라를 죽음에서 구해냈다...이스키아 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니노가 내민 구원의 힘은 강해졌다. 그는 릴라에게 감성을 되돌려주었다.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부활시켰다. 그랬다. 말 그대로 부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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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이 기쁜 새로운 구속에 얽매이는 것이다.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이자 기존 현실을 뒤집는 봉기이기도 한 것이다.니노와 릴라, 릴라와 니노는 함께 인생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인생에서 독기를 제거하고 오직 사유와 삶의 즐거움만으로 재구성하게 된 것이다. - 413
며칠 지나지 않아 카라치 부인으로서의 그녀의 인생은 사라져 진정성을 잃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전략을 짜고 전투를 벌이고 전쟁을 준비하거나 동맹을 맺는 삶, 짜증스런 공급업자들과 고객들, 무게를 속여 계산대 서랍에 돈을 쌓는 데 전념하는 삶은 의미를 잃었다. 그녀의 삶에서 구체적이고 진실한 존재는 니노뿐이었다. - 472
-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한길사, 2020
그 한 사람을 통해
갑자기 천국이 내앞에 펼쳐지는 것은 아니어도
그 한 사람을 통해
깊고 어두운 절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그 한 사람을 통해
다시 내 안의 살아있는 감각들을 느끼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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