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는 엔초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나는 릴라가 엔초에게 본 것이 그녀가 지난날 스네파노나 니노에게서 본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릴라는 엔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다. 스테파노의 경우에는 일단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실체 없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다. 니노의 경우에는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릴라에게 아픔만 남기고 시꺼먼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 136
릴라는 엔초가 다른 여자에게 반해서 자신을 쫓아낼가봐 두려웠다. 살 곳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당장은 햄공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꼈다. 놀랍게도 예전에 스테파노와 결혼해 수중에 돈은 많았지만 그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보다 더 강하다고 느꼈다. 그보다는 엔초의 상냥함을 잃을까봐 두려웠다. 자신의 모든 걱정에 대한 엔초의 관심과 그가 발산하는 평온한 기운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릴라는 그런 엔초 덕분에 니노의 부재와 스테파노의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엔초는 릴라에게 위안을 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 139
- 엘레나 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한길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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