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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 대해 알고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순돌이 아빠^.^ 2021. 5. 23. 07:49

그때까지 나는 남자에 대해 내가 느끼는 바를 누구와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성들이 남성에 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여성들과 남성들의 관계-우리가 딸, 누이, 할머니, 엄마, 아주머니, 연인, 그리고 때로는 성적 대상으로 목격해온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기를 두려워하며, 심지어 우리의 무지, 그러니까 우리가 남성에 대해 사실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인정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두려움과 불안감이 더 커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성을 남성 폭력, 즉 그들이 여성과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고 관련해서만 아는 것은 불완전하며 적절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 9

 

여성들은 중대하고 심각한 비밀-특히 남성중심주의라는 일상의 전략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 그러니까 우리 개인의 삶에서 남성의 힘이 어떤 식으로 발휘되고 유지되는지에 관한 일상의 전략을 드러낼 수 있는 비밀-을 절대 말하지 않도록 길들여져왔다. - 13

 

- 벨 훅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2017, 책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5858

 

어릴 때부터 저는 남자로써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밥상에 앉을 때는 일명 '윗자리'에 앉으라고 배웠고, 청소며 빨래며 밥이며 이 모든 것들은 엄마나 여동생의 일이지 제 일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일러주는 대로 어느 집안 몇 대 손인지를 외웠고, 조상님 제사를 모실 때는 옷을 갖춰 입고 음식을 어떻게 차리고 술을 어떻게 올리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렇게 매번 제사를 지내고 그러다가 한 번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거기에 대해 아버지는 어...하시더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저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묻지 않았지요. 물론 아버지가 왜 아무 말씀을 안하셨는지는 모릅니다. 

 

저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제게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물을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가정한다면...저 또한...음...하며 뭐라 말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의 글에서 벨 훅스가 두려움에 대해 말했는데...아버지...제게는 큰 두려움입니다. 엄마를 향한 그 거친 폭력과 유리창이며 tv며 다 때려부수던 난폭함, 여동생과 제가 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울며불며 하던 때의 그 두려움...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리고 솔직하고 중요한 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두려움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뺀다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니가 될테니까요. 

 

내가 직접 겪은, 그리고 내게 중요한 어떤 남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숨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추상적이고 붕뜬 얘기 밖에는 안 될 테니까요. 

물론 그 두려움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것은 아버지,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한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아버지와 바닷가에 놀러 가서 저 멀리 있는 나무를 향해 함께 달리며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실수로 바닷물에 코카콜라 상표가 그려져 있던 라디오를 빠뜨렸는데도 아무 말 안하시던 너그러움도 제게 남아 있구요. 그때는 tv도 그렇고 라디오도 참으로 귀한 물건이던 시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동생이 많이 아팠어요. 천식 때문에 달리기를 제대로 못했거든요. 인터넷이고 핸드폰이고 없던 그 시절에 어렵게 독일에서 수입한 약을 하루라로 날짜를 틀리지 않게 매번 먹이기 위해 비를 쫄딱 맞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모습도 기억나구요. 

 

그 남자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저를 그 남자에 대해 말하기를 어렵게 하고, 

또한 제게 남아 있는 좋은 기억들이 그 남자를 폭력으로만 말하기를 어렵게 합니다. 

남성이고 남자로써 대접 받으며 살아온 제가 그런데

여성이고 여자로써 업신당하며 살아온 분들은 어떨까 싶어요 

 

지금 당장 이 순간도 그럴거에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50대에 접어든 남성인 제가 남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로울 거에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 남자들은 이게 문제야 라고 떠들어도 누가 저보고 크게 뭐라 할 사람이 없지 싶어요.

그렇지만 만약 어떤 여성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남자들은 이게 문제야 라고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싶어요. 

특히나 나이 적은 여성이 그런 식의 말을 한다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받을지도 모르지요. 

넷플릭스, <그리고 베를린에서>